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자유게시판

제목

한국교회사전체서평/3-5반/2017210294/백창록

닉네임
백창륵
등록일
2019-12-19 19:34:24
조회수
299
첨부파일
 한국교회사3최종과제3-5백창록.hwp (194048 Byte)
한국교회사 3권 서평
3-5반 / 2017210294 / 백창록

한국교회사 3권은 혁명시대부터 시작된다. 이승만 정권과 한국교회의 정치 참여 상황에 대해 다루며, 마지막은 현재까지, 그리고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하며 마무리된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발전 그리고 세계화는 확실히 이 시대 한국 근대사를 상징하는 키워드였다. 전태일 분신사건, 5.18 광주민주항쟁, 그리고 6월 민주항쟁에 이르는 일련의 민주화 운동에서 교회는 일정한 몫을 감당했다.
확실히 한국교회는 1960년대에 정치사회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41.9혁명 이후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기독교가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수난 당하는 자, 고통 받는 자, 억압과 탄압을 받는 자를 외면하지 않았다.
이렇게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세속화 물결이 기독교 대학들 가운데 깊숙이 침투했다. 90년대는 물질주의와 배금주의사상이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영적 가치를 중시하던 환경이 점차 사라지고 어느새 물량에 의해 판단되는 경향으로 변천을 맞았다.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고 윤리적 타락이 강해졌는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반 사회원리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그대로 동화되기 시작했다.

통일문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진다. 북한의 김정은이 등장한 후 북한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통일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는데도 통일 문제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급한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치며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어준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통일의 방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너무도 급속하게 진행되는 보수와 진보의 이데올로기 대립은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의 갈등을 부추기며 무섭게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오늘날처럼 첨예하게 진행된 적이 없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대정부, 통일, 대선, 북한문제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의견차로 이어져 한국교회 안에 기왕의 wcc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책이 말하는 것처럼 실추된 교회의 명성을 회복하는 길은 성령의 권능 외에는 달리 길이 없으며, 한국교회가 복음 본래의 사명, 복음전파, 복음의 순수성 계승, 그리고 복음의 대사회적 책임을 온전히 회복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다. 동의한다.

또한 책은 대형교회와 물량주의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었다. 세상을 변혁시켜야 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는데, 대형교회는 끝없이 대형화를 추구했다. 대형교회들의 방송설교는 기업화된 대교회주의와 물량주의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김영재 교수는 이렇게 비판하는데, “여력이 있는 교회는 교회의 비대만을 기획한다. 마치 대기업으로 발전하듯이 웬만큼 실력 있는 교회는 이제는 또 많은 돈을 들여 별장을 짓는데 소모한다.” 라고 말이다. 이는 소수가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1987년에 미국 크리스차니티 투데이가 예견한 것처럼 성장병에 걸린 한국교회는 타락과 몰락의 길로 가고 있다.
이런 모습은 과거 사회와 민족을 선도하던 개신교의 모습은 찾을 수 없을뿐더러 지탄의 대상으로 몰락했다. 심지어 극단적이고 모욕적인 용어를 써가며 한국기독교를 싸잡아 매도하는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대형화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자 1980년에 한국은 도시화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됐고 이러한 현상에 힙입어 교회도 성장과 초대형교회들이 서울에 등장했다. 한국도 서구처럼 정치, 경제, 정보, 문화, 대중교통을 통합한 메트로폴리탄 현상이 등장했다.
교회개념도 한 지역을 담당하는 교회에서 전 도시를 대상으로 한 메트로폴리탄 교회로 변천했다. 1980년대 초대형교회가 강남에 화려한 교회당 건축을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중대형교회들 가운데서도 1990년대에 접어들어 교회당 건축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교회건축은 작은 시골까지도 많은 교회들이 비전이었다.
도시와 농촌이 양극화되고, 동시에 한국교회 신앙의 양극화도 이루어진다. 한국사회에 진행되는 양극화 현상은 한국교회 안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보수와 진보로 한국교회는 이분화되었다. 그 결과 한국교회 신앙의 성격은 교파마다 달라진다.
신학생의 보수성은 예장 합동, 침례교, 성결교, 예장통합, 감리교, 기장 순으로 말한다. 보수는 신학적 관심을 ㅁ라하고 진보는 사회적 관심을 말하게 된다. 진보와 보수는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진보는 신학적 관심보다는 연합을 추구하면서 윤리적이고, 사회적 관심에 더 집중하는 반면 보수는 신앙의 순결을 강조하면서 성경적인 진리를 추구하고, 세상을 죄악된 것으로 보며, 개교회주의와 개인구원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또 새로운 특징은 복음주의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계복음화대성회로 대변되는 대중전도운동과 민족복음화운동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며 발전했다. 복음주의 자의식과 복음주의 정체성을 가진 교회들의 급부상은 복음주의운동을 저변 확대시키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제자훈련과 코스타 그리고 그 외 평신도 운동을 통해 평신도의 리더십이 부각되고 평신도들의 역할이 재조명을 받았다. 이렇게 한국에서 복음주의 운동과 해외선교가 맞물려 진행되었다.

재미있는 현상은 제자운동의 발흥이 있다. 그 역사적 배경을 보면, 사랑의 교회가 역사에 등장하던 1970년대 후반부터 2010년까지 약 30년동안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서울 시내 기성 교회들의 출석률이 감소하고, 성장을 구가하던 한국 경제도 90년대 말부터 전에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교회의 정체 현상은 서울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90년대 이후로 가톨릭은 계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반면 한국개신교는 전반적으로 정체기 혹은 침체기로 접어들었다는 징후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한 10월 재림론이나 류광수 다락방과 같은 불건전한 이단이나 교회 프로그램들이 교계에 파고들어 현실 교회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운동이 발흥했는데, 옥한흠 자신이 고백하듯 일종의 시대적 부름이었다. 그 후 30년동안 복음주의 공동체 안에 일어난 제자운동은 성령운동과 더불어 한국교회 성장을 주도했다. 사랑의 교회 옥한흠은 제자훈련 운동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 제자훈련이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78년 사랑의 교회가 설립되고 제훈련을 교회에 접목시키면서부터였지만 이전부터도 왕성했다. 특히 84년에는 제자훈련을 접목한 새로운 목회가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그는 평신도를 깨운다는 제자훈련 이론과 실제를 집대성한 책을 출판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제자훈련을 다른 목회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를 개설했다.

이렇게 한국교회에 위기는 늘 있었고, 그에 따른 시대의 부름을 받은 인물들도 있어왔다. 여전히 위기는 더 깊어지고 답은 없어보이지만 모두가 시대의 부름을 받은 사람인냥, 최선을 다해 본질을 붙잡아야 할 것이다. 교회사를 통해 앞으로 무엇에 집중해야할지 정리하며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작성일:2019-12-19 19:34:24 175.223.1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