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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C021 - Billings, Peggy Marie / A002 - Horace Newton Allen / 3-5 / 정효빈, 이요셉

닉네임
정효빈
등록일
2019-12-13 22:09:50
조회수
787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5_A002_정효빈,이요셉 - 복사본.hwp (36352 Byte)
I. 기본사항

1. 이름: 페기 마리 빌링스 (Billings, Peggy Marie)
2. 생몰연도: 1928. 09. 10 ~2019. 07. 19 (90세) <--- 정보 업데이트 요청드립니다.
3. 출신 및 소속:
 출생 - McComb, 미국 미시시피 파이크 카운티
 사망 - 이타카, 톰킨스 카운티, 뉴욕, 미국
 묘지 - 할리우드 묘지 (McComb, 미국 미시시피 파이크 카운티)
4. 한국선교기간: missionary, Republic of Korea, 1952-1963
5. 가족 : 아버지 Dave, 어머니 Inez Billings, 7남매 중 막내



II. 선교사 소개: 페기 마리 빌링스
(Billings, Peggy Marie/1928.9.10.- 2019. 07. 19)

 Peggy Marie Billings (90세)는 2019년 7월 19일 뉴욕 이타카에 있는 Bridges Cornell Heights에서 2018년 6월에 심한 뇌졸중을 겪은 후 사망했다.

 아버지 Dave와 어머니 Inez Billings의 막내 딸인 그녀는 여동생과 7명의 형제보다 오래 살았다.

 Peggy는 MS 파이크 카운티의 초등 및 중등학교를 졸업한 뒤 MS Jackson의 Millsaps College를 졸업했다. 두 번의 ‘주 테니스 챔피언’을 수상하였고, 대학시절 테니스를 가르치기도 했다.

 페기는 감리교 가정에서 자랐으며 당시 ‘여성 기독교 봉사 협회(Woman’s Society of Christian Service)’에서 선교사가 되었다. 테네시 주 내슈빌에있는 Scarritt College에서 1 년간의 준비와 Yale University에서 1년간의 언어 학습을 한 후, 그녀는 1953 년에 서울에 도착하여 한국전쟁 당시 미 육군에 의해 사회 센터로 사용되었던 ‘타이화 지역 센터’를 찾게 되었다.

 미국에서 1년 휴가를 보내면서, 그녀는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사회사업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페기는 1963년까지 ‘타이화 지역 센터’를 감독하기 위해 서울로 돌아왔다

 페기는 1963년 뉴욕으로 돌아오면서 감리교 여성들과 함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부의 인권 투쟁에서 UMW를 대표하도록 임명되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박사와 함께 셀마 행진에 참가한 것을 포함한 그녀의 활동은 미시시피주의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의 적개심을 불러 일으켰켰다.

 페기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민권운동, 평화운동, 여성운동 등에서 남북으로 활동적인 생활을 계속했다. 1968년, 그녀는 세계부 여성분과 연합 감리교회에서 기독교 사회관계 담당 차관보가 되었다.

 페기는 1972년부터 73년까지 에모리 대학의 캔들러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와 사회학 교수를 역임하면서 계속해서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그녀는 또한 1989년에 예일 신학교에서 세계기독교에 대한 강사로 활동했다. 1973년 그녀는 4년마다 열리는 유나이티드 감리교 여성회의에서 1만 명의 참가자들에게 연설을 했다. 그 행사에서 나온 그녀의 연설은 통일 감리교 여성들의 목적에 관한 기초적인 텍스트로 사용되어 왔다.

 1984년, 페기는 국제연합 감리교 이사회의 세계부 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곳에서 재임하는 동안, 그녀는 북미 인권 연합의 의장을 맡았고, 국제 정책 및 글로벌 교육 협회에 기여했으며, 헌법 권리 센터 이사회에서 활동했다.

 페기는 1986년 서울 이화여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밖에 대한민국을 통한 공공복지훈장, 북미한국기독교장학협회 인권상, 감리교사회행동연합의 볼상 등이 수상됐다. 그녀는 이 업적으로 한국 교회 협의회와 한국 인권 연구소로부터 ‘인권 표창장’를 받았다.

