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B049 / McAfee, Clerand B. (1866-1944, NP) / 3-4 / 2017210258 / 정형근

닉네임
정형근
등록일
2019-12-13 11:32:31
조회수
835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4_B049_정형근.hwp (699392 Byte)
맥아피 선교사 / McAfee, Clerand B.(1866-1944, NP)

2017210258 정형근
(3-4, 010-2621-2805)

Ⅰ. 기본 사항

이름 : McAfee, Clerand. Boyd. / 맥아피
생몰연도 : 1866.9.25~1944.2.4
출신 및 소속 : 미국, 북장로교
한국선교기간 : 1925년
연표
1925. 내한하여 한국교회 시찰, 기독교교육을 위한 보조
1926~1936. 해외선교부 총무로 한국선교 적극적 후원
1936. 은퇴 후에도 후원금을 모집하여 지원
1944. 3. 노드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소천

가족 사항
부인 : Harriet Lawson Brown (1869~1959, 1892. 8. 10 결혼)
자녀
Mildred Helen McAfee Horton
Ruth Myrtle
Katharine Agnes


Ⅱ. 선교사 소개

1. 맥아피(Clerand. B. McAfee, 1866~1944)의 삶
맥아피(Clerand. B. McAfee, 1866~1944)는 1866년 미주리 주의 애슐리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존 맥아피(John A. McAfee)는 미주리 주 파크빌에 있는 ‘파크칼리지(Park College)’의 설립자이며, 1875년부터 그가 사망하는 1890년까지 교장으로 재직하였다. 맥아피는 아버지가 설립한 파크칼리지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했다.
맥아피는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부 부원으로 있다가 1907년 한국에서 안식년으로 귀국한 언더우드(H. G. Underwood), 사이드보탐(R. H. Sodebotham), 브루엔(H. M. Breun), 홀(E. F. Hall), 샤록스(A. M. Sharrocks) 등으로부터 한국의 1907년 대부흥운동의 성과와 선교사 부족상태에 대한 보고를 듣고 그는 이를 실행위원회에 회부하여 매년 4만 달러씩 한국선교를 보조하며 새로운 선교사들을 파송하게 하는 결정을 내리게 하였다. 이후 한국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1925년에는 부인과 함께 내한하여 한국 교회를 시찰하였는데 이떄 기독교교육기관의 보조가 시급함을 인식하였고 귀국 후 한국 기독교교육을 위한 보조를 아끼지 않았다. 1926년부터 1936년 은퇴하기까지 브라운(A. J. Brown)의 후임으로 해외선교부 총무로 피선되어 한국선교를 보다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그는 은퇴 후에도 한국선교를 위해 많은 후원금을 모금해 보냈다.

2. 맥아피의 사역

1) 신학자
맥아피(Clerand. B. McAfee, 1866~1944)는 미국의 신학자이자 북장로교 목사였다. 그는 칼빈주의 5대강령을 나타내는 ‘TULIP 교리’의 약자의 창시자이다. 맥아피는 1912년부터 1930년까지 맥코믹 신학교(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1912년 "The Greatest English Classic: A Study Of The King James Version Of The Bible"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후 맥아피는 신학자로서 자신의 신학적 작업을 계속해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정리하며 계속 책을 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출판한 책들은 다음과 같다.
『where He is』 (Chicago: New York: Toronto, 1899), 『Faith, Fellowship and Fealty』 (Chicago: New York: Toronto, 1902), 『The Worth of a Man』 (Chicago: The Winona Publishing Company, 1903). 『The Growing Church: A Study for the Times』 (Chicago: The Winona Publishing Company, 1903), 『What Constitutes A Christian College?』 (The Presbyterian Board of Aid for Colleges and Academices, 1904), 『The Mosaic Law in Modern Life』 (Chicago: New York: Toronto, 1906), 『Studies in the Sermon on the Mount』 (1910), 『The Greatest English Classic: A Study Of The King James Version Of The Bible』 (New York: Harper & Brothers Publishers, 1912), 『His Peace』 (Chicago: New York: Toronto, 1913), 『Paslms of the Social Life』 (1917), 『Keeping Alive a Great Spirit』 (1920), 『The Christian Faith and the New Day』 (1920), 『The Church and the New Day』 (1920), 『Ministerial practices, some fraternal suggestions』 (1928), 『The Christian Message and Program 』 (1929), 『The Uncut Nerve of Missions : An Inquiry and an Answer』 (1932), 『The Foreign Missionary Enterprise and Its Sincere Critics』 (1935), 『THE RULING ELDER: His Duties and His Opportunities』 (1936), 『The Christian Conviction Regarding God And Man』, 『The Communion Service: A Manual of Helpful Suggestions to Aid Ministers in Their Communion Practice』

