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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Cranston, Earl(1840-1932, M)

닉네임
하정국
등록일
2017-06-30 11:06:14
조회수
2463
첨부파일
 M0251_2015210204_하정국.hwp (7244288 Byte)
Ⅰ.기본 사항

1.이름: Cranston, Earl(크랜스톤/미국/M)
2. 생몰연도:1840-1932.8.18. 미국 오하이오주 아덴스 출생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898부터 2년간 한국, 중국, 일본 등 피선교지역 연락감독
5. 연표
1840. 미국 오하이오주 출생
1861. 오하이오대학(B.A.) 졸업, 법학 박사, 명예신학 박사 학위 취득.
1866. 동대학원 졸업.
1867. 오하이오주 연회에 입회, 목사 안수.
1867. 마리에타에서 목회.
1868. 포츠마우드에서 목회.
1870. 컬럼버스에서 목회.
1871. 위노아, 미네소타에서 목회.
1872. 잭슨빌에서 목회.
1878. 덴버에서 목회.
1896. 미감리회 감독으로 피선
1896~1904. 오렌곤주 감독
1898부터 2년간 한국, 중국, 일본 등 피선교지역 연락감독
1898.8.25. 내한하여 선교회 주관, 선교지 시찰
1903. 멕시코 관할(멕시코에 대한 미국감리회의 선교 책임 담당)
1904~1916. 워싱턴주 연회 감독
1907. 일본에서 남북감리교 합동 노력
1907.6.18. 미감리회 한국선교연회 제3회 참석.
1932.8.18. 오하이오주에서 사망
기타사항 - 남북전쟁 때 오하이오 보병대와 웨스트버지니아 기병대에서 복무.

6. 가족사항:부/모 - Earl and Jane E. Cranston,
부인 - Martha A. Behan(?~1872.4):1861년 결혼
Laura A. Martin(?~1903.2)
Lucie M. Parker
자녀 – Earl M., Grace, James B., Dora, Ethel, Laura Alden, Ruth(후에 잘 알려진 작가와 강사가 되었다.)
5. 논저:[저서] Breaking Down the Walls
6. 참고문헌:<<기백>>14권; 감리교회사Ⅰ; EWM; SER.


II. 선교사 소개: 크랜스톤(Earl Cranston, 1840-1932)

1. 감리교의 한국 선교를 지휘한 감독

크랜스톤은 2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일본, 중국, 한국 등의 연락 감독으로 사역했다. 그는 1898년 8월 25일 내한하였는데, 그의 주업무는 선교회의를 주관하고, 선교지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가 주관했던 회의록의 내용은 『조선감리회연회록 1』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2. 학문적으로 우수한 인재

그는 오하이오 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였고, 법학 박사와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러나 그의 대학생활에 관해 알려진 기록은 많지 않다.
그의 저술로는 Breaking Down the Walls 가 있다. 이 책은 감리교의 연합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영어로 쓰여졌고, 182페이지 분량이다. 1915년에 최초 인쇄되었고, 그 때의 원본을 참조하여 2015년에 재인쇄되었다. 검은색과 흰색의 하드커버로 되어 있고, 더 견고하게 바인딩 되어 있다. 현재 사이즈를 조정하여 표준크기로 만들었고, 내용은 변화가 없다.

3. 세 번의 결혼

크랜스톤은 Martha A. Behan(?~1872.4)과 1861년 결혼하였고, 1872년에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Laura A. Martin(?~1903.2)와 결혼하였다. 그런데 그녀 역시 1903년에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Lucie M. Parker와 결혼하게 된다. 이런 상황들로 미루어 볼 때, 그의 사역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예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망원인은 사고 보다는 질병으로 인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의료기술의 부족도 있었지만, 선교 지역의 위생환경이 열악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4. 그가 주재한 회의들

1) 1899년 당시 감리회선교회의 직원들은 5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의장으로 크랜스톤이 섬겼고, 비서로 W. A. Noble, 보조비서로 W. C. Swearer, 한국인비서로 노평선, 그리고 H. G. Appenzeller는 회계 업무를 담당했다.
선교회 내에 다양한 위원회들이 존재했다. 주일학교 연합, 여성 외국인 선교사회, 출판, 학업과 지역 설교자들을 위한 컨퍼런스 코스, 번역 훈련과 관습, 찬송가 책 편집, 공적인 예배 등을 담당하는 위원회가 존재했다.


2) 1899년 5월 12일부터 17일까지 5개의 세션으로 나누어서 진행된 회의록이 남아 있다.
첫 번째 세션은 1899년 5월 12일 금요일이었다. 서울 제일 감리교회에서 오전 9시 30분에 제 15차 감리교 한국 선교사 연례회가 감독 크랜스톤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경건 예배가 진행되었는데, 찬송가를 부르고, 크랜스톤이 이사야 61, 62장을 읽었다. G. H. Jones 크랜스톤의 짧지만 인상적인 연설을 G. H. Jones가 통역해 준 다음, G. H. Jones가 로마서 8장을 한국말로 읽었다. W. A. Noble은 한국말로 기도를 했다. 그리고 아펜젤러와 존스의 도움으로 성찬식을 거행했다.

3) 두 번째 세션은 오전 9시 존스의 인도하는 개회 예배로 시작되었다. 이어서 크랜스톤이 첫 번째 세션 회의록은 영어와 한국어로 읽고, 승인을 득했다.

4) 세 번째 세션은 오전 9시 W. A. Noble에 의해 진행되었다. 두 번째 세션에서 H. C. Sherman에 의해 제기된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시평원 병원에 대한 보고를 했다.

5) 네 번째 세션은 5월 16일 화요일에 열렸다. 경건회는 노평선에 의해 진행되었다. 크랜스톤이 지난 세션 회의록을 읽었고, 읽는 것을 승인했다. 주일 예배에 기록에 대해서도 읽었다.

6) 마지막 다섯 번째 세션은 5월 17일 수요일 9시에 열렸다. W. A. Noble이 개회를 진행했다.

7) 회의록 마지막 부분에는 회의에서 있었던 주요한 질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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