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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Barrett, William M.(1872-1956, NP) / Carson, Elizabeth

닉네임
dojunlife
등록일
2017-06-30 16:05:11
조회수
2299
Ⅰ. 기본사항
1. 이름: William. Marshall. Barrett / 바렛 / 한국명: 박위렴(朴緯廉)
2. 생몰연도: 1872 – 1956.3.6.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01.9.10. - 1907.10
5. 연표
1901. 9. 10.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영남지구에서 활동
1902 PCUSA 한국 선교 연례회의 참석
1903 안동을 비롯하여 50일의 선교여행
1903. 9. 10 PCUSA 한국 선교 19차 연례회의(평양에서 개최)
1908까지1천명의 결신자를 얻음
1904 대구에서 남자초등학교 교장직 겸임
1907. 10 건강문제로 귀국
1949. 4. 26 부인 소천
1956. 3. 6 캘리포니아에서 소천
6. 가족사항
부인: Barrett, W. M.(부인) - Miss Elizabeth Carson
- 1904년에 입국, 1905년 바렛과 결혼


Ⅱ. 선교사 소개

1. 1,100km나 걸으며 전도하다.
그는 1901년 9월 10일에 내한하여 영남지구 선교사로 봉직하였다. 당시 북장로교 대구선교지부는 순회전도를 하며, 교회를 직접 설립하거나 현지인을 중심으로 교회를 설립하는 사역에 도움을 주면서 선교의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들은 선교지를 분할하여 네비우스 정책 즉 스스로 전도하며, 스스로 재정을 확립하며, 스스로 다스리는 선교정책에 영향을 받아 그대로 사역하였다.
그는 경상북도 북쪽을 담당하게 되었다. 1903년 그는 첫 선교여행을 부르엔과 함께 했다. 안동시장에 방문한 후, 그의 친구가 아담스로부터 산 책을 읽기 전에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홍채삼을 만나기 위해 북쪽으로 계속해서 갔다. 그해 홍채삼은 기독교를 배우기 위해서 80마일 떨어진 대구까지 갔었던 것이다. 바렛은 선교여행중에 홍채삼의 집에 머물렀으며, 그 지역의 첫 번째 세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첫 번째로 믿은 사람은 아니었고, 그 사람은 그해 죽었다. 그는 안동을 비롯하여 50일에 걸친 이 선교여행에서 그는 1,100km나 걸었으며 약 1000여매에 달하는 전도지를 돌렸다. 이를 통하여 12명의 결신자를 얻었고, 1904년에 12부락에서 33명, 1905년는 20부락에서 79명 그리고 1906년에는 2백명, 1907년에는 6백명, 1908년에는 1천명에 달했다.

2. 교육을 통해 선교 일선의 자리를 지켰다.
한편 그가 1900년 대구에서 시작한 남자국민학교는 처음에 4명으로 개교하여 1904년 28명, 1905년 47명이었으며, 1907년 3명으로 급증하였다. 그는 이 학교의 교장을 겸직(1904)하면서 선교일선에 최선을 다했는데, 1907년 10월부터 건강이 나빠져 퇴임하였다.

3. 1907는 그는 남자초등학교 교장직을 퇴임하고 부인과 함께 귀국했다. 부인은 1949년 4월 26일 먼저 별세하였고, 그는 1956년 3월 6일 캘리포니아에서 별세하였다.
작성일:2017-06-30 16:05:11 49.175.45.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