 그녀가 쓴 한국에 관한 책에는
“The Waiting People” (기다리는 사람들)
“In No One’s Pocket”
“Paradox and Promise in Human Rights” (인권에서의 약속)
“Fire Beneath the Frost: Korea, Speaking Out in the Public Space”이 있다.
 1975년 페기는 뉴욕 트루먼스부르크에 1820년대에 퀘이커스에 의해 지어진 집을 샀는데, 이 집은 지하 철도의 정류장이었습니다. 그녀는 집을 수리했고 최근 태양열 판넬과 지열 난방을 설치했다. 1989년 그녀가 은퇴했을 때, 페기는 완전히 복구된 그 집에서 풀타임으로 살 수 있었다.

 은퇴 이후 페기는 뛰어난 시인이 되었다. 그녀가 출판한 작품으로는 "Half-Light"와 "Red Rooster Crowing"과 "Tracing the Path"가 있으며, 다른 뉴욕주 톰킨스 카운티 시인들이 있다.

 그녀는 최근 Who's Who in America로부터 2018년 평생 공로상, 2019년 인도주의상 등 두 개의 상을 받았다.

<뉴욕 주 트루먼스부르크의 네스-시블리 장례식장에서 온 정보>
 Peggy는 그녀의 시누이인 TN 멤피스의 도로시 빌링스와 수십 명의 조카들 그리고 위대한 조카들과 조카들에 의해 살아남았다. 50년의 오랜 친구, 동료이자 파트너인 Mary Lou Van Buren은 트루만스부르크의 집에서 계속 살고 있다.

 우리는 2108년 여름 동안 그들의 보살핌에 대해 Cayuga Ridge의 직원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 후 몇 달 동안 페기가 보살핌을 받은 것에 대해, 우리는 브리지스 코넬 하이츠의 직원들과 호스피카레 팀, 그리고 그들의 충실한 지지에 대해 많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 축하와 추수감사절은 7월 27일 토요일 오후 1시에 Epiphany, 11 Elm St. 뉴욕주 트루먼스버그. 그녀의 유골은 미시시피의 매컴에 묻힐 것이다. 그녀의 사랑하는 동생 밥과 그녀의 부모님, 조부모님, 형제, 자매들 곁에.

 꽃 대신, 기념 선물은 다음과 같이 환영받는다. 이타카 시 망명 또는 교회 세계 서비스, 에피파니 교회 또는 메클렌부르크 통합 감리교.

<약력>
 교육자, 종교단체 관리자
 대한민국 수령인 공공복지 메달 공화국, 1963년, 인권상 한국 기독교장학협회, 1978년, 한국인권연구원 인용, 1984년, 국가평의회 한국 인용, 1985년, 볼상 사회행동학회의 감리교 연합, 1989년.
 배경
빌링스, 페기 마리는 1928년 9월 10일 미국 미시시피 주 매컴에서 태어났다. 클레멘트 데이빗과 아이네스 멜리사(디커슨) 빌링스의 딸.
 교육
1950년 밀랍대학 학사. 1957년 컬럼비아 대학 예술 석사. 1986년 이화여자대학교 문예과 박사.
 직업
Clerk, Illinois Control R.R., McComb, 1947; 강사 테니스, 젊은 여성 기독교 협회, 잭슨, 미시시피, 1950; 선교, 대한민국, 1952-1963; 뉴욕시 연합 감리교회의 세계부, 1963-1993. 방문교수 종교와 사회 캔들러 학교 신학, 1972-1973. 세계 기독교의 강사, 예일 디비전 스쿨, 1989.
 정치
교회 신도들은 기독교 신앙에 비추어 정치적 문제를 반성할 수 있도록 그들의 기관을 지원하고 재원을 공급해야 한다.
 모든 기독교인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글이 작성되고 함께 모인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연구해야 한다. 텍스트가 만들어진 원문맥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 회원가입
1975-1991년 대한민국 인권을 위한 북미연합 의장. 국제정책자문위원회 위원, 1984-1991, 글로벌 교육협회, 1989-1991. 이사회 이사 센터 Constnl. 1979-1989년 권리.
이익
 취미: 테니스, 독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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