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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한국기독교회사3권전체서평_3학년6반_2017210337_강재영

닉네임
강재영
등록일
2019-12-18 16:02:23
조회수
747
첨부파일
 한국기독교회사3권전체서평_3학년6반_2017210337강재영.pdf (99792 Byte)
3-6반 2017210337 강 재 영 한국교회사 박 용 규 교수님

『한국기독교회사3권(전체)』를 읽고
(박용규 지음 서울: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18년 1284쪽 정가 58,000원)

저자의 강조점
저자는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한국의 근대화의 역사의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시켜 이해한다.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사는 ‘원하든 원치 않든’ 한국의 근대화와 더불어 진행되었다. 이 시기 한국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종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특별히 민주주의, 경제발전, 세계화는 이 시대 대한민국이 이룩한 가장 두드러진 발전분야였다”(p21)는 서론의 언급은 한국기독교회사가 한국근대사의 흐름에 “원하든 원치 않든”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그 세속사의 흐름의 영향으로부터 교회사가 독립적이지 못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더불어 “1960년대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조국의 근대화에 기독교는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세계화는 곧 기독교가 추구하는 기독교 정신과 궤를 같이 했다.”(p22)는 언급을 통해 한국기독교회사가 한국의 근대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지만, 이 세속사와 교회사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그 흐름의 중심에 있는 것이 여전히 세속사라는 강조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경제발전, 즉 한국근대사의 역사적 특징들이 주는 많은 혜택과, 동시에 급속한 경제발전이 가져온 빈부격차, 노사문제, 향락산업, 물량주의와 배금주의 등의 부작용이 한국근대교회사의 흐름에 거의 그대로 투영되는 것을 통해서 증명된다. 한국기독교회가 걸어온 이러한 길을 돌아보면서 저자는 이렇게 자문한다. “과연 한국교회는 복음 본연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했는가?”(p24)

한국기독교회사는 한국근대사의 역동성만이 아니라 세계 신학계의 변천에도 강한 영향을 받아왔다. 자유주의와 신전통주의 그리고 근본주의로 대별되는(p36) 세 가지의 신학계의 흐름이 한국기독교회사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WCC 에큐메니칼운동과 복음주의운동의 갈래가 선명하게 갈리는 상황이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정책적 표방과 신학적 노선이 일치하지 않는 교단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저자는 한국의 기독교가 한국근대화의 주역으로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발전 그리고 세계화에 있어서 주역을 감당했다는 점을 강조한다.(p42) 69년대 이후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모하는데 있어서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경제발전을 위해서 체제 안정이 필수적인데, 이 일을 한국기독교가 한 것이다. 동시에 물량주의에 물들어 버린 한국교회, 양적 팽창과 하드웨어 구축에 집중 투자한 결과 교회의 대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해온 점에 대한 반성을 강조한다. 한국교회의 급속한 세속화는 한 영혼에 집중해야 할 교회가 물질주의와 무량주의에 물들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복음전파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확장의 도구로 전락한 소치임을 지적한다.(p53) 이러한 세속화의 물결은 기독교 대학들 가운데까지 깊숙하게 침투하게 되는 데,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로 대변되는 기독교학교가 세속화되고 기독교 정신을 상실하는 지경에 이른다.(p55)
특별히 저자는 민족통일에 대한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하는데 이데올로기와 지방주의 극복을 언급하면서, 남한의 해양지향적 민족성이 북한의 대륙지향적인 민족성과의 만남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대륙지향성과 해양지향성이 한 민족 안에서 만나면 놀라운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p50) 실로 독창적이면서 합리적인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영적 변화들은 교회가 사회적 변화에 맞추려다가 점차 영적생명력을 상실하게 된 소치이고 이것은 현실적은 문제들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물론 교회가 사회적 변화에 대응해야할 필요가 있지만, 물질주의와 배금주의에 물들어서 영적 가치 중심의 가치관이 물질 중심의 가치관으로 급속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 사이의 차이가 없어지고, 경건의 능력은 둘째 치고, 경건의 모양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p59-60)
저자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당면한 과제들을 몇 가지로 요약하는데, 복음 본래의 사명과 복음전파 그리고 복음의 순수성 계승과 복음의 대사회적 책임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다.(p63) 이점은 문제의 현상만을 따라가며 미봉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이 어디에 있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를 직접적으로 발견하고 회개하자는 외침이다. 이것은 지극히 마땅하면서도 또한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하지만 주께서는 미봉책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찢는 회개와 순종을 원하신다.

소감
지난 반세기의 사회적 급류를 타고 한편으로는 성장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표류해온 한국교회의 모습을 일관된 논점과 흐름에 따라 서술하는 필체가 마치 강의실에서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실제로 교수님의 어투와 책의 문체가 일치하는 것이 느껴져서 더욱 즐거웠다. 전후 사회의 복구와 변화, 반공과 민주화, 경제성장과 분배정의, 교회의 정치적 역할 등에 대한 역사적 조감을 통한 통찰력을 얻어가는 시작이 되는 책이었고,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그 신학적인 틀을 형성하도록 지도해주신 가르침에 감사드린다.

