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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B050/McAfee Lapsley Armstrong(1864-1935, NP)

닉네임
조성웅
등록일
2019-12-11 10:19:06
조회수
654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4_B050_조성웅.hwp (227328 Byte)
맥아피 선교사 / McAfee, Lapsley Armstrong (1864-1935)

I. 기본사항

1. 이름 : McAfee, Lapsley Armstrong
2. 생몰연도 : 1864.3.31.-1935.1.18.
3. 출신 및 소속 : 미국 미주리주 애슬리 출생, 북장로교
4. 한국 선교 기간 : 1934년 수개월간
5. 연표
1864. 미국 미주리주 애슬리 출생
1882. 파크대학 졸업
1885. 매코믹 신학교 졸업
이후 파크대학에서 학생과장으로 근무
1898-1905 피닉스와 애리조나 등지에서 목회 활동
1905-1931 켈리포니아 버클리제일장로교회 시무
1934. 봄 미북장로회 해외선교부 대표자격으로 파송
1934. 수개월간 평양외국인학교에서 성서 교수
1935. 1.18. 필리핀 더마케트섬에서 소천
6. 가족사항
부인 : Ella Taylor McAfee, August 17, 1887.
자녀 : H. Bailey Mcafee / Mrs Mcafee

II. 선교사 소개
1. 맥아피 목사는 영감있는 설교로 많은 교인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훌륭한 복음전도자이다. 그는 특히 캘리포니아주 기독청련면려회 주관 목사로서 많은 청년들의 신앙심을 키워주었다. 맥아피 목사는 1919년 10월 미국 서부지역에서 유일하게 결성된 샌프란시스코 한국 친우회 회장을 맡았다. 그리고 이를 인연으로 하여 서울의 경신학교 교장으로 초빙을 받았으나 가정 사정으로 이를 수락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은퇴 후 맥아피 목사는 미북장로회 해외선교부 대표로 그의 부인과 함께 한국을 내한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수 개월간 머무르며 평양 외국인학교에서 성서를 가르쳤다.
이후 맥아피 목사는 필리핀으로 옮겨 Silliman University에서 성서를 가르쳤다. 그리고 1935년 1월 18일 필리핀 더마케트섬에서 별세하였다.
맥아피 선교사는 한국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많은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미국에서 한국 친우회에서 활동을 하고, 한국의 밤을 개최하는 등 한국을 향한 마음을 잘 드러내었다.

2. 샌프란시스코 한국 친우회
미국 서부지역에서 유일하게 결성된 샌프란시스코 한국친우회는 1919년 10월 11일 성 프란시스호텔에서 한·미인이 모여 ‘한국의 밤’을 개최한 후 결성되었다. ‘한국의 밤’은 미국사회의 음악회와 비슷한 성격의 모임이었다. 특별히 3·1운동으로 일본에 의해 고초를 당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의 실상을 담은 활동사진을 상영하여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한국민을 동정하고 반일감정을 일으키도록 계획되었다. 『신한민보』가 “미주 서방에서 처음 보는 성황”이라 표현할 만큼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임원은 회장 맥아피0(L. A. McAfee) 목사, 부회장 바로우스(D. P. Barrows)박사, 서기 그로스(H. C. Gros)교수이고 그밖에 10명으로 구성된 평위원회를 두었다. 특히 한국인 8명과 미국인 22명으로 구성된 한국친우회 후원회 조직은 이곳만의 독특한 면을 갖추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한국친우회의 조직에는 정한경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이곳 집회에서 ‘한국의 사정’을 연설하며 친우회 설립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 각지의 시민단체나 상업단체 그리고 교육 및 사회단체 등에서 강연활동을 하면서 미국민에게 친한동정을 일으키는데 노력했다.
작성일:2019-12-11 10:19:06 122.47.180.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