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B088/Preston John Fairman Jr(1909-2009,SP)/ Imogene Bird(1915-2006)

닉네임
송소영
등록일
2019-12-12 19:05:45
조회수
987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5_B088_송소영.hwp (7320576 Byte)
프레스톤 2세 선교사 / Preston, John Fairman Jr. (1909-2009)

Ⅰ. 기본사항

1. 이름 : Preston, Johm Fairman Jr (프레스톤 2세)
2. 생물연도 : 1909.9.22. - 2009
3. 출신 및 소속 : 미국, SP
4. 한국선교기간 : 1939~1946
5. 연표
1909.9.22. 한국 광주 출생
1927-1931 데이비슨 대학교(학사)
1931-1935 듀크대학 의학(석사)
1939.10.26. 선교사로 지원함
1939.11.18. Imogene Bird와 결혼
1939 순천 안력산 병원, 어학, 의료 사역, 원장대행
1940 광주 제중병원(제중병원 4대 원장), 어학, 의료사역
2009 사망
6. 가족 사항
아버지 : Preston, John Fairman(1875-1975)
어머니 : Wiley, Annie Shannon(1879-1983)
부인 : Imogene Bird (1915.3.28.-2006.3.6.)
자녀 : Preston, John Fairman Ⅲ(1941.10.22.)/ Andrew Bird(1945.6.25.)/ Sally Preston(??)

Ⅱ. 선교사 소개 : 프레스톤 2세 (Preston, John Fairman Jr, 1909-2009)

1. 한국 광주에서 출생한 선교사 2세
1909년 한국 광주에서 태어난 프레스톤 2세 선교사는 1903년에 아내 Annie Wiley와 함께 선교를 위해 한국 광주로 들어온 프레스톤 존 페어맨(한국 이름: 변요한) 선교사의 네 번째 자녀이다. 프레스톤 존 페어맨은 첫째 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프레스톤 2세 선교사의 출생 날짜에 관하여는, 프레스톤 2세 선교사에 대한 기록에 1909년 9월 22일 출생이라고 되어있는 반면 그의 부모의 기록에서 프레스톤 2세는 8월 22일 출생이라고 되어 있다. 기록이 다른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출생신고를 늦게 한 것이라면 첫째 아들에 대한 아픔이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프레스톤 2세 선교사는 1927~1935년에 미국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1939년 11월 18일에 Imogene Bird와 결혼했다. 한국으로의 선교에 지원한 것은 1939년 10월 26일이며 임명된 것은 1939년 11월 17일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939년 12월 29일에 항해하여 한국에 왔다. 선교지에서 왕성한 사역을 하던 선교사의 자녀로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프레스톤 2세 선교사는 한국에 대한 지식과 문화, 언어, 당시 상황에 능통하였고 일본 의사면허증을 취득하였으며 부모로부터 확고하게 물려받은 선교비전 등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모든 조건과 자질을 갖춘 선교사라고 평가된다.

2. 한국에서의 첫 사역지, 안력산 병원
안력산 병원은 의료 선교사 알렉산더의 후원으로 1916년 개원했다. 개원 당시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이어 전국 두 번째로 큰 병원으로 각지에서 수술을 받으러 올 정도로 현대의학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병원은 1941년까지 운영됐으며 이후 매산 학교 건물로 사용하다 1991년 화재로 소실돼 부속병동만 남았다. 프레스톤 2세 선교사는 내한하여 1939년에 이곳 순천 안력산 병원에서 사역하였다.

3.광주 제중병원에서의 아픔
서울에서 알렌 선교사가 제중원을 세웠다면, 광주에서는 놀란(J.W.Nolan) 선교사가 배유지 선교사의 임시사택에서 진료소 시설을 준비하여 1905년 11월 20일부터 진료를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광주 제중병원의 시작이 된다. 우월순(R.W.Wilson) 선교사는 이 지역의 최초 현대식 병원을 건축하였고 그 이름을 제중병원이라 하였다. 광주 제중 병원의 3대 원장이었던 부란도(L.C.Brand) 선교사는 결핵 퇴치 등 의료 사역을 위해 힘쓰다가 1938년 사망하였다. 부란도의 빈 자리를 대신하기 위하여 프레스톤 2세 선교사가 1940년 광주 제중병원으로 오게 되며 4대 원장이 된다. 그러나 신사참배의 문제로 일제에 의해 선교사들이 추방당하고 병원이 강제 폐쇄되는 어려움을 겪으며 1940년 10월에 광주 제중병원은 문을 닫게 된다. 후일에 1951년 광주 제중병원은 다시 문을 열었지만, 프레스톤 원장은 그 후 어디에서 사역했는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4.그 이후의 삶
1947년 4월 8일 선교사 직을 사임했다.
작성일:2019-12-12 19:05:45 183.104.207.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