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20/Bercovitz Zacharias, Nina Bierman

닉네임
김세현1
등록일
2020-07-06 15:43:52
조회수
659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1반_20_김세현.hwp (9444864 Byte)
Ⅰ. 기본사항

1. 이름 : Bercovitz, Zacharias / 버코비츠 /
1. 생몰연도 : 1892. ~ 1984. 12. 3.
1. 출신 및 소속: 미국
1. 한국선교기간 1925. ~ 1934.
5. 연표

1892. 미국 출생
1924. 9. 안동선교부 부임
1925. 의료선교 활동 계시
1929. 부인과 함께 안식년
1930. 평양기독병원, 부인 『평양 어린이 보건소 봉직』
1934. 은퇴후 귀국
1978. 8. 숭전대에서 강연
미국 캘리포니아 타졸라 스크립스 에모리엘병원 자문위원
1984. 12. 3 사망

6. 가족사항
1) 부인
(1) 이름: Bercovitz, Nina Bierman (부인)
(2) 생몰연도 : 1984. 7. 9. ~ 1974. 11. 4.
(3) 출신 및 소속: 북장로교 소속
(4) 한국선교기간 1925. ~ 1934.
2) Mary Caroline Bercovitz (딸)
3) Samuel Timothy Bercovitz (아들)


Ⅱ. 선교사 소개: 버코비치 (Bercovitz, Zacharias, 1895-1984)

1. 전체적인 소개
버코비치 (Bercovitz, Zacharias, 1895-1984) 북장로교 선교사, 의사이다. 미국에서 출생한 그는 1924년 9월에 내한하여 안동선교부에 부임하였다. 그러나 의료선교에 대한 당국의 허가와 어학습득 관계로 1925년에야 활동을 개시하였다. 도착한 해인 1924년에 촉탁을 받아 이조 마지막 왕비 윤씨의 치료를 맡아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그의 부인(Nina Bierman)은 간호원으로서 내조했다. 1929년 부인과 함께 안식년을 맞아 귀국하였고 일년후 1930년에 돌아와 평양기독병원에 재직하는 한편 부인은 『평양어린이보건소』에 봉직하였다. 1934년 부인과 함께 선교일선에서 은퇴, 본국으로 돌아갔다. 1978년 8월 『한국국제문화협회』 초청으로 일시 내한하여 숭전대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78년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타졸라의 스크립스 에모리엘 병원의 자문위원이었다.


2. 안동지역의 선교
기록에 의하면 버코비치는 안동 지역을 중점으로 의료 선교를 했다. 실상 버코비치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기 때문에 안동 지역의 특이성을 고려하여 그의 사역을 함께 살펴보겠다. 안동교회의 김광현 원로목사께서 ‘유교의 고장에 기독교가 (왕)성한 까닭’이라는 소책자에서 밝혔듯이, 안동지역에 온 미국 선교사들은 처음부터 안동의 전통문화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것은 안동의 문화의 접촉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방향성을 갖고 있었다. 선교사들은 전통 문화를 인식하여 ‘안동 사람’이 되어서 복음을 전파했다고 판단된다. 즉, 지역의 문화전통을 ‘존경’한 선교사들의 자세는 안동지역의 기독교가 유교전통문화의 토양에서 싹이 트고 자라는 첫 걸음이었다고 본다. 김광현 목사에 따르면, 안동에서 일한 선교사들은 특별히 유림(儒林)선교를 위해 크게 애쓰고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여기서 의료선교사인 버코비치(Bercovitz) 부부는 도산(陶山) 종가에 자주 방문하면서 선교에 힘썼다고 한다.


3. 안동 성소병원
버코비치가 근무했던 성소병원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1909년 안동에서 의료사업을 시작한 미 북장로교 선교사 플레쳐(A. G. Flether)는 1911년 큰 기와집을 구입하여 대기실, 입원실, 응접실, 목욕실, 진찰실 등을 갖춘 진료소로 개조했다. 1914년에는 미국 뉴욕의 쇼플러(A. F. Schauffler)가 기부한 1만불에 힙입어 30*70피트 규모의 2층 벽돌 건물인 성소병원(Cornelius Baker Memorial Hospital)을 건축할 수 있었다. 20개 병상과 남녀로 분리된 진료실, 대기실을 갖춘 성소병원은 당시 미 부장로교 최고의 시설을 갖춘 선교병원이었다. 그러나 플레쳐, 존슨(W. O. Johnson), 언즈버그(Emma Ernsberger), 스미드(R. K. Smith) 등 잦은 의사 교체와 재정 적자로 인해 시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의사의 부재로 인해 1922년부터 4년동안 패쇄되었던 성소병원은 1926년 버코비츠(Z. Bercovitz) 부부가 부임하면서 재개되었다. 가을에는 선교사 2세대인 샤록스(E. J. Sharrocks)가 간호사로 임명되어 오고 1927년 전기시설과 엑스레이가 설치되면서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1931년에는 바우(H. T. Baugh)부부가 병원장으로 부임하였다.

4. 버코비츠 한국 회상
1978년 미국 원로 선교사인 버코비츠는 한국에 돌아와서 마지막 왕비인 이조 순종황후 윤비의 양의진료를 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나는 『세브란스』병원 의사들의 추천으로 덕수궁에 들어가 3차례에 걸친 윤비의 내과 진료를 하고 약을 지어 드렸습니다. 손은 물론 청진기도 못됐고 통역을 통한 증세이야기만 듣고서 판단하는 『언진』을 했지요.” 버코비츠 박사는 한국에 들어와 10년 동안 경북 안동·평남평양 등지에서 헌신적인 의료봉사 활동을 벌였다. 안동에서 병원을 개원하고 간호원인 부인과 함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인접지역의 장날마다 직접 나가 인료봉사를 전개하고 간호보조원을 양성하기도 했다. 버코비츠 박사는 한국에 근무하면서 1930년대 초기의 풍물과 생활상 등을 『무비·카메라』로 촬영해 놓았던 것을 이번 방한과 함께 우리나라에 기증하기도 했다.


5. 안익태와 관련성

핀드레이 제일장로교회가 안익태를 초청해 1933년 1월 1일 연주회를 열었다. 이때 이 교회가 파송한 버코비츠 부부가 평야에서 의사와 간호사로 활동 중이었는데, 안익태가 평양 출신인 것을 알고 선교기금에 마련에 활용하려는 의도도 내포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핀드레이드라는 작은 도시에서 1932년 가을부터 4개월 동안 6차례나 열린 ‘안익태의 첼로 연주회’는 핀드레이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 안익태가 신시내티를 떠나 필라델피아의 템플대학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6. 정리
버코비츠는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10년동안 머무르면서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선교했음을 찾아볼수 있다. 먼저 그는 마지막 왕비인 순종황후윤비의 진료를 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안동 지역에서 부부와 같이 의료 선교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안동 지역의 특수성과 함께 말씀으로 접촉하려는 시도와 그곳에 병원을 맡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모범이 된 그들의 모습속에서 선교의 현장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작성일:2020-07-06 15:43:52 175.199.2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