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39 / Bryant Evans(1839-1918 BFBS)

닉네임
손요한
등록일
2020-07-17 18:57:34
조회수
959
첨부파일
 내한선교사 : 39 : Bryant Evans(1839-1918 BFBS) 3-1 손요한.pages (399019 Byte)
*기존에 올렸던 파일이 다운로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셔서 재업로드합니다.

한국교회사 기말보고서

Ⅰ. 기본사항

1. 이름 : Bryant, Evan
2. 생몰연도 : 1839. 4.22 ~ 1918. 3.28
3. 출신 및 소속 : 영국,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
4. 한국선교기간 : 1887, 1889, 1890년 한국방문


5. 연표
1885 영국성서공회의 한국, 만주 성서사업 책임자로 임명
만주에서 로스역 성서출판 및 반포사업 추진, 서상륜, 백홍준, 최명오 등 파송
1887. 3 부산에 도착, 책방을 차리고 성서판매사업 시작
서울에서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과 한국 성서사업에 대한 계획 협의
1889, 1890 각각 내한, 영국성서공회 한국지부 설립 모색
1895 한국지부 설립 때까지 성서사업 관리

6. 가족사항
브라이언트는 1839년 웨일즈의 Hirwaun, Breconshire 에서 데이비드 브라이언트와 마가렛 에반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해리엇 레이첼 조이스와 결혼하여 1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1918년 3월 28일 영국의 Yelvertoft, Northamptonshire에서 사망하였다.





브라이언트의 가계도


Ⅱ. 선교사 소개 : 브라이언트(Bryant, Evan)
브라이언트목사는 영국성서공회 소속 목사로서 한국어 성경 번역과 보급, 영국성서공회 한국지부 설립 등으로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이언트에 대한 소상한 자료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어 성경의 번역과 보급 과정을 소개하는 책들 가운데서 몇 차례 언급되어지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한글성서와 관련된 서상륜의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되어진다. 서상륜은 이응찬 등 의주 출신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로스를 도와 한글 성서를 번역하고 찍어내는 일에 헌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만든 한글성서를 보급하여 복음을 전함으로써 초기 한국인 신앙 집단을 지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서상륜은 영국성서공회(BFBS)의 매서인 자격으로 국내로 파송되었다. 그의 활동 목적지는 서울이었다. 이때 브라이언트는 영국성서공회의 한국, 만주 성서사업 책임자로 임명된 상태였기 때문에 서상륜을 영국성서공회의 매서인 자격을 주어 파송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그들에 앞서 활동했던 성서공회의 사역에 감사해야 할 이유를 갖고 있었다. 스코틀랜드국립성서공회 대리인 윌리암슨(A. Williamson) 목사와 로버트 J. 토마스(Robeert J. Thomas) 목사에 의해 기금과 한문 단권성경들이 그들에게 제공되었다. 토마스 목사는 1876년 9월부터 12월까지 한국 서해안에서 성경을 배포하였고, 다시 이듬해 9월에 평양에서 비운의 미국 스크루선 ‘제너럴 셔먼’(General Cherman)호의 선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할 때도 성경을 배포하였다.
10년 후(1875)에 만주의 존 로스(John Ross) 박사가 한국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이 사역에서 기독교인이 된 한국인 두 명과 그의 동료인 존 매킨타이어(John Mclntyre)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이 번역을 위해서 사용했던 돈이 1881년에 영국과 해외성서공회에 의해 다시 적립되었고 이듬해에 3천 권의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출판되었다. 이 간행본들은 권서들에 의해 만주 동부의 계곡들과 압록강을 따라 한국인들에게 널리 배포되었다. 의주 인근은 백홍준이 배포하였고, 소래와 서울은 서상륜이 배포하였다. 당시에(1883년) 한국은 브라이언트(E, Bryant) 목사가 일하는 영국과 해외성서공회 북중국 지회와 접목되어 있었다. 같은 해에 한국인 기독교 개종자 이수정이 일본에서 마가복음을 한국어로 번역하였으며, 미국성서공회에 의해 1천 권이 출판되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1885년에 한국에 올 때 이 간행본을 여러 권 가져왔고, 서울에 도착한 후에는 소래와 서울에서 서상륜이 로스역본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배포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1885~1887년 동안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새로이 마가복음을 번역하여 1887년 3월에 스코틀랜드국립성서공회를 통해 2천 부를 출판하였다. 같은 해에 전체 신약성경의 로스역본이 영국과 해외성서공회에 의해 출판되었다.
브라이언트 목사가 1887년 3월 부산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 영국과 해외성서공회 서점이 있고 중국인 선교사 한 명이 교회선교회(Church Missionary Society)에 의해 파송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브라이언트는 또한 알렌(H. N. Allen) 박사 부부의 손님이 되어 서울을 방문하였다. 툴리(R. T. Turley)가 영국과 해외성서공회에서 만주와 한국을 위한 보조직원으로 임명되었으며, 권서 두 명이 한국 북부지방을 위해 고용되었다.
1887년 2월 7일에 언더우드가 그 전에 일본 주재 헵번(J. C. Hepburn) 박사로부터 들었던 조언을 좇아 한국 상설성경실행위원회(Permanent Executive Bible Committee of Korea)를 결성하는 기념할 만한 일이 이루어졌다. 아펜젤러가 간사로 선출되어 1902년에 죽을 때까지 그 일을 계속하였다. 첫 모임에서 참석한 위원들, 곧 언더우드, 아펜젤러, 헤론(Heron) 박사, 스크랜톤(Scranton) 박사 등은 그들이 한글성경 번역을 위한 위원회를 조직하는 데에 합의하였다. 나중에 게일이 헤론의 번역위원회 일을 승계해 1923년까지 계속 위원으로 있었다.
북중국에 있는 영국과 해외성서공회 대리인 에반 브라이언트 목사가 1889년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였고, 1890년에 세 번째로 방문하였다. 공회는 1893년 서울에 보급소를 세우고 중국인 권서에게 책임을 맡겼다. 1888년에도 한국성경위원회가 나서서 세 성서공회들(미국, 영국, 스코틀랜드)에게 “우리가 번역한 성경을 출판하는 일에 참여할 것인지를 묻고, 그 성경들 중의 일부는 올 해 안에 다 끝내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피력하였다.”
1895년에 영국과 해외성서공회가 서울에 보급소를 열고 켄무어(A. Kenmure)를 대리인으로 임명하였다.
참고도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내한 선교사 총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서울:1994),

목회와 신학 1996 10-12, 한국교회사의 서장을 연 무관의 전도자 서상륜,

해리로즈 지음, 최재건 옮김,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연세대학교 출판부(서울:2009),
작성일:2020-07-17 18:57:34 14.5.14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