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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Amendt, Charles C.(1892-1962, M) / Amendt, C. C.(미상, M)
 작성자 : 김충만 이광영  2019-06-20 21:53:03   조회: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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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정보

1. 이름: Amendt. Charles C. / 아멘트 / 安明道(안명도) / 미국 / M
2. 생물 년도: 1892~1962
3. 출생지: 미국, 오하이오주, 필라델피아(New Philadelphia, Ohio).
4. 학력: 마운트 유니온 대학(Mount Union College, Alliance, Ohio) / 보스턴 대학 신학부, 신학과 문학 학사(Boston University School of Theology, B.A. and S.T.B.).
5. 경력: 1917년(1918년) Edith Gladwyn Anderson과 결혼, 미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공주에
주재하며 천안, 서산, 안면도 등 순회, 영명학교장, 충청지역 감리사로 많은 교회 설립.
1922년 영명학교 학교장.
1929년 방은두 병원(공주기독의료원) 병원위원.
1940년 귀국 (1941년 귀국) 건강상 문제로 귀국해야 했음.
1947년 재 내한 (1946년 재 내한).
1950년 귀국 (1948년 귀국).
귀국 이후 오하이오 동북연회(North-East Ohio Conference)에서 목회하였다.
6. 가족사항: Amendt. C. C. (부인), 본명은 Edith Gladwyn Anderson.
Amendt. Roger (아들).
7. 논저: “The contributions of Confucianism to Korean character”, 1924, Boston University.



