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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Sawtell, Chase C.(1880-1909, NP) / Sawtell, Katherine McClung

닉네임
hyukie
등록일
2017-06-22 23:48:41
조회수
2035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기말보고서_M0086_2015210113_이우혁.hwp (306688 Byte)
1. 기본 사항

-한국 이름: 사우대(소텔)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회 목사, 선교사, 의료인
-생몰 연도: 1881-1909년
-한국 선교 기간: 1907년 10월 16일~1909년 11월 16일(2년 1개월)
-연표: 1881년 1월9일 출생
1907년 10월16일 대구선교부
1908년 12월1일 안동선교부
1909년 11월16일 별세


2.선교사 소개

-생애:
소텔 선교사는 1907년 10월16일 부인(Katherine Mc Clung)와 함께 의료선교사로 내한,
곧 대구선교부에 부임하여 의료사업에 진력하였다.
1909년 그는 안동선교부의 의료선교사로 전임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장티푸스에 걸려 그해
11월 16일 별세하였다.
그의 부인은 1911년 1월 19일에 한국선교사직을 사임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벤더리프(B. R. Vanderlippe)와 결혼,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 거주했다.
-사역:
처음에 소텔 선교사는 대구선교부로 파송되었다. 그러나 대구로부터 사흘 길에 있는 북쪽 지방에서 사역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선교회는 자연스럽게 안동에 새 선교기지를 설치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안동 선교기지의 개설이 결정된 시기는 1908년이다. 대구선교기지는 안동에 선교기지를 개설하기 위해 안동에 숙소를 매입할 것과 대구의 한 회원을 임명하여 안동을 중심으로 이 지방에서 일하게 할 것을 위원회 회의를 통하여 채택하였다. 새 선교기지의 개설을 위해 임명된 대구의 회원은 1907년에 선교지에 도착한 소텔 목사였다. 소텔 선교사와 함께 브루엔(H. M. Bruen)이 위원이 되었다. 브루엔과 소텔 그리고 위원회에 참석했던 다른 두 명이 1908년 12월 1일 대구를 출발해 안동읍을 방문하고 숙소용 집을 구입하였다.
1909년 지역분할 계획에 의해 선교기지를 감리교 선교회에 양도하게 되면서 웰번(A. G. Welbon) 선교사와 플레처(A. G. Fletcher)의사가 1909년 11월 안동에 개설될 새 선교기지로 이동하였다. 이들도 안동에서 선교 기지 부지 매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선교기지를 준비하는 동안 소텔 선교사가 죽게 되었다. 소텔과 우레번은 1909년 10월에 함께 순회여행을 하였다. 안동읍에 도착하여 며칠을 머물며 새 선교기지를 세울 만한 곳을 돌아보았으며, 그 후 헤어져 소텔은 북쪽으로 웰번은 서쪽으로 가서 여러 기독교인 공동체들을 방문하였다. 10일 후에 그들이 안동에서 다시 만났을 때, 소텔은 장티푸스에 걸려 고열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선교회의 돈을 아끼기 위해 대구로 가는 길에 가마타기를 거부하고 조랑말을 탈 것을 고집하였다. 그는 가는 도중 12번이나 떨어지면서도 여행을 잘 견뎌냈으나 11월16일에 사망하였다. 소텔의 후임으로 크로더스(J. Y. Crothers) 목사가 임명되었다. 그 이후 안동지역의 선교기지는 성공적이 었다. 1910년에 121명의 세례자들로 시작한지 5년만에 그 수가 1,121명으로(826퍼센트 증가)늘어났다. 1918년에는 교인수가 4천 명을 넘어섰으며, 1921년에는 6천명으로 급속히 증가하였다. 당시의 안동의 선교지지의 장소는 현재 안동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측)가 사용하고 있다.
작성일:2017-06-22 23:48:41 49.175.45.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