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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5반 2017210291 박지현 3권 13,23장 부분서평

닉네임
박지현
등록일
2019-11-29 23:58:28
조회수
122
첨부파일
 한국교회사 3권 부분 서평.pdf (54064 Byte)
한국교회사 3권 부분 서평, 3학년 5반 20172102 박지현
제 13 장
저자의 의도
13장에서는 복음주의 운동의 흐름과 국가별 양상을 제시했다. 복음주의 신앙 노선의 신학자들이 지키고자 하는 신앙의 근본 교리는 성경의 무오성을 핵심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동시에 신학과 삶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의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신학적 탈선을 경계하는 동시의 근본주의의 분리주의와 반지성주의를 개혁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들은 근본주의자들의 신학적 전통은 계승하면서도 그들이 간과해 온 대사회적 책임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현대 복음주의 신앙 노선을 견지한 우리 역시 이 부분을 기억해야 한다. 신학과 삶의 관계가 중요하다. 역사적인 복음주의 신학을 단순히 규명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것인가도 진지하게 고찰되어야 한다. 그래야 복음주의는 생명력을 계속 이어나가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1989년 복음주의 선언에서 지적한 것처럼,“교리적인 순수성은 삶의 순수성이 동반되어져야 한다.” 앞으로 복음주의신학은 역사적 신학과 프락시스와의 관계를 더욱 저 진지하게 규명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는 이 복음주의의 토대 위에 구축되었다. 한국에 파송된 대다수의 선교사가 당시 일고 있던 복음주의 부흥운동과 선교운동의 영향을 깊게 받고 복음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의 젊은 세대를 일깨우며, 초교파 선교단체를 통해 한국복음주의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또한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웠다. 대중전도운동과 로잔대회는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에게 WCC의 에큐메니칼을 거부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일깨워 주었다. 복음주의 출판사, 복음주의 교육기관, 학회 등 한국의 복음주의는 탄탄하게 세워졌다. 한국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의 신학적 폐쇄주의와 분리주의를 극복하고, 토착화신학에 대한 복음주의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성경의 무오성을 변호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해왔다. 우리 역시 이 정신을 이어서 한국의 복음주의를 계승하고 개혁해야 할 것이다.
소감
과거를 배우는 것은 현재를 살기 위함이라고 했다. 복음주의의 역사를 읽으니 전 세계를 돌아 한국에도 뿌리를 내리고, 그것이 나의 신앙적 뿌리이기도 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지금까지 역사를 배울 때는 훨씬 과거의 일을 배우거나 먼 나라의 일을 배웠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의 복음주의가 뿌리내린 과정을 보면서 두란노 서원의 ‘목회와 신학’, ‘빛과 소금’, ‘생명의 삶’ 등등 지금도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간행물의 이름을 접했을 때 벅찬 마음이 들었다. 내가 역사를 살고 있음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복음주의 노선의 두 가지 목표가 매우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마침 이 번 학기에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배우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로잔 협약의 정신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이미지 관리와 같은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복음을 아는 사람들이 생활에서 천국을 이루어내는 교회의 모습을 기대한다. 신학적 보수성을 지키는 것이 참 중요하지만, 학문적인 것에만 집착해서 사회의 필요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아가서, 복음주의 노선에서 더 적극적으로 자유주의 신학과 맞서기를 바라게 되었다. 현대 한국 교회의 신학에도 자유주의적 사고방식과 성경의 무오를 은근히 흔드는 의견들이 은근히 가득 퍼져있다. 이 문제 상황을 어떤 혐오나 힘으로 누르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우수함과 효과적인 전략을 사용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제 23 장
저자의 의도
저자는 한국 장로교는 처음부터 복음주의신앙을 계승했음을 강조한다. 처음부터 한국장로교가 복음주의신앙을 계승했다는 사실은 종교개혁자 존 칼빈과 역사적 칼빈주의, 언더우드와 마포삼열, 평양장로회신학교, 1907년 독노회 때 채택한 12신조, 박형룡-명신홍-박윤선의 신학, 1979년의 총신의 신학적 입장, 1995년 총신대학교 신앙고백, 2001년 총신대학교 100년사와 총신의 개교 100주년 기념 신학세미나 발표에 그대로 나타난다. 평양장로회신학교가 ‘성경을 참으로 받고 정당히 이해하며 열심히 사랑하고 명확히 해석하며 구원의 복음을 완전히 또 단순하게 열심히 전파하기를 노력하는 복음의 사역자를 양성하기로 함과 사회적 책임을 심절히 의식하는 참 그리스도의 사자이며 전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세워졌다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한국에 파송된 초기 선교사들은 신앙과 삶이 괴리되지 않았다. 교리, 경건, 문화적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려고 하였다. 박형룡은 청교도 전통을 따라 신앙의 순결을 강조하면서도 복음전파의 “성실한 실천”이 한국 장로교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확신했다. 박형룡은 잠시 ‘근본주의’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방했지만 그를 무조건 분리주의자로 평가할 수 없는 면이 분명히 있다. 더불어 박윤선, 명신홍, 이상근, 최의원, 차남진, 김의황, 한철하의 글에서 근본주의를 옹호하는 글을 전혀 찾을 수 없다. 한국교회 보수 복음주의 연대를 통해 가장 근본적인 것에 일치한다면 다른 비본질적인 면에서는 관용하겠다는 어거스틴이나 칼빈의 사상을 실천했다.
신학 좌경화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총신 교수 일동은 1979년 “총신의 신학적 입장”을 발표했다. 총신의 신학과 성경관,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적극적인 문화적-사회적 책임을 분명히 했기에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이후에도 총신은 1995년 신앙고백서과 2001년 신학적 입장에서 볼 수 있듯, WCC 에큐메니칼운동 반대, 성경의 무오성, 청교도 경건, 복음전파, 개혁신학 등을 충실히 이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수직적, 수평적 관계가 무엇인지 가르쳤다.
소감
23장의 내용을 통해 근본주의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청교도적 개인 경건의 삶을 지키며, 사회문화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 삶에서도 어렵듯이, 교회와 성도가 균형을 유지하며 성장, 발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예장합동은 개혁파 장로교전통과 복음주의 유산을 계승하기 위해,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박형룡 박사의 모습이었다, 그는 통합과 분열된 후 잠시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이내 그 용어 사용을 지양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예장합동의 정체성을 잘 대편해주는 신학적, 신앙적 표현으로 ‘보수적 복음주의’나 ‘칼빈주의 개혁파 장로교의 전통적 복음주의신앙’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 그가 ‘근본주의’라는 용어의 사용을 지양한 것은 그 용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변화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러나 자신의 영향력을 알고 예장합동의 정체성을 위해, 교회 안에서의 덕을 위해 단어를 바꾸고,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다른 학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집중적으로 노력한 것은 분리주의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모습에도 이런 노력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특별히 경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근본적인 것에 일치한다면 다른 비본질적인 면에서는 관용하는 것은 큰 영적 분별력과 사회적 행동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극적인 관용와 분별은 큰 열정과 믿음이 필요한 일로써,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으며,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섭리와 다스리심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작성일:2019-11-29 23:58:28 125.133.234.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