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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Knox, Robert(1888-1959, SP) / Knox, Maie P. Borden

닉네임
최나오미
등록일
2017-06-30 12:43:38
조회수
2460
첨부파일
 기말보고서_M0118_2013210130_최나오미.hwp (133632 Byte)
I. 기본사항

1. 이름 : Knox, Robert / 녹스 / 한국명 : 노라복(魯儸福)
2. 생몰연도 : 1880-1959
3. 출신 및 소속: 미국 텍사스, 남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07-1952.
5. 연표
1880. 텍사스 주에서 출생
1899–1903. 텍사스 대학교 학사
1904–1907. 프린스턴신학교 신학 전공으로 학·석사
1907. 남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1908–1910. 목포 선교부에서 어학, 지역전도 나주·함평·무안에서 전도 보조
1909. 아내 Maie P. Borden과 결혼
1910. 보성군 문양리 교회 예배당 신축, 향교리 교회 신축 재정 지원, 함평군 수호리 교회 시무, 애딘버러 세계 선교대회 마펫, 언더우드 등과 함께 한국대표로 참석
1911. 광주 선교부로 이동
1912-1914. 남학교 책임, 남평·동복 순회전도, 함평군 수호리 교회 시무
1915. 나주 보성·남부구역 전도사역
1916. 안식년
1917. 9. 17. 전남노회 회계
1917-1919. 화순·남부구역 전도사역, 평양신학교 교수
1918. 제 2회 정기노회에서 부회장 피선
1919-1925 광주숭일고등학교 교장
1919. 9. 제 4회 정기노회에서 노회장 피선, 광양군 학동교회 3칸짜리 예배당 건축.
1920-1922. 남학교 책임, 지역교회 연대 감독, 담임 목회, 목사 지원
1920. 화순군 원리 교회 개척
1921. 학천리교회 개척·설립
1923-1925. 남학교 책임, 남문교회 부목사, 동사목사
1924-1925. 다니엘바커대학 신학 박사 취득.
1925. 안식년
1926. 남동구역, 서부(Newland)구역 전도사역
1927. 남동구역, 전남 성경학교 전남 대표
1928-1930. 광주·남동구역 전도사역
1931. 광주·남동구역 북부(Talmage)구역 전도사역, 광주·남동·북동·북부구역, 남문교회와 북문교회
1933. 동사목사, 안식년
1934. 광주·남동구역·서부구역 전도사역
1935. 남동구역·서부구역 전도사역
1936-1938. 남동구역 전도사역
1940. 일제에 의해 본국으로 강제 귀국
1948. 남동구역, 이일성경학교 교장, 평양신학교 교수
1949. 전도사역, 성경학교 교수, 전남노회 선교회 대표
1952. 본국으로 귀국, 은퇴
1959. 사망

6. 가족사항
Knox, Maie P. Borden, 자녀 1명

※ Knox. Robert의 아내 : Knox, Maie P. Borden
1. 이름 : Knox, Maie P. Borden(버든)
2. 생몰연도 : 1885-1967
3. 출신 및 소속 : 미국 텍사스, 남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 1907-1952.
5. 연표
1885. 미국 텍사스 주 출생
. 텍사스 대학교 학사
1908-1909. 어학, 여성과 어린이 전도사역
1909. Knox와 결혼
1910. 어학, 여학교 책임, 전도사역 보조
1911-1912. 어학, 지역 전도사역
1913. 선교부 전도사역
1914-1918. 지역 전도사역
1919. 지역 전도사역, 안식년
1920-1925. 지역 전도사역, 문서업무, 안식년(1924.6.15.)
1926-1927. 남동구역·광주지역전도사역
1928-1930. 지역 전도사역, 중앙여학교 조력
1932-1935. 수피아여학교 교감, 지역구제사역, 안식년(1932), 이일성경학교(1935)
1936-1938. 수피아여학교, 이일성경학교 교사
1939. 이일성경학교 교사, 전도사역
1940. 일제에 의해 본국으로 강제 귀국
1948-1949. 성경학교 교수, 전도사역
1952. 본국으로 귀국, 은퇴
1967. 사망


II. 선교사 소개

1. 호남의 목회자
녹스[Konx. Robert, 노라복] 선교사는 호남지역, 특히 전라 노회가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면서 노회를 중심으로 각 전라남도 지역을 순회하며 교회를 개척하고 개척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였다. 전라남도 사역을 이야기할 때 배유지 선교사를 중심으로 사역이 진행되며 관련 기록들이 많이 있지만, 그 주변에는 항상 녹스 선교사가 있었다. 그는 초대 전라노회 회계, 부회장, 노회장을 맡으며 지역의 교회를 돌보았고, 순회하며 교회를 개척하였다. 특히 그는 전라도에서도 농어촌 지역인 함평, 무안, 화순, 나주, 보성, 광양 등 도서벽지를 순회하며, 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세례를 주며, 교육하고 교회를 개척한 헌신적인 선교사였다.

