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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Avison, Gordon W.(1891-1967, YMCA)

닉네임
여인구
등록일
2019-12-12 18:45:22
조회수
1410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4_ C012_여인구 조형래hwp.hwp (1369088 Byte)
내한선교사 / C012 / Avison, Gordon W.(미상, YMCA)


어비슨 고든 / Avison, Gordon W. (1891-1967)

I. 기본사항

이름: Avison, Gordon W. / 에비슨 고든 / 한국명: 어비신
생몰연도: 1891-1967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한국선교기간: 1925-1939
연표
1981. 캐나다 토론토에서 출생
1925. 미국 북미 YMCA 고든 어비슨 한국에 파견
1929-1930. 광주 YMCA 협동총무로 시무
1933. 어비슨 농업학교(광주YMCA농업실습학교)를 설립
1936. 3월 1회 졸업생 배출 12월 2회 졸업생 배출
1938. 일제의 탑압으로 광주 YMCA 활동정지
1939. 일제의 탄압으로 강제 출국 부인과 자녀(1남 2녀)들을 데리고 미국 귀국
1967. 향년 77세 나이로 미국에서 사망

가족사항
Avisonm Oliver R.(아버지)
Avison, Jennie Barnes.(어머니)
Frances Anna Goheen(아내)
Avison Gordon wilberforce(아들)
Jeanne Avison(딸)

II. 선교사 소개: 에비슨 고든 / Avison, Gordon W. (1891-1967)

1. 한국에 온 농업 전문 선교사

1920년대 한국 농촌사회에는 위기가 찾아왔다. 일제의 수탈적 농업 정책으로 인해서 전국에는 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때 한국 YMCA에서는 한국 농촌사회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농촌 운동을 벌였다.
특히 한국 YMCA에서 1924년 신홍우 총무를 미국에 파송했는데, 당시 미국 YMCA 국제위원회 총무 총무 모트(J. R. Mott), 브로크만(Flecher S.l Brockman), 페니(J. C. Penny) 씨 등과 레이크 플래시드에서 만나서 5인 회담을 가졌다. 이 5인 회담에서 합의 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전국 10개 지역을 선정해 북아메리카에서 파송한 전문간사를 배치한다.
(2) 전문간사는 1925년부터 시작하여 1년에 2명씩 5년간 10명을 파송한다.
(3) 전문간사들은 농촌 전문가인 동시에 YMCA 정신과 목적에 투철한 사랑으로 한다.
(4) 기독교 청년연합회는 10명의 간사와 일할 수 있는 한국인 간사 10명을 가져야 한다.
(5) 회의와 교육 시설 구비, 농사 개량과 농작물 증산 시범 할 수 있는 농토 마련해야 한다.
위와 같은 내용에 따라 미국은 한국에 농업 전문 간사를 파견하기로 약속했고, 7명의 농업 전문가가 한국으로 오게 된다. 교육 전문가 쉽(F.T Shipp), 축산과 과수 양계 전문가 번스(H.C Bunce), 살림전문가 클락(F.C CLark) 그리고 쌀 전문가 어비슨 고든(Avison, Gordon W.)이었다. 어비슨 고든은 자신이 살고 있던 펜실주니아의 윌리암스포트를 떠나 그의 아내(Frances Anna Gohhen)과 두 아이를 데리고 1925년 한국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는 호남 지역을 맡아 농촌운동을 실행하였다.

2. 호남 지역에서 활동

어비슨 고든(Avison, Gordon W.)의 호남지역에서 농촌 운동은 광주 YMCA와 지역 교회들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실행 되었다. 어비슨은 농촌 전문가로써 여러 가지 농촌 사업들을 실행했다. 농사법으로는 쌀 농사, 토지개량, 우량종자 보급, 종자고르는 법, 온실농업 등을 가르쳤고, 교육으로는 광주군 임곡면, 장성군 삼서면, 영광군 묘량면 등 5개처에 농촌 야학을 개설하여 문맹퇴치 운동에 힘썼다.
어비슨 고든(Avison, Gordon W.)는 1993년에는 광주 YMCA의 최흥종, 최영균 등과 협력하여서 광주 YMCA 농업실습학교(어비슨 농업학교)를 지었다. 교장은 어비슨이 맡고, 교무는 최득은, 정인세가 사감으로 수고하였는데, 강순명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어비슨은 농촌사업을 위해 "자신의 사재를 몽땅 털었고 그래도 모자라서 자녀들의 몫으로 저축했던 교육비까지 다 털어 놓았다."고 말한다. 어비슨 농업학교를 설립하고 호남 각지에서 인재들을 선발하여, 농업교육과 함께 성경과 기도훈련을 시켜 선지동산으로 유능한 기독교 지도자들을 배출시켰다. 어비슨 농업학교는 기독교 교육에 기반을 두고 운영했고, 삼애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주님을 사랑하라, 땅을 사랑하라, 서로사랑하라.
광복 후에는 이 삼애정신을 바탕으로 어비슨 농업학교는 목회자 양성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 설립이 시도 되었고, 1995년 선교부에서 호남 성경학교를 세웠는데 현재의 호남신학대학교로 발전하였다.
이처럼 광주 YMCA와 어비슨에 의해서 기독교계의 농촌 운동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는데,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기독교계에서 일어나는 농촌 운동을 독립 운동으로 간주하고, 탄압을 하기 시작했다. 1935년부터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외국인들을 한국에서 강제로 출국 시키기 시작하였고, 결국 1939년 에비슨(Avison, Gordon W)과 부인 프린시스(Frances Anna Gohhen)와 자녀들이 미국으로 강제출국 당했고 1967년 에비슨(Avison, Gordon W)은 세상을 떠났다.

3. 어비슨 기념관

농업전문 선교사 고든 어비슨은 세브란스 병원 설립자 올리버 어비슨의 아들로 일제강점기 1926-1939년 광주 YMCA를 기반으로 호남지역의 농촌 계몽과 농촌혁명에 헌신했다.
광주 YMCA와 광주양림교회가 고든 어비슨(Gordon W. AVison 1891-1967)의 희생적 발자취를 기려 광주 양림교회 맞은편에 어비슨 기념관과 동상을 세워, 2010년 4월 11일 준공식과 제막식을 가졌다. 기념관 1층 '어비슨기념홀'에는 양림동 문화지도와 어비슨의 행적을 담은 사진 자료, 2층에는 '어비슨카페'가 있어서 저렴하게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작성일:2019-12-12 18:45:22 121.133.210.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