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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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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회사_3학년6반_2012210365_심보람

닉네임
심보람2012210365
등록일
2019-12-18 14:47:46
조회수
740
첨부파일
 한국기독교회사 3권 서평_3학년6반_2012210365_심보람.hwp (88064 Byte)
한국교회사 수업 서평 과제물 3학년 6반 2012210365 심보람


한국 기독 교회사 3권 1960-2010
박용규 지음

1.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1960년은 한국 근대민주주의의 출발점이된 4.19혁명과 WCC문제로 여러 교파들로 분리되게 된 시기이다. 정치적으로는 혁명의 시기이며 종교적으로는 분열의 시기이다. 특별히 종교적인 분열의 기저에는 ‘정체성’에의 갈등이 있다. 여기에서 우리 교단과 신학교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드러나기에 이것을 추적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
1970년부터는 대중전도운동의 영향으로 한국교회가 급성장 하게 되며 대형교회가 등장하게 된다. 주류교단과 중소교단이 모두 각자의 다양성을 가지고 주역으로서 역할을 담당했다. 같은 복음주의의 교리 안에서 함께 연합하여 한국교회의 성장을 이끌어 갔던 것을 오늘날 우리는 본받아야 할 것이다.
1980년대는 민주화 운동의 시대였으며 기독교는 적극적인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신학적인 이유가 아닌 성향의 차이와 신학교 설립 등의 이유로 합동에서 40개 이상의 교파가 갈리게 된 시기이기도 하기에 하나됨을 지키며 성장하지 못한 이 시기의 우리 교단의 발자취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1880년대와 90년대는 해외선교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는 1974 로잔의 ‘복음주의’적인 신학을 따르기에 당연한 걸음이었다.
한국교회가 급성장하고 선교가 활발하게 일어났으나, 1990년대 천주교가 한국에서 전성시대를 누리고 이단이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그리고 세속화와 혼합주의로 한국교회는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2000년대에는 1907 평양대부흥운동으로 한국복음주의 교단들이 다시 한번 연합하여 회복의 희망들이 보이기도 했으나, 복음주의 운동 세력이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지지 그룹으로 바뀌면서 한국기독교는 큰 비난을 받게 되었다. 또한, WCC의 총회가 부산에서 개최되면서 한국교회는 다시한번 큰 분열의 아픔을 느끼고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이러한 50년사를 돌아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반성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1960년대 이후 한국근대화에 있어서 기독교가 주역이었다는 것이다. 첫째로, 민주주의를 위하여 앞장서서 군사정권과 맞서고 반공의식을 심어주었다. 둘째로, 기독교 정신으로 근면한 성도들의 삶을 통해 경제발전이 가속화 되게 되었다. 셋재로,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전세계에 흩어진 이민자들의 역할로 세계화를 이끌었다. 기독교가 주역이 된 것은 어떠한 정치적 이익을 위함이 아닌 기독교 정신이 민주주의, 경제성장, 세계화와 궤를 같이했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속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한국과는 상반되게 한국교회는 빠른 침체기를 맞아 어려움 가운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교회가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곧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함에 있어서,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세속화가 기독교에 침투하면서 재정난을 겪는 신학대들이 그 정체성들을 잃어가고 기독교 학교들도 혼합주의화 되어서 기독교의 정신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러한 뿌리가운데 이단의 지도자들이 배출되게 되었다. 또한 정치적 입장차로 진보와 보수, 친공 반공 등의 분열과 대립들이 극화되었다. 올바른 복음을 고수하고 지키는 것을 양보하였고,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을 위하여서 써야 할 에너지를 분쟁에 쓰고 말았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총신대학교는 1907년 평양장로회신학교 1회 졸업생부터 오늘날 100년이 넘는 역사 동안에 복음주의 신학을 한국 교회안에서 지키고 계승시키는 사명을 감당해왔다. 1931년 평양장로회 신학교 요람에는 복음주의적인 교육목적이 분명하게 들어나있다. 올바른 성경관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통합과의 분열을 겪으면서 우리 교단의 정체성에서 사회적 책임이 약화되 왔던 것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1960년대부터의 한국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급성장 속에서 한국교회는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되었고, 분열과 갈등 속에서 길을 잃고 쇠퇴하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다시한번 100여년 전의 복음주의 선교사와 기독교 지도자들이 가졌던 복음전파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2. 느낀점

한국기독교회사를 1권부터 읽어왔다. 사실을 기록하고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한국교회를 향한 저자의 감정이 담겨있기에 매우 두꺼운 책이지만 흥미로운 장편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복음주의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한국교회에 전해진 복음주의 기독교에 대한 감사, 그러나 그것이 올바로 계승되지 못한 과거와 오늘날에 대한 통탄, 그러함에도 총신 신학교에 오롯이 남아있는 복음주의의 바른 신앙고백들에 기대어 한국 교회의 미래를 희망하는 저자의 마음은 책의 곳곳에서 외쳐지고 있다.
또한, 각각 흩어져 있는 것 같은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너무나도 잘 드러내주고 있다. 그래서 소설을 읽은 것 같다고 한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특정 교회, 선교단체, 특정 사건들을 중심으로 하여 전후 관계와 맥락에 따라 한 줄기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단순히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들만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의가 있다. 초기 선교사가 한국에 오기 직전의 시대부터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한국역사의 전반적인 주요 사건과 인물들을 모두 다 함께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서 저자는 지난 100여년간 한국교회와 한국이 어떠한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를 살피고 있다. 그리고 개혁주의 복음주의 전통이 지닌 복음전파와 사회책임이라는 사명이 가진 힘을 보여주고, 한편 그것을 소홀히 하게 되었을 때의 참담함을 보여주고 있다.

