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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B098 / Robb. Alexander Francis(1872-1935) / 3학년 5반 2017210319 장재민

닉네임
장재민
등록일
2019-12-03 17:39:56
조회수
952
첨부파일
 3학년 5반 2017210319 장재민 내한선교사조사.hwp (1262592 Byte)
[내한 선교사 조사: 알렉산더 프란시스(Robb Alexander Francis]

Ⅰ. 기본사항
1. 이름: Robb Alexander Francis / 알렉산더 프란시스 / 한국명: 업아력

2. 생물연도: 1872.1.19.-1935.10.22.

3. 출신 및 소속: 캐나다, 캐나다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01.10.08.-1935

5. 연표
1972.01.19. 캐나다, 노바스코티아주에서 출생
파인힐신학교(Pine Hill Theological College) 졸업
1901.10.08. 캐나다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푸트(W. R. Foote) 선교사와 합류
원산 창압 예배당의 전계은(全啓殷)에게 한국어 공부
1903.여름 그리어슨(Robert Grieson) 목사 등 3인과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여행
1903-1907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지도자
선교사공의회 회장, 예수교장로회 총회 부회장 역임
1930- 평양신학교에서 교회사 강의
1935.10.22 64세로 소천. 평양신학교정으로 함흥에 묻힘.

6. 가족사항
아버지: William Robb (1841-1897)
어머니: Marion McCrindle (1842.03.13-1919)
형제: John McCrindle Robb (1866.06.27.-?)
Annie D. Robb (1868.06.23.-1912.04.30)
Jane Barclay Robb (1870.02.17.-?)
William Thomas Robb (1874.05.04.-1920.02.23)
Andrew Webster Robb (1876.06.21.-1957.11.09.)
Margaret Helen McCowan (1879.06.23-?)
부인: Bessie Arnott Cumming(1875-?)
자녀: Marion(1908-1910), Alexander(1910-1912)

7. 논저
1924.01. 밧으릭 함일톤의 사적, 신학지남 6.1
1931.05. 중화 기독교 선구자 마례손, 신학지남 13.3
1931.07. 傳敎(전교)의 위걸 마페트, 신학지남 13.4
1932.01. 성 푸랜씨쓰 싸비어, 신학지남 14.1
1935.11. 삼우엘 그로더-아프리카 黑奴(흑노)목동으로 감독이 된 기인, 신학지남 17.6

Ⅱ. 선교사 소개: 알렉산더 프란시스(Robb. Alexander Francis, 1872-1935)
1. 한국에 찾아온 선교사 부부
1900년 11월 맥래(Duncan m. MacRae, 1868-1949)와 그리어슨(Robert Grierson, 1868-1965)은 원산과 소련과 사이에 위치한 성진항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그리어슨은 성진에 1주일을 머물면서 그곳이 선교지로 적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산이 남쪽으로 뻗어가는 길목이었다면, 성진은 북쪽으로 뻗어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어슨은 성진을 선교 거점으로 삼기로 결심한다. 그리어슨은 다음 달에 열린 캐나다 선교회 모임에 이를 건의했고, 선교회는 이듬해 봄 성진에 선교부를 개설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1901년 5월 18일, 그리어슨 부부는 선교를 위해 성진으로 떠났으며, 함께 여행했던 맥래는 함흥 사역을 맡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1901년에 이르러 원산을 거점으로 시작한 캐나다 선교회는 원산, 성진, 함흥 세 곳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러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오게 되는데, 1901년에는 케이트 맥밀란(Kate McMillan), 1903년에 제니 럽(Jennie Robb), 1905년에 캐더린 마이어(Catherine Mari), 1906년에 영(L. L. Young), 그리고 1907년 로스(A. R.Ross) 등이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로써 한국에 들어왔다.
그 중 한 가정이 1901년에 한국에 들어온 업아력(A. F. Robb) 선교사 부부였다.

2.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지도자
업아력 선교사는 1903년부터 1907년까지 있었던 한국부흥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1904년, 하디 선교사의 영적 각성으로 촉발된 원산부흥운동으로 인해 큰 은혜를 받았는데, 그 때의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것은) 전에 없었던 일이다. 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고, 또한 체험했다. 선교사들과, 한국인들, 남자와 여자, 늙은이들과 젊은이들,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고, 죄의식과 정화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했다.” (Justin Corfield, Historical Dictionary of Pyongyang, 56p.)

