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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B053 / McCully, Louise H.(1864-1945, CP) / 3-5 / 이대현

닉네임
이대현
등록일
2019-12-13 17:05:49
조회수
869
첨부파일
 내한 선교사 조사.hwp (2162688 Byte)
내한 선교사 조사

3-5 이대현 2016210312

McCully, Luise H.(1864-1945, CP)

복음이 척박한 땅으로 주권도 언어도 없이 영적으로 현실적으로 어둡던 우리 나라에 미국의 선교사들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줄 수 있었던 선교사들은 이해관계가 깊게 얽히지 않아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캐나다 선교사님들이었습니다.
그 중, 매컬리 선교사에 대해서 자료를 수집해 보았습니다.

이름 및 출생: 맥컬리, 캐나다 출생.경력: 캐나다장로교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됨. 1900년 의화단사건으로 한국으로 피신하여 머물게 됨. 함남 원산에서 매일기도회를 성경연구회로 발전시켜 1907년 대부흥운동의 원동력이 됨. 한국여전도회 초대회장에 선출되어 성경공부와 계몽교육. 1903년 말부터 함흥에서 주간성경공부반 개설하여 가르침. 1908년 여전도인 양성사업. 원산에 마르다윌손 여자신학원 설립. 1934년 귀국 김홍수 『내한 선교사 총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4.6.20. p337


가족으로는 언니 McCully, Elizabeth A. 가 있습니다.
한국식 이름은 ‘이부인’이며, 1864년 4월 24일 캐나다에서 출생했습니다. 한국으로 피난 왔다가 함안 원산에서 그녀보다 먼저 내한한 캐나다 선교사들과 합류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중국에서 함께 온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매일 기도회를 갖게 되었는데, 1904년부터 이것이 성경연구회로 발전되고 같은 캐나다 선교사 하아더, 럽 등이 지도하여 1907년을 전후하여 일어난 한국 대부흥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그녀는 부인 전도에 열중했으며 한국 여전도회 초대회장으로 선출되어 부인들에게 성경공부와 계몽교육을 병행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08년부터 캐나다 선교부는 그녀에게 여전도인 양성사업을 맡겼습니다. 그녀는 당시 함흥을 중심으로 한 7개 교회에 263명의 부인 수강생을 가르치고 있었고 그후 그녀는 원산에 마르다 윌손 여자신학원을 설립하였는데 이 교명은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붙인 것입니다. 또한 그녀의 언니 맥컬리(Elizabeth A. McCully, 1862-1941)는 캐나다 장로교의 초대 독립 선교사로 한국에 와 황해도 솔내에서 선교활동을 한 매켄지(W. J. McKenie) 선교사와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으나 매켄지 선교사가 1895년 한국에서 별세함으로 인해 한국 선교에 대한 뜻을 세우고 1909년 내한하여 평생 독신으로 선교사업에 전력하였으며 매켄지의 전기인 를 저술하였습니다. 이들 자매는 1934년까지 활동하다가 함께 귀국하였습니다. 한영제 『기독교대백과사전』, 기독교문사, 1982.3.20. p1047-1048

루이스 맥컬리가 저술한 [예수 행적도]는 예수님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예수의 행적을 공부하기 위한 공과공부 자료집이며 예수님의 일대기를 8부분으로 나누어서 모두 83개의 공과로 구성되었으며 각 공과는 요절 말씀과 긴 설명이 없이 중요한 대지만 수록하였습니다.
이 책은 처음에 ‘예수 행슌도’라는 제목으로 초판이 발행되었으며 소개되는 사진은 1938년에 출간된 제 6판본입니다. 아마도 저자가 원산에 설립한 최초의 여성신학교육기관인 마르다 윌슨 여자학교의 성경 교재로 쓰였던 것 같습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m10956&logNo=220834829221&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자료 조사 중에 알게되는 사실 중 하나는 매캔지 선교사님께서 매컬리 두 선교사 자매분들 중에 언니와 약혼한 사이였다는 말고 있고 또 동생과 미래를 약속한 사이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부다처제는 아닐 것으로 보이기에, 아마도 내한 선교사님들에 대해서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 때문에 작은 오해라고 볼 수 있지만 잘못하면 선교사님들의 정신 전체를 흔들어 둘 수 있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걱정이 됩니다.

캐나다 토론토 서쪽에 위치한 이토비코에는 130여년전에 캐나다에서 한반도, 특히나 북한의 함경도와 그리고 강원도, 간도 지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조선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사랑과 복음을 전한 180여명의 파란 눈의 캐나다 선교사님들을 기리는 전시관이 있습니다.
‘내한 캐나다 선교사 전시관’이라고 부르는 이 박물관은 비전펠로우쉽이라는 캐나다 초교파 선교단체가 2005년에 세웠습니다.
비전펠로우쉽은 남북의 갈등과 불안 속에서 한민족의 ‘복음화’와 ‘통일’이라고 하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 130여년전에 한반도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며 우리 민족분들에게 소망을 주셨던 캐나다 선교사님들의 선교적 사명을 계승해 북한 복음화와 통일에 기여하고자 설립된 단체입니다.
이토비코의 캐나다 선교사 전시관에는 당시 조선 사람들보다도 더욱 더 조선을 사랑했다고 전해지는 180여 명의 캐나다 선교사님들이 북한 지역과 민족의 복음화에 기여했던 헌신과 신앙적 유산을 미래에 계승하기 위해서 이들의 유물들과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비전펠로우쉽 대표 황환영씨의 말입니다.
“매킨지 선교사님이 돌아가시고, 캐나다 장로교단에다 편지를 씁니다. ‘선교사를 좀 보내 달라.’ 그래서 캐나다 장로교단에서 최초로 3명의 캐나다 선교사를 보냅니다. ... 이분들이 우리나라에 굉장히 많은 사역들을 하시게 되는데 이분들이 미국과 선교지를 분할하게 돼서 함경남북을 캐나다가 맡게 됩니다.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던 선교사들을 모두 모아서 1900년인데, 원산, 함흥 지역을 맡게 됩니다. ...
한국 기독교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것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사건인데, 이 평양 대부흥운동은 원산에서 사역하고 있던 캐나다 선교사님들인 맥컬리와 화이트의 깊은 회개 운동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
3.1 운동 때에도 미국의 선교사님들은 일본과의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소극적으로 활동한 것에 비해, 캐나다 선교사님들은 적극적으로 이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치외법권 지역 종교건물에 3.1운동가들의 모임장소를 제공하고 평화적인 만세시위를 사진으로, 문서로 전세계에 폭로하는 일도 캐나다 선교사들이 참여했습니다.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canada_now/co-so-05232017090306.html


조사를 마치며...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고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정말로 아는 것만큼 보이기 때문에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선교사 조사에서도 우리가 모르고 생각하면 그저 미국 선교사님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고만 생각할 수 있는데, 앞뒤정황들과 우리 나라를 위해서 힘쓰며 남긴 캐나다 선교사님들의 활동과 기록들을 살펴보면서 캐나다 선교사님들의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역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널리 인정해주며 알아주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그다지 중요한 점은 아니지만, 이 조사를 하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으며 선교와 기독교에 대해서 새로운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며 나 자신을 발전시켜 준 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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