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의 원인과 역사적 흐름에 대한 균형 잡힌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러 번 정독해야할 책임이 분명하다. 이 책들(총3권)을 통해서 교회사를 배우는 이유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고, 그것이 이 시대에 어떤 현상적인 결과들로 나타났는가를 배우게 되었다. 역사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전례를 찾아서 오늘날 우리에게 그와 비슷한 것들이 허용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역사신학의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사건들의 결과와 영향을 신학적으로 분석하는 것, 즉 특정한 현상들이 나타난 신학적 원인을 역사적으로 찾아내고 신학적으로 분별하는 통찰을 얻기 위함이 역사신학의 목적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별히 정권과 사회이슈에 대한 교회의 정치참여가 활발한 오늘날의 현상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이해하는 눈을 얻게 되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순복음교회 등 오순절운동 개열의 신학에 대한 소개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필자가 사역하고 있는 모교회가 합동교단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총신신대원에서 배우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껄끄러운 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서의 ‘오순절운동과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급부상’ 부분을 읽으면서 필자가 느껴왔던 부분들이 무엇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본인이 섬기는 교회는 담임목사님의 사모님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교회로서, 그분의 역할이 교회의 여러 부분을 섬기는 것을 넘어서서 교회를 다스리고 말씀을 해석하여 가르치는 정도에 이르렀다. 필자는 이러한 부분에서 목회의 질서에 대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개혁신학과의 신학적인 일불치가 적지 않음을 느껴오던 차에, 한국기독교회사3권에서 소개하는 순복음신학의 특징을 알게 됐다. 그분이 합동교회에서 장로교신학과 다른 것을 가르치는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그것이 바로 순복음의 신학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결혼 전에 순복음교회 구역장이었고 후에 고신에서 신학을 하셨는데, 순복음에서 주입된 요소들(기복적 번영신학, 공로주의, 혼합주의 및 신사도적은사주의 등)이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내가 받은 개혁신학이 얼마나 귀한 것이며, 얼마나 복된 것인가라는 것에 대해 더욱 감사하게 됐다. 성경의 무오와 불오를 확신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경을 성경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자유주의신학은 거론할 여지가 없는 것이고, 비록 복음주의 안에 있다 하더라도 성경을 성경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더 깊이 깨닫게 된다.
본서에서 소개하는 순복음교리의 많은 부분(삼박자구원, 오중복음, 구원받은 자는 다 방언을 할 수 있다, 신유은사집회, 물질을 안 드려서 물질을 안주신다, 성령세례, 가문을 타고 내려오는 저주, 미신적 성속이원론, 세대주의적 종말론, 다양한 종류와 방법의 기도, 직통계시, 기름부음 사역, 레마의 말씀 등)을 합동교단인 필자의 교회에서 들어온 것이 현실이고, 심지어 그런 내용들이 장로교 정통신학이 아니라는 것을 신대원에 입학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정통 교리인 것으로 믿고 있는 성도들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본인이 사역하는 교회만의 문제인 것인가? 그랬으면 좋겠지만, 왜 합동교단의 교회에서 개혁신학 외에 다른 신학이 판을 치고 있는데도 그것이 허용되는가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리라고 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신학보다 번영(소위 말하는 부흥과 형통)이 우선하기 때문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본서에서 사회만이 아니라 교회의 전반에서 선명하게 나타나는 양극화문제의 현상과 원인 그리고 해결책에 대한 제시가 큰 도움이 됐다. 일반 세상의 실용주의 마케팅의 원리가 교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는(p545) 저자의 지적은 그야말로 적절하다. 성경대로 목회하지 못할 것이면 목회를 안 하면 되는 것인데, 교회의 이름으로 자기 사업을 하는 한 양극화의 문제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필자의 안에도 어느새 익숙해진 것이 세속화가 아닌가? 세속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신자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바른 초점을 갖고 살아가면서도 항상 그 초점을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업임에 틀림이 없다. 모든 결정의 순간에 내가 말씀을 따라가는지 아니면 이익을 따라가는지를 판단해야하고, 모든 상황마다 내가 합당한 고난을 피하려고 말씀을 시인하는지 아니면 부인하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자문해야 한다.

필자의 신앙 연륜이 짧은 까닭에(38세에 처음 교회에 출석했고, 신대원3학년 현재 46세) 한국교회사의 흐름을 잘 알지 못했고, 여러 교단들이나 신학교들의 특성과 분열의 이유 등에 대한 지식이 없던 차에 본서의 설명과 지도를 통해서 그에 대한 지식과 분별을 쌓아가는 계기가 되었음에 감사한다. 빠른 시일 안에 전권을 다시 정독하며, 숙지해야 하겠다.

감사합니다.
작성일:2019-12-18 16:02:23 183.98.10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