그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컸던지, 어떤 이들은 그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며 술 취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은 원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흐름 가운데 평양에서도 큰 부흥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업아력 선교사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으며, 특별히 뜨겁게 기도하며 부흥운동의 지도자로 일했다. 자신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던 전계은과 함께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며, 원산 길거리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또한 자신의 집에서 예수를 믿는 이들과 함께 한국을 위해 기도했다. 또한 캐나다 선교회에 서신을 보내어 한국의 북쪽 땅 25만 명, 만주지역에 15~20만 명 정도의 믿지 않는 많은 이들이 있으니 신속히 선교사들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3. 원산, 함흥 지역의 순회 목사
업아력 선교사는 원산, 함흥 지역에서 설립된 다양한 교회들(안변군 읍내교회, 경성군읍교회, 영흥군 마산교회, 북간도 용정시교회, 간도 양무정자교회, 태을교회, 무신 고원군 하고읍교회, 노령 해삼위교회, 영흥군 유도교회)을 순회하며 목양사역을 감당하였다.
업아력 선교사는 순회 목회를 감당하는 가운데 많은 이들에게 신령한 목사로 존경을 받았다. 그는 조금이라도 불경건한 생활을 하는 교인이 있으면 이를 사랑과 진실로 교훈했으며, 비록 동료선교사들이라도 가차 없이 이를 견책하였다.
업아력 선교사는 그의 자유로운 신학사상으로 인해 보수적인 선교사들과 충돌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업아력 선교사가 캐나다 선교회의 신학적 변천을 바라보며 선교회를 떠났던 모습이나, (복음주의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평양신학교의 요청으로 교회사를 가르쳤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한국에 왔던 다른 선교사들과 같이 업아력 선교사 또한 복음주의자였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4. 한국인을 사랑한 선교사
한국인을 사랑했던 업아력 선교사는 선교사들 중에 한국인을 멸시하는 이들이 있으면 이를 참지 못하여, 소외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는 한국을 사랑했던지 자신이 죽으면 함흥에 자신의 시신을 함흥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다. 그리고 1935년 10월 22일, 그가 64세의 나이에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이 평양에서 거행되었고, 그의 시신은 함흥으로 운구되어 한국 땅에 묻혔다.
그의 장례식에는 한국인들을 향한 그의 사랑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가 교장으로 있었던 평양신학교의 많은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과 함께 도시와 시골교회에서 온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모습에 대해 캐나다선교회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가 (한국인들에게) 존경받았던 (한국인들을 향한) 존경, 명예 및 사랑은 도시 교회와 시골 교회에서 (그의 장례식에) 온 많은 한국의 기독교인 친구들에 의해서 입증되었다.” (William Scott, Canadians in korea, 135p.)

Ⅲ. 사진 및 기타자료

▲ 업아력 선교사 부부(상단 3, 4번째)와 함흥지역에서 함께 사역했던 동료 선교사들.

▲ 업아력 선교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했던 첫 논문(1924.01)

▲ 업아력 선교사의 어렸을 때의 모습

▲ 원산의 눈밭 위에 서있는 업아력 선교사의 모습

Ⅳ. 참고문헌

[업아력의 저술]
Robb. Alexander Francis, “밧으릭 함일톤의 사적,” 「신학지남」 6권 1호 (1924.01): 64-68.
, “삼우엘 그로더-아프리카 黑奴목동으로 감독이 된 기인,“ 「신학지남」 17권 6호 (1935.11); 54-56.
, “성 푸랜씨쓰 싸비어,“ 「신학지남」 14권 1호 (1932.1): 65-68.
, “傳敎의 위걸 마페트,“ 「신학지남」 13권 4호 (1931.7): 47-51.
, “중화 기독교 선구자 마례손,“ 신학지남 13권 3호 (1931.5): 57-60.

[단행본]
Justin Corfield, Historical Dictionary of Pyongyang, New york: Antem Pres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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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회사1: 1784-1910,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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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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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Francis Robb“, Family Tree & Family History at Geni, , 2019년 11월 30일 접속.
”Missionaries,“ ucla online archive korean christianity, edu/biographies/missionaries/>, 2019년 11월 30일 접속.
작성일:2019-12-03 17:39:56 106.10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