3권의 서문은 칼빈의 말로 시작한다.

존 칼빈은 역사 속의 인간을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존재”로 이해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책무가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창조의 역군으로서 세계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변형되도록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강조하고 밝힌다.

서론에서도 1960년, 한경직목사의 말로 시작하고 있다.

.....자유확보와 민주건설에 매진해야 합니다. ....특별히 정부 당국자들은 과감한 경제정책을 써서 실업자들에게 직업을 주도록....과감한 사회정책을 써서 극빈자의 생활을 확립하도록....건설에 총력을 집중... 사상의 노선을 분명히 해야...1000년 대계에 그릇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처음 읽을 때 적잖이 놀랐다. 정치인이나 기업경영자의 연설이 아니다. 당시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의 말이다. ‘하나님’, ‘기도’, ‘전도’, ‘영혼’ 과 같은 말들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제일 첫 서문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이것이 너무나도 ‘기독교적’이라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싶어서 놀랐다는 것이다.
이 말처럼 3권은 60년대 이후의 한국근대화의 발전에 있어서 한국교회가 어떻게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여 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회안의 교회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개교회나 소속교단들의 성장과 발전에 주로 관심을 갖게 되며, 한국의 사회적이며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뚜렷한 외침과 행동을 취하지 않고 몸을 사리는 것이 사실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회적인 외침을 분명하게 외치고 있는 기독교계 인사들이 위의 한경직 목사와 같은 진정 한국을 위한 순수한 외침이 아닌, 특정 정치세력을 두둔하며 오히려 한국 사람들의 반감을 사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합동 교단에서 성장해 왔으나, 정치적이며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에 대하여서 강조받고 배우고 훈련받은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 교회안에서 열심히 섬기고 내 개인의 삶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으로 성도의 책임을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여김 받아왔었다. 부끄럽게도 신학 공부하면서도 이러한 인식이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권과 2권을 읽으면서 ‘2019년 한국에서 총신신대원에서 신학을 배우는 주부’라는 ‘평면적’인 자기인식이, 기독교 전체역사속에서, 특히 한국교회의 역사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입체적인’ 자기인식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3권을 읽으면서 나의 신학적 정체성과 사명들을 다시한번 정검해 보게 된다.

1권과 2권에서 감격과 감사로 돌아봤던 우리 나라에 전해지고 계승되어진 복음주의의 전통이 3권에 와서 신학적 근간이 WCC로 흔들리고, 그 흔들림 속에 하나됨이 아닌 분열로 나아가고, 경제성장 속에서 교회마저 세속화 되면서 교회와 신학교들이 복음주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이권과 다툼속에서 분열이 더욱더 가속화 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국의 근대민주주의 성장에서 있어서 주역을 감당했으나 정작 자기 자신은 지키지 못하여서 폐잔병처럼 쓰러져버린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3권은 1,2권에서 느꼈던 감격과 너무나도 상반되는 무거운 마음을 안겨주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에베소서 6장 13절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는 것에 소홀히 하였다. 올바른 성경관, 은혜의 믿음, 사회적 책임, 복음전파의 내용은 뒤이어지는 전신갑주에 대한 설명에 드러나고 있다. 60년대 이후의 한국교회는 대중전도운동의 영향과 한국의 근대화라는 빠른 두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면서 급성장의 길을 가속화 해서 달려왔다. 그런데 모두다 성장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무엇을 위해서 달리기 시작했는지,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를 잃어버렸다. 결국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교회가 어둠에 일조를 하고 있는 형편이 되고야 말았다.

이러한 암흑에 침울하고 마음이 무거운 가운데, 3권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빛’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총신대학교의 전통에 담겨져 있었다. 저자는 객관적인 사료를 명백히 제시해 준다. 그 가운데 나는 1, 2권에서 나를 감격하게 했던 평양대부흥을 주도하였던 선교사와 교회지도자들의 정신이 그대로 지금 이 학교에 계승되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를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그 신학을 그대로 고백하고 있음에 감격하고 감사하게 된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개혁주의 복음주의의 바른 신학과 신앙’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내가, 한국교회가 서 있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를 통하여 돌아보았듯이, 교회와 가정에서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쉽지는 않지만 인정하게 된다. 복음전파에 대한 관심과 동일하게 내가 일생을 통하여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에의 사명이 무엇일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편, 소망하기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쇠퇴를 보며 유럽교회의 역사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말들이 전복되길 원한다. 유래없는 기독교 역사를 쓰고 있는 한국교회이지 않은가! 유럽교회를 타산지석 삼아서 세속화와 혼합주의와 근본주의와 분열 등의 과오를 털어내고 ‘복음주의’안에서 연합함으로 도약하길 기대해본다. 우리교단과 신학교는 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이에 있어서 중요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제, 올바른 신학위에서 사회적 책임을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바른 신학위에서 한국의 변혁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번혁이 제2의 기독교 개혁운동이 되어서 통일과 함께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게 될 날을 꿈꿔본다.
작성일:2019-12-18 14:47:46 124.80.4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