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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Campbell, Edward L.(미상, NP) / Sanders, Elizabeth

닉네임
임영광
등록일
2019-12-13 13:45:52
조회수
978
첨부파일
 에드워드 캠벨.hwp (321024 Byte)
내한선교사 / Campbell, Edward L. / James Hall&Rosetta Hall / 3학년5반 / 2017210317 / 임영광

에드워드 L. 캠벨 / Campbell, Edward L.

I. 기본사항
1. 이름: Campbell, Edward L. / 에드워드 L. 캠벨
2. 생몰연도: 자료없음
3. 학력: 자료없음
4. 출신 및 소속: 미북장로교 선교회
5. 한국선교기간: 1914.9-1933.
6. 연표
1) 1914.9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2) 평양 숭실학교에서 목공, 농장실습, 철공소, 양돈 등의 분야에서 전문지식 학생들의
자립을 도움
3) 숭실학교에서 영어 강의, 학교의 회계일도 담당
4) 1925 한국YMCA 농촌운동 적극적으로 후원
5) 1933 귀국
6) 1964 당시 워싱턴주 시애틀 거주
7. 가족사항
자료 없음


II. 선교사 소개
1. 캠벨의 선교 사역과 농촌운동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기독교백과사전 16권』(서울 용산구: 기독교문사)

캠벨은 미북장로회 한국 선교사이다. 한국명 감무열. 북장로회 선교부의 파송을 받고 1914년 9월 18일 내한하였다. 그는 일종의 산업 선교사로 평양 숭실학교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다. 즉 목공·농장실습·철공소·목장경영·양돈 등 여러 분야에서 합리적 방법과 전문지식을 가르치면서 많은 학생들의 자립을 도왔다. 1915-16년에 93명의 학생이 각 부문에 종사, 스스로 학비를 조달하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그는 여기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이나 물품들을 선교사 가족들과 학교 등에 공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중에 판매하여 상당한 수익을 올렸으며 학교 서점을 경영하여 얻은 이익금은 빈곤한 학생의 장학금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또한 영어를 가르쳤으며 학교의 회계일도 맡아보는 등 동분서주하였다.
1925년 한국 YMCA에서 농촌운동을 크게 일으키면서 그는 루츠(Luts) 미 북장로교 선교사, 한국명 유소. 1921년 3월 4일 부인과 함께 한국에 부임하였으며 그 이래로 1960년 은퇴할 때까지 해방 전에는 평양을 중심하여 해방 후에는 주로 대전 등지에서 농촌을 위한 선교활동에 전력을 경주하였다. 루츠 선교사는 한국에 도착하자 곧 평양선교회가 임지로 정해졌으며 숭실전문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게 되었다. 그는 숭실대학에 농과대학을 개설하고 농촌문제 전문가인 버터필드와 브루너를 초청해 농촌실태연구를 위촉하기도 하며 숭실농장을 만들어 그곳에서 학생들이 일하게 함으로 학비를 조달케 하여 근로 장학금의 혜택을 받게 하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올렸다.
와 함께 선교회를 대표하여 이 농촌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 추진케 하였으며 1933년 임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1964년 당시에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거주했다.