2. 교회 개척자 녹스
녹스 선교사는 한국에 선교 사역을 시작할 시기부터 농어촌 교회를 돌보며 개척하였다. 그는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돌보았다. 특히 그는 한국 지도자들이 잘 세워질 수 있도록 한국 사역자를 도와 동사목사로 사역하며 순회 전도를 하였다. 그의 사역 형태는 대부분 교회를 돌보는 일과 교회 개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특징적인 것은 사람을 세우는 목회를 했다는 점이다. 보성군 문양리 교회를 세울 때 조사 배경수와 같이 전도하고 예배당을 신축 하였고, 1919년에 광양군에 있는 학동 교회를 세울 때도 구경지·박노주와 같이 전도하여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화순군 원리교회를 개척할 때 역시 조사 최원갑과 같이, 광양군 조사리 교회도 전도인 박희원·정자삼·장현중 등을 파송하여 함께 교회를 세웠다. 또한, 학천리 교회를 세울때는 조사 최원갑과 같이 개척 하였고, 광양군 원당리 교회도 전도인 정자삼·정영호·박희원 등과 함께 세웠다.

3. 성실한 교육자 녹스
녹스 선교사는 사역의 대부분을 교회 개척과 노회,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도와 제자양육을 하는 일을 하였지만, 목회와 전도사역 만큼 성실하게 수행하였던 것이 교육 사역 이었다. 그는 평양신학교 교수로 재직하였고, 광주 수피아 여학교 교장, 사역 후반기에는 아내와 함께 이일 성경학교를 섬겼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신학으로 학사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안식년에 다니엘 바커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사실은 그가 선교사로 이미 사역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가르침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의 저서는 많이 소개 되어있지 않지만 1940년 신학지남에 ‘만국주일공과’ 3편(총24과)이 소개되어 있다. 외국인 선교사임에도 한글과 한자로 작성된 그의 ‘만국주일공과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입은 백성으로서 어떤 은혜를 입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진지한 고민과 열정이 묻어난다. 그 역시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전천년적 종말론을 견지 하였는데, 이러한 사상은 동 시대에 함께 사역했던 많은 선교사들, 평양신학교 교수들과 길선주를 비롯한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났다. 그의 ‘만국주일공과’에서도 제자도, 죄를 회개함, 충성된 종 등을 주제로 하는 신약성경을 주로 다루면서 종말론 적인 메시지를 강조 하였다.

4. 일제의 탄압과 신사참배 요구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사명자.
녹스가 활동했던 시기의 많은 선교사들이 그러하듯 녹스 역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의한 탄압을 받았다. 일제의 신사참배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전라노회는 미션스쿨과 수피아 학교 등의 사역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게 된다. 그리고 평양신학교 역시 폐교하게 된다. 이것으로 인해 학생들의 많은 반발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녹스와 아내 버든을 비롯한 선교사들은 강제적으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그가 품었던 전라도 땅을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보며 ‘조선의 땅 전라도에 눈물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훗날 열매가 되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기를’ 기도하며 본국으로 발길을 옮겼다.

5. 남은 평생을 전라도 땅에
1940년 본국으로 돌아갔던 녹스는 1948년이 되어서 다시 그의 사역지인 전라도 땅에 발을 딛었다. 이 시기 함께 추방 되었던 선교사들 역시 재기하여 함께 사역하게 되는데, 그는 앞서 사역했던 목회와 교회개척, 전도 등의 사역보다 교육사역에 무게를 두어 사역을 하였다. 은퇴 전까지 계속해서 전도 사역을 하면서도 그는 아내 버든과 함께 평생 염두에 두었던 성경학교, 교육사역을 감당한다.

6. 든든한 그의 동역자 버든
녹스에게는 그의 동역자이자 조력자 버든이 있었다. 버든은 처녀의 몸으로 조선땅을 밟아서 이듬해에 녹스와 결혼을 한다. 그녀는 평생 교육과 전도에 힘썼다. 그녀는 녹스를 도와 전도사역 보조를 하기도 하였고, 구제 사역에 힘쓰기도 하였다. 그녀는 수피아여학교 교감으로 섬겼고, 남편 녹스와 함께 이일성경학교 교사로도 섬겼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전라도 곳곳을 다니며 그의 사역을 조력했다. 특별히 녹스와 버든의 기도편지를 보면, 대부분의 기도편지를 버든이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Personal Reports of Southern Missionaries in Korea’에 보면 3통의 기도편지 외에는 모두 버든이 작성한 것이며, 그녀는 매우 길고 자세히 기도편지를 기술하였다. 이런 면은 녹스도 비슷한데 그는 때로 기도편지에 지도를 그리기도 하고 자세한 그림을 첨부하여 설명하기도 하였다. 녹스 부부는 이렇게 서로를 도와가며 평생을 한국교회, 특히 전라도의 교회를 위해 힘썼으며 전도와 제자양육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삶을 살았다. 그들은 1952년 미국으로 귀국하여 은퇴 하였고 녹스는 1959년 하나님 품에 안겼다.
작성일:2017-06-30 12:43:38 49.175.45.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