우리는 개혁주의를 가르치며 칼빈주의의 5대 교리인 ‘TULIP’ 교리를 가르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커넌트 칼리지의 켄 스튜어트 교수가 2009년에 이에 대하여 조사한 바가 있다. ‘TULIP’이라는 교육 장치는 적어도 1905년 이전부터 교육장치로 사용이 되어 왔었다. 이에 대하여 윌리엄 H 베일은 “칼빈주의의 역사학적으로 고려된 다섯가지 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약 8년 전에 나는 브루클린의 맥아피 박사가 뉴저지 뉴어크의 장로교 연합 앞에서 칼빈주의의 5가지 점에 대해 인기 있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특권을 가졌는데, 이 강의는 교훈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흥미로웠다. 오점을 기억하는 데 정신을 보탬이 되기 위해, 맥아피 박사는 튤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튤립은 5개의 문자를 가지고 있어서, 특히 나중에 볼 것처럼 P자로 끝날 때, 그 단어가 수중에 있는 주제에 잘 어울리게 된다.”

즉 맥아피는 칼빈주의의 주요 교훈들 중에 일부를 가르치기 위하여 사용된 TULIP 서리학의 원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 목사
맥아피는 북장로교의 목사였다. 맥아피는 1901년 시카고 제1장로교회의 목사로 떠나는 순간까지 철학교수, 합창단 감독, 파크칼리지의 학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1904년 맥아피는 뉴욕 브루클린의 라파예트 애비뉴 장로교회(Lafayette Avenue Presbyterian Church)의 목사로 사역했다. 이후 그는 미국장로교회총회(PCUSA)의 조정자로서 사역하였으며 1926년부터 1936년까지 북장로교 외국인선교회를 총무로서 이끌기도 하였다. 맥아피는 이 시절에 한국선교에 큰 관심을 가지며 물질적 후원으로 한국선교를 물심양면 도왔던 것을 확인된다.

3) 찬송가 작사가
맥아피는 찬송가 작사가이다. 찬송가 “Near to the Heart of God”와 “On to Conflict”, “That Coming Day”를 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 곡 중에 대표곡은 바로 “Near to the Heart of God”인데, 맥아피가 이러한 찬송가를 작사하게 된 배경에는 그의 형제의 어린 두 딸이 ‘디프테리아’라는 질병으로 사망 후에 이 노래를 작곡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슴아픈 이야기를 들은 파크칼리지의 합창단은 토요일 밤 리허설에서 맥아피가 작사한 찬송가를 불렀다고 한다. 맥아피가 작사한 찬송가(“Near to the Heart of God”)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Ⅲ. 사진 및 기타자료


▲ 맥아피(Clerand. B. McAfee, 1866~1944)의 사진


▲ 맥아피와 그의 아내(Harriet Lawson Brown)의 묘비에 맥아피의 ‘찬송가’ 제목이 적혀 있음

Ⅳ. 참고문헌

[단행본 및 논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김승태. 박혜진. 『내한 선교사 총람』.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7.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기독교대백과사전 제 5권』. 서울: 기독교문사, 1982.

Harry A. Rhodes. Archibald Campbell. 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Ⅱ).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교육부, 1984.

William H. Vail. The New Outlook [vol. 104], 1913.


[웹사이트]

“Cleland_Boyd_McAfee.” Find A Grave. . 2019년 11월 18일 접속.

“Cleland_Boyd_McAfee.” Wikipedia. . 2019년 11월 19일 접속

“Cleland_Boyd_McAfee.” Amazon. 2019년 11월 20일 접속

“Cleland_Boyd_McAfee.”, Logcollegepress. 2019년 11월 21일 접속

“Cleland_Boyd_McAfee.”, Thisday. 2019년 11월 21일 접속

“Cleland_Boyd_McAfee.”, Hymntime.
작성일:2019-12-13 11:32:31 182.212.218.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