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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Bigger, John Dinsmore(1881-1959, NP) / Bigger, Norma Blunt

닉네임
김신영
등록일
2017-06-26 23:58:05
조회수
2009
첨부파일
 기말보고서_M0145_2015210148_김신영.hwp (1116672 Byte)
I. 기본사항
1. 이름: Bigger, John Dinsmore
2. 생물 연도: 1881.-1952.2.12 미국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10-1911. 2. 14.
5. 연표
1911.8.11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부인은 1912.9.21. 내한,
평북 강계 선교부 계리지 병원 책임자로 임명, 부인은 간호원
능률적인 의료선교, 한국인 의료 종사자 양성에 전력

1914.11
만주지역 순회 전도, 의료 활동

1920.7
평양 기독 병원으로 부임

1923
평양 연합 기독병원 발족에 기여

1942
일제에 의해 추방되어 필리핀에 거주

1945.9
재내한, 미국정의 자문관으로 활동

1949
선교사업 재개하여 안동에서 베이커 기념병원 재건
6.25 사변시 일본에서 한국피난민 자문위원회 일원으로 참가
도쿄에서 머물다가 1951년 정년으로 은퇴 후 귀국

1959.2.12
플로리다주 브라덴턴에서 사망

6. 가족사항
- Bigger, Norma blunt(부인)과 2남 2녀


Ⅱ. 선교사 소개
비거는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사로서 의사였다. 그리고 한국식 이름은 백이거이다. 북장로교의지 선교부 파송으로 1911년 8월 11일 내한 했고 부인은 간호원으로 그보다 1년 늦은 1912년 9월 21일에 내한하였다. 평북 강계 선교부 소속 계리지 병원 책임자로 임명되었따. 계리지 병원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제임기간 동안 계리지 병원을 조직화하고 능률적인 의료선교를 할 수 있게 하는데 공헌했다. 그리고 한국인 의료 종사자 양성에 전력을 다했다. 즉 몇몇 조수를 양성해서 치료 일손을 돕게 했고 조수 김호정은 의과 수련 과정을 마치게 하여 만주 지역의 의료선교를 위해 파송하기 하기도 했다. 또한 여자 조수인 김봉순을 세브란스 간호 학교에 보내 정규과정을 마치게 한 뒤 계리지 평원 최초의 한국인 간호원으로 일하도록 했다. 또한 강계 교회 청년 신자 김의문의 학비를 조달해서 세브란스 의과 대한게 진학시켰고 졸업 후에는 계리지 병원과 이웃 박천읍에서 외과 의사로 활약하게 했다. 그는 병원에서의 복음 전도에도 관심을 가져 전도부인을 병원에 상주시켜 환자들에게 전도하도록 하였다. 1914년 11월에는 비거 의사 자신이 길고 어려운 여행을 하여 만주지역 전도에도 나섰다. 흥경 등지를 순회하면서 의료 선교에 헌신하였고 만주인 교회의 연례 성경반을 인도하였다. 1917년 평양 기독병원 의사로 전임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계리지 병원의 후임자가 파송되지 않아 1920년 7월에야 부임했다. 이후 감리교회 경영의 홀 기념병과의 연합 사업에 기여하여 재직중 평양 외국인 학교 교의로도 활약하였다. 그러나 일제 말기인 1942년 미국 선교사 탄압책에 의해 추방되어 필리핀에 머물기도 했다. 그는 미군의 의료담당 자문관에 선임되었고 해방 후 9월에는 진주하는 미국과 함께 재차 내한하였다. 서울에 머물면서 미군정의 자문관으로 크게 활약하였고 1949년에는 다시 선교사업을 시작하여 경북 안동으로 파송되었다. 안동에서 일제 말기 폐쇄된 베이커 기념병원 재건 사업에 몰두하여 어려운 주에도 파괴된 건물을 다시 짓고 병원을 개원하였다. 그러나 다시 6.25 사변이 일어나 북장로회 선교부와 함께 일본으로 피난하였다. 일본에서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구성한 한국피난민 자문위원회의 일원으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도쿄에 수개월간 머물면서 한국 선교의 제개를 기다리다가 1951년 정년 은퇴하여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이후 본국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59년 2월 12일 플로리다 주 브라덴턴에서 별세하였다.
작성일:2017-06-26 23:58:05 49.175.45.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