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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Reiner, Ella M.(1884-1962, NP)

닉네임
손영대
등록일
2017-06-30 15:29:39
조회수
2370
첨부파일
 기말보고서_M0160_2015210169_손영대.hwp (917504 Byte)
I. 기본사항

Reiner, Ella M. (라이너/미국/NP)

1. 생몰연도: 1884-1962.5.14
2. 학력: 미상
3. 경력
1916.11.24.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1917~18 : 평양 연합 기독병원에서 비거(Bigger)의사 부부와 의료 활동
1918~19 : 청주지방에서 사역하다가 대구 동산병원으로 옮김
(위 기간 중 1차 세계대전 발발 러시아에서 적십자 간호사 활동)
2019-1923.2.5 대구 동산 병원 사역 후 귀국
1962.5.14 캘리포니아에서 사망
4. 가족사항: 미상
5. 논저:
6. 참고문헌><<기백>>4권; HKMP, I,II.


Ⅱ. 선교사 소개

1. 미국 북장로교 간호 여선교사

라이너 선교사는 미북장로교 출신의 간호 선교사(nursing missionary)이다. 1916년 11월 24일 30대 초반의 나이로 입국하였다. 1915년 장로교의 제중병원 창설자이자 원장이던 웰즈(J.H Wells) 가 사임하고 귀국하면서부터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에서 감리교 병원과 합동이 논의되었고 그해 정식으로 합동이 결정되어 합동 작업이 추진되었다. 북장로교에서는 합동회담 실무 대표를, 강계에서 의료사업을 하던 비거(J.D. Bigger) 선교사로 정하였다. 그런데 강계지역 후임자가 결정되지 못해 1920년에야 평양에 부임할 수 있었다. 북장로회에서는 비거와 간호원 라이너가, 감리교의 기홀병원에서는 원장인 앤더슨(A.G. Anderson), 간호원 앤더슨(N. Anderson) 등이 합동으로 실무를 맡아 수행하였다. 라이너 선교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라이너 선교사는 한국 입국 후에 비거 부임 전 약 1년간 평양 제중병원에서 근무하면서 평양 연합 기독병원 설립을 위한 실무를 수행했던 걸로 추정된다. 이후 기록에 의하면 1918-19년까지 청주에서 근무하였으며, 이 기간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적십자 간호사로 시베리아에서 잠간 활동하였다고 한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라이너 선교사는 대구 동산 병원에서 근무하였고 4년간 더 사역하다가 1923년 사직하고 영구 귀국하였다. 한국에서 약 7년간, 그 사이 적십자 간호사로 러시아 동부전선에서 잠간 활동하였다. 1962녀 5월 14일 캘리포니아에서 별세하였다.

2. 평양 연합 기독 병원 및 대구 동산기독병원 설립 초기, 기초를 닦다

평양 연합 기독병원은 1920년 평양에 설립된 장감 합동 경영의 의료기관이다. 1920년에 이르러 1893년에 설립된 감리교의 기홀병원과 1895년 설립된 장로교의 제중병원이 합하였고 1923년 감리교 여선교회가 운영하는 광혜 여원까지 합해지게 되면서 평양연합기독병원이란 칭호가 쓰여 지게 되었다. 초대 병원장으로는 미감리회의 앤더슨이 취임하였으며 그는 이후 일제 말기 강제 출국되기까지 병원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라이너 선교사는 설립추진대표를 맡은 비거 선교사의 부임이 늦어지면서 이 분을 대신하여 평양연합기독병원의 설립 실무를 맡아서 사역한 걸로 추정된다.

이후 4년간 근무한 대구동산병원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하신 걸로 보인다. 1905년 9월 대구 동산 병원 최초 간호원인 캐머론을 시작으로 멕멘지, 매기, 베킨스 선교사들이 봉사하였고 베킨스 선교사 사임 뒤에 라이너 선교사가 봉사하였다. 장로교 선교역사는 이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짧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베킨스 선교사 사임 뒤 4년간 병원은 1916년에 한국에 온 라이너 선교사로부터 유능한 도움(efficient help)을 받았고 그녀를 뒤이어 1923년 헤드버그 선교사가 부임하였다” 라이너 선교사의 후임자인 헤드버그 선교사는 동산 병원 내에 최초로 간호원 양성소(현 간호 전문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여 한국 여성을 위한 간호 교육을 실시하였다.

3. 척박한 땅 울며 씨를 뿌렸지만 거의 무명으로 남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라이너 선교사는 평양연합기독병원, 대구 동산병원 설립 초기 척박한 환경에서 봉사하였고 그녀가 사임한 이후 본격적인 사역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라이너 선교사는 본격적인 열매를 거두기 전 울며 씨를 뿌리는 역할을 한 건 아닐까. 모든 기록은 열매를 남긴 분들 중심으로 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평양 기독병원을 이끈 비거 선교사나 동산 병원에 간호원 양성소를 최초로 설립한 헤드버그 여선교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자세한 기록들이 남아있으나 척박한 땅에 씨를 뿌린 라이너 선교사는 몇 군데 이름만 언급될 뿐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다. 한마디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이 땅에서 사랑과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가신 무명에 가까운 분이다.

이 분의 삶을 추적하면서 동일한 시기에 이 분과 유사한 길을 걸어갔던 한 선교사의 자서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분의 자서전에서 조금이나마 라이너 선교사의 짧은 공식적인 기록 외의 다른 기록들과 당시의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게 큰 수확이었다. 이 선교사의 이름은 Delia Mae Battles Lewis(1888-1959)이며, 1915-1920년 한국에서 간호 선교사로 사역하였는데 라이너 선교사와 거의 기간이 일치한다. 뉴욕에 있는 장로교회병원에서 3년간 간호트레이닝을 받고 해주에 있는 Norton Memorial Hospital 에서 사역하며 한국 간호원도 양성하였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서 Petropavlovsk, Omsk, and Tyumen 에 있었던 미국 적십자 병원에서 8개월간 근무하였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세브란스 병원에서 사역을 마감으로 미국으로 돌아가신 분이다. 라이너 선교사와 거의 비슷한 활동을 했고, 적십자 활동을 같이 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당시 간호선교사의 삶을 볼 수 있는 사진자료는 모두 이분의 자서전에서 발췌하였다.
작성일:2017-06-30 15:29:39 49.175.45.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