Ⅱ. 선교사 소개

1. 서론: 예수님의 선교를 본받다
개화기의 한국 선교는 교회를 세우고 바로 복음만 전하는 방법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당시 고종은 학교와 의료사업만을 허가했고 감리교 선교사들은 학교와 의료사업을 병행하였다. 아멘트는 감리사로서 의료사업과 어린이 양육, 우유사업, 일자리 제공 등의 필요성과 성과에 대해 수차례 보고했다. 그는 생명을 돌보고 고치는 사역이 구령에 최고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선교 방향의 구심점으로 1902년 설립한 공주제일감리교회가 있었다. 공주제일감리교회는 공주 지역의 전초기지(Base Camp)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의료, 교육, 일자리 등 모든 분야의 선교가 이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아멘트는 1929년에는 병원위원으로 수고했고, 병원의 자금조달과 시설 확충을 위해 큰 역할을 했다. 1935년에만 9만여명의 환자를 치료했고 우유보급 사업으로 35%의 유아 사망률을 5% 이하로 낮추는 성과를 보였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선교 방향이 예수님을 모델로 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예수님은 성경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사람들을 치유하셨다. 여기서 그들은 복음의 순수성과 전파와 함께 복음의 사회적 대책임을 수행한 것이다. 이는 충청도 지역 사회가 근대화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2. 본론
1) 한국의 독립을 일깨우다
아멘트는 선교를 위해 1918년 겨울, 한국에 입국했다. 그의 사역은 정치적, 경제적 격변의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불과 3개월 후, 1919년 3월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공주지역은 그의 활동지역인 공주제일감리교회와 영명학교 기숙사 터를 중심으로 목사와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4월 1일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3.1운동의 주역인 유관순은 영명학교를 졸업 후 이화학당으로 진학했는데 유관순의 정신은 영명학교에서 선교사들을 통해 형성된 것이었다. 아멘트는 이 시기 일본의 한국인 학살을 목전에서 목격하며 일본의 한국 지배에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근대화와 복음화를 위해 일제치하에서 한국의 독립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낀 그는 한국의 독립을 간절히 염원했을 뿐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까지 실행에 옮겼다. 아멘트는 일본에 의해서 한국에 학교가 세워지는 것에 대해 강력한 반대운동을 펼쳤다. 그는 한국이 독립하기 위해서는 독립심과 지성적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 교육은 특히 다가올 10년과 급속한 변화에 따른 면역성을 기르는데 목적을 두었다. 그는 1922년 안식년을 맞은 윌리암을 대신하여 영명학교의 교장직을 맡게 되었는데 당시 그는 독립운동 때문에 한 학급을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확보된 최고의 교사들과 독립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과 교육열에 가득 찬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보고했다. 아멘트는 한국의 독립 운동을 함께 준비하는 선교사였다.
2) 성경적 세계관으로 사람을 세우다
아멘트는 한국인의 교육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자금 확보에 큰 역할을 하였다. 아멘트의 교육방침에 따른 보고에 따라 감리교는 공주 지역에 많은 수의 교사들을 확충할 수 있게 만들었고, 한국사에 길이 남을 인물들을 배출했다. 공주영명학교와 공주제일감리교회를 통해 유관순을 비롯한 시인 박목월, 신홍식, 황인식, 윤창석, 오익표, 안성호(2·8 독립선언 주도) 등 다수의 독립 운동가와 교육자들이 배출되었다.
아멘트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이들을 배출하기 위해 모든 것을 주기만 하는 정책이 아닌 이른바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한국의 학생들이 스스로 자립하고 독립하고 행동해 나갈 수 있도록 월사금이나 학비를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충당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일례로 영명학교 선교사들은 석유를 판매하는 사업을 텍사스 석유회사를 설득해 학교가 대리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석유 배달을 학생들에게 시켜 돈을 벌게 해주었다. 또한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교회에 목회자를 세울 수 있도록 교육하여 한국인이 스스로 교회를 세워 나가고 치리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특별히 이들은 당시 한국의 소외된 여성의 교육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양반의 집에서는 왜 여성이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직접 설득했고 가난한 집에는 월사금을 면제해주면서 교육을 독려했다. 또 당시 여성들의 이름에는 서양식 이름이 사용된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하층민 여성에게는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 선교사들이 지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여성교육은 결국 유관순, 박화숙, 김현경, 전밀라 등과 같은 여성 목사, 지도자들을 배출시킬 수 있었다.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근대 교육을 시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책이었다. 그러나 일제시대 지방도시 공주지역에 귀한 서적들이 넉넉할 리가 만무했다. 아멘트는 감리사였지만, 감리사로서 윗자리에 있기보다 모든 사역들을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아멘트는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한 서적을 직접 발로 뛰어 구하기 시작한다. 아멘트는 서울에서 오토바이를 구해 궤짝에 성경과 기독교관련 서적들을 가득 실어 담아 공주로 가져와 산들을 오르내리며 책을 나누어 주는 일들을 했다. 그래서 그는 ‘책 궤짝 감리사’로 불리우기도 했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높아지지 않고 낮아지려는 겸손한 사역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3) 빛 앞에 그림자로 살다
아멘트의 선교활동에 대한 자료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멘트가 감리교 감리사였기 때문인데 이해를 위해 감리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멘트는 충청도 지역의 감리사로 활동했다. 감리사는 미세한 한 지역이 아니라 감독을 도와 지방회를 관리하고 책임을 맡은 지방회의 모든 선교사들을 지도한다. 주로 지방을 순회하고 교회의 사무, 영적, 물질적 상태를 시찰하고 보고한다. 아멘트는 지역의 총 책임자도 아니었으며 각 도시지역의 책임자도 아니었기에 그의 이름은 쉽게 찾아볼 수 없고 다만, 그의 보고들을 통해 그의 흔적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감리사로서 그는 시찰과 보고만 한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을 교육했으며 각 지역에서 일손이 부족하거나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어떤 역할이든 대신 해내는 면모를 보였다. 축구선수로 비유하자면 어떤 포지션이든 소화해 내는 멀티플레이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는 윌리엄 교장의 안식년에 교장 대행으로 수고했지만, 그의 수고는 심지어 영명학교에조차 거의 기록이 없다. 또 의료사업에서도 큰 자금들을 끌어모았고 병원위원이 부족할 때 병원위원으로 수고했다.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 날의 주역들을 기념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역들의 저변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한국의 독립과 교육과 근대화를 위해 섬긴 아멘트 같은 선교사들의 수고와 땀이 있다는 것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돌아보고 추모할 겨를도 없이 한국 선교에 온 힘을 다했다. 아멘트는 1927년 한국에서 그의 아내와의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결혼 후 9년만에 품에 안게 된 아들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의 유아 사망률은 35%였다. 그의 아들 역시 한국의 풍토에 견디지 못했고 1년 후에 사망하였다. 한 아이의 부모로서 그와 그의 아내에게는 그러한 슬픔을 돌아볼 틈도 없었다. 1927년과 1928년 기독교 감리교 연회록에는 그가 충청도 전 지역을 순회하고 작성한 교육, 건축, 의료에 대한 감사 보고서가 기록 되어있다. 이 보고를 위한 순회와 사명은 그의 아들의 죽음조차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30여년의 세월을 오직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건강상 이유로 인해 귀국했을 때도 지속적으로 한국에 대해 보고하며 연구했고 그의 설교에 한국은 수시로 언급되었다. 그렇다. 그는 한국 복음사역과 결혼한 것이다.

3. 결론: 현대에 남아있는 흔적들
아멘트의 보고를 종합하면 그들의 선교는 의료를 통한 생명, 유아부터 고등교육, 자립할 수 있는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복음과 함께 세우는 총체적 선교였다. 현재 공주제일감리교회의 건물은 문화재로 등록되었고 예배당, 박물관 등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하루에도 수십명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공주시는 이들 선교사들의 활동이 공주시의 복지와 근대화에 큰 공헌을 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많은 돈을 들여 기념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기독교와 당시 선교사들이 공주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비기독교인들이 연구하여 배포하는 실정인 것이다. 오늘날 실추된 기독교의 이미지는 공주 지역에서는 예외인 듯하다. 우리는 예수님을 모델로 삼은 총체적인 선교의 방향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낮은 자리에서 섬겼던 그들의 태도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19-06-20 21: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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