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의 역사와 관련하여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고찰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부흥의 계절을 허락하실 때 다양한 사람들을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사실이다. 신학훈련을 충실하게 받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만 아니라 평신도들을 들어 부흥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마치 사도행전과 초대교회 역사에 그가 12사도인지 일곱집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성령의 강력한 부으심을 경험하고 성령의 권능을 받았는지 하는 것이 중요했다. 때문에 지난 기독교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도구로 쓰임 받은 것처럼 부흥의 계절을 위해서도
프랭크 비어즈리(Frank G. Beardsley)가 자신의 저서 미국부흥운동사(A History of American Revivals)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흥운동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였다.” 일생동안 부흥을 사모하며 부흥을 연구했던 로이드 존스 역시 청교도(The Puritans)에서 똑 같은 고백을 했다. “분명히 교회의 진행과 발전 역사는 주로 부흥의 역사였고, 성령의 강력하고 예외적인 부으심의 역사였다.” 구약과 신약시대는 물론 21세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부흥과 영적각성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끌어 오셨다. 워드(
에이피온 에반스는 이렇게 부흥을 정의한다: “어떻게 부흥을 정의할 수 있는가? 부흥은 성령의 주권적이고 즉각적이고 구원하시는 활동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편만감을 고양하고, 그리스도를 높이며, 교회의 삶을 활력있게 만들거나 일깨우는 등 그 영향이 광범위하고 강력하다. 하나님께서 부흥을 시작하시고, 유지하시고, 컨트롤하신다. 그래서 부흥은 하나님의 역사가 인간기구(조직)에 의해 수행되는 복음전도와 구분된다. 부흥은 복음전도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차이점들을 구분시키는 것이다. 부흥은 또한 예행연습없이(unrehearsed
현대적 의미의 부흥운동 혹은 영적각성운동은 종교개혁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청교도운동과 경건주의운동은 근대 부흥운동의 중요한 영적 토양을 제공해주었다. 부흥이라는 말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도 청교도에 의해서였다. 1662년 헨리 베인(Henry Vane, 1613-1662)이 급하고 강한 부흥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의 겸손한 시도에서 리바이벌을 “성령의 흘러들어옴”(effusion of the Holy Spirit) 또는 성령의 부으심(the outpouring of the H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