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척박한 땅으로 주권도 언어도 없이 영적으로 현실적으로 어둡던 우리 나라에 미국의 선교사들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줄 수 있었던 선교사들은 이해관계가 깊게 얽히지 않아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캐나다 선교사님들이었습니다.
그 중, 매컬리 선교사에 대해서 자료를 수집해 보았습니다.
이름 및 출생: 맥컬리, 캐나다 출생.경력: 캐나다장로교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됨. 1900년 의화단사건으로 한국으로 피신하여 머물게 됨. 함남 원산에서 매일기도회를 성경연구회로 발전시켜 1907년 대부흥운동의 원동력이 됨. 한국여전도회 초대회장에 선출되어 성경공부와 계몽교육. 1903년 말부터 함흥에서 주간성경공부반 개설하여 가르침. 1908년 여전도인 양성사업. 원산에 마르다윌손 여자신학원 설립. 1934년 귀국 김홍수 『내한 선교사 총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4.6.20. p337
가족으로는 언니 McCully, Elizabeth A. 가 있습니다.
한국식 이름은 ‘이부인’이며, 1864년 4월 24일 캐나다에서 출생했습니다. 한국으로 피난 왔다가 함안 원산에서 그녀보다 먼저 내한한 캐나다 선교사들과 합류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중국에서 함께 온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매일 기도회를 갖게 되었는데, 1904년부터 이것이 성경연구회로 발전되고 같은 캐나다 선교사 하아더, 럽 등이 지도하여 1907년을 전후하여 일어난 한국 대부흥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그녀는 부인 전도에 열중했으며 한국 여전도회 초대회장으로 선출되어 부인들에게 성경공부와 계몽교육을 병행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08년부터 캐나다 선교부는 그녀에게 여전도인 양성사업을 맡겼습니다. 그녀는 당시 함흥을 중심으로 한 7개 교회에 263명의 부인 수강생을 가르치고 있었고 그후 그녀는 원산에 마르다 윌손 여자신학원을 설립하였는데 이 교명은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붙인 것입니다. 또한 그녀의 언니 맥컬리(Elizabeth A. McCully, 1862-1941)는 캐나다 장로교의 초대 독립 선교사로 한국에 와 황해도 솔내에서 선교활동을 한 매켄지(W. J. McKenie) 선교사와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으나 매켄지 선교사가 1895년 한국에서 별세함으로 인해 한국 선교에 대한 뜻을 세우고 1909년 내한하여 평생 독신으로 선교사업에 전력하였으며 매켄지의 전기인 를 저술하였습니다. 이들 자매는 1934년까지 활동하다가 함께 귀국하였습니다. 한영제 『기독교대백과사전』, 기독교문사, 1982.3.20. p1047-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