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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51/ Leck, George(1870-1901, NP) / Leck, Frances Oakley

닉네임
fusnaho6681
등록일
2020-07-09 23:39:33
조회수
929
첨부파일
 2020_내한선교사.hwp (396288 Byte)
Ⅰ. 기본사항

1. 이름
Leck, George, Leck, Frances Oakley (렉크 / 羅조 / 미국 / 미북장로회)

2. 생몰연도
11/12/1875~미상(Leck, Frances Oakley)
9/9/1870~12/25/1901(Leck, George)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NP

4. 한국 선교기간
1900년-1901년

5. 연표
1900.10.18.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평양에서 1년간 체재
1901 선천에서 선교활동
1901.11.2 조사 양전백과 강계지방으로 전도여행
1901.12.15 선천으로 귀환도중 천연두에 걸려 소천
1902.3 부인이 유복자 출산후, 12.1. 사직하고 귀국
1907 강계겨울 성경학교 학생들의 헌금으로 기념비 세움

6. 가족사항
Leck, Frances Oakley(부인)

7. 논저
현재 기록이 없음.

8. 학력
Leck, George, Leck, Frances Oakle 맥칼레스터대학, 오번신학교

9. 내한 및 한국에서의 선교사역
복음과 교육, 스테이션 건축, 강계지방 전도여행

10. 내한-이한연도
1900-1901( Leck, George)
1900-1902( Leck, Frances Oakley)

Ⅱ. 선교사 소개
렉크 Leck, George

1870-1901. 미북장로교 한국선교사. 한국명 나조(羅?). 1900년 10월 18일 부인(Frances Oakley)과 함께 내한하였다. 1년동안 평양에 체제한 뒤 1901년 선천에 주재하면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해 11월 2일 조사 양전백(梁甸伯)과 함께 선천을 출발하여 강계지방으로 전도여행을 하였다. 12월 6일 강계에 도착하여 5명의 세례지원자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강계교회 설립자의 한 사람인 이학면(李學勉)을 집사로 임명하여 교회의 초석이 되게 하였다.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평북 일대를 여행하여, 평당에서 9명의 결신자를 얻고 3명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영변에서는 27명의 결신자 중에서 14명이 세례를 받도록 하였다. 초산읍에서 5명의 결신자와 그중의 3명의 세례교인을 얻고, 석포동에서는 부채에 잡힌 예배당을 회수하는 한편 16명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다시 초산읍에서 12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산천으로 돌아오던 중 12월 14일 운산(雲山)에 있는 미국인 모르스(Mores)가 경영하는 광업소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천연두에 걸렸다. 의주에 있던 휘트모스(N.C.Whittemore)와 광업소에 있던 파머 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크리스마스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광산촌 치타발비에 묻혔고 1907년 그의 선교정신을 기리는 뜻으로 강계겨울성경학교 학생들이 헌금하여 비석을 세워 기념하였다. 그의 부인은 그의 별세후에 평앙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1902년 3월 유복자를 낳았고 그해 12월 1일 선교사직을 사직하고 귀국하였다.

곽안련은 1902년 8월에 선교지인 한국으로 떠나, 1902년 9월 22일 한국에 그의 부인과 함께 도착하여 본격적인 선교사역에 감당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그보다 먼저 도착한 조지 렉크에 의해 도전을 받고 선교사로 한국에 지원했다고 한다.

Leck, Frances Oakle



Ⅲ.사진 <조지렉크 사진>
작성일:2020-07-09 23:39:33 125.129.14.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