2. 숭실학교 학자자급제도 발전 숭실대학교출판부 『숭실대학 90년사』(서울: 숭실대학교90년사편찬위원회 1987)
- 숭실학교의 역사를 중심으로
에드워드 캠벨 선교사는 숭실학교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립하여 공부할 수 있도록 자조사업을 확장하였다. 농과와 함께 사무엘 데이비스의 도움으로 기계창을 설립하여 대학생들의 자립의 길을 개척하였다. 1913년의 학교요람은 학생자조사업의 두 가지 목적을 첫째는 가난한 학생들을 학교를 통하여 일을 시켜 돕는 것이고 둘째는 이 소년들에게 기술 교육을 시켜서 그들의 장래 생활을 향상시키고 보다 유용한 사회의 역군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뚜렷이 밝히고 있다. 숭실대학을 설립한 배위량 선교사는 한국이 가장 절실히 요구하는 분야 중 하나인 공업과 농업의 지도적인 인물들을 이 사업과 기관을 통해서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이를 제안하고 또 추진하였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에드워드 캠벨 선교사는 목공과 농업 그리고 철공소에서 학생들에게 기술을 가리키며 스스로의 자립과 학교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3. 농촌운동 전개 임희국 『평양의 장로교회와 숭실대학』(서울: 숭실대학교 출판국 2017)
- 장로교회 농촌운동에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피폐한 농촌경제 살기이 차원에서 1929년 장로교 총회가 시작한 농촌운동은 몇 해 동안 정인과 목사가 농촌부 부장을 맡아서 추진했고, 1930년대 중반에 숭실학교 출신 배민수 목사가 뒤를 이어서 총무로 일했다. 배민수는 농촌 선교정책이 왜 중요한지 그 이유를 밝혔는데: 그는 피폐한 농촌사회에 수 년 전부터 파고 들어오는 공산주의의 이념과 도전에 대응해서 교회는 영혼구원 뿐만이 아니라 물질적인 구제까지 선교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동료 이훈구도 선교란 영혼을 죄악가운데서 구속하는 일과 물질 생활을 개선케 하는 일이라 강조했다. 이러한 선교의 근거를 그는 <주기도문>에서 찾았다: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서 ‘양식’은 경제생활 전반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배민수와 함께 농촌운동 지도자들은 농촌전도와 함께 ‘실천적 기독교’를 추구했다. 숭실학교 출신인 배민수 목사는 에드워드 캠벨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캠벨이 루츠 선교사와 함께 YMCA 농촌 운동을 전개하였듯이 숭실학교 출신의 장로교회 목사들은 농촌운동을 통하여 삶의 증진과 복음의 확장을 이루었다.

4. 결론
에드워드 캠벨은 본인의 이름이 등장하는 자료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숭실대학교 역사와 미북장로교 선교사 열전에서도 간단한 이름만 등록되어있고 그의 자세한 사역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숭실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배위량과 루츠 등과 함께 학생자립운동과 농촌 운동을 전개하였음을 통하여 그의 선교의 영향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의 이름이 드러나는 사역을 하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생들의 자립을 도왔고 조선인들에게 기술을 가르쳤다. 또한 YMCA에서 농촌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힘썼다. 에드워드 캠벨의 선교의 삶을 조사하면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는 찬송가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의 가사가 생각났다. 캠벨 선교사는 그가 입국하는 1933년까지 한국의 학생들과 농촌지역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위해 봉사하고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비록 그의 이름은 자주 언급되지 않고 심지어 숭실학교 역사에서 조차도 찾기 힘든 이름이지만 그의 영향 아래서 수 많은 학생들이 배웠고 그로 말미암아 한국의 농촌과 목공, 철강 기술 등에 큰 발전을 이룩하였음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조선을 위해 이름없이 섬긴 캠벨과 같은 무명의 선교사들로 인해 오늘날 한국의 교회가 든든히 세워졌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III. 사진 및 기타자료

1. 평양에 세워진 숭실학교 전경



2. 캠벨 부부(좌: 에드워드 캠벨 L / 우: 엘리자베스 샌더스 Mrs 캠벨) http://koreanchristianity.cdh.ucla.edu/biographies/missionaries/


3. YMCA 농촌 지도자 협의회(1928) https://yunheepathos.tistory.com/1394



IV. 참고문헌

[국내문헌]
Harry A. Rhodes, 『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교육부 1984)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기독교백과사전 14권』(서울 용산구: 기독교문사)
배민수, 박노원 역 『배민수자서전:누가 그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연세대학교출판부, 1999)
숭실대학교출판부 『숭실대학 90년사』(서울: 숭실대학교90년사편찬위원회 발행인: 김성진 1987)
숭실대학교출판부 『숭실대학 100년사』(서울: 숭실대학교90년사편찬위원회 발행인:어윤배 1987)
임희국 『평양의 장로교회와 숭실대학』(서울: 숭실대학교 출판국 2017)
임희국 『선비목사 이원영. 유림선비에서 기독교 목회자로』, (조이웍스, 2014)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내한 선교사 총람』(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7 수정 증보판 3쇄)


[관련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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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12-13 13:45:52 121.133.210.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