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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B121/Stites Frank M/3학년6반/2017210348/김주경

닉네임
김주경
등록일
2019-12-13 17:52:32
조회수
778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6_B121_김주경.pdf (114757 Byte)
내한 선교사 B121
‘Stites, Frank M. / Stites, Louise Armisted

3학년 6반 / 2017210348 김주경

❐ 선교사 정보

1. 생몰연도 : 미국에서 출생하였다.
2. 학력 : 미국에서 내과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3. 경력 : 1917년 12월 남 감리교 의료 선교사로 부인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세브란스 병원 및 세브란스 의과대학 내과 교수로 취임하였다.
1920년 3월 세브란스 병원 내에 한국 최초의 결핵 예방 시설을 갖추었다.
1923년 안식년으로 귀국하였다.
1925년 3월 부인이 복막염으로 소천하자 귀환하지 못하였다.
4. 가족관계 : Stites, Louise Armisted(부인)
5. 논저 : -
6. 세브란스 병원

1913년 세브란스 병원의 후원자였던 미국의 세브란스(L. H. Severance)가 작고하였으나, 아들(J. L. severance)과 딸(F. F. Prentiss 부인)이 선친의 사업을 계승하여 지원을 계속하였다. 그해 6월 13일 의학교와 진료소 5층 건물의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23년에는 한국인들의 기부금으로 전염병 격리병동을 건립하여 의료사업을 한층 더 확장 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였고, 1919년에는 새 X선 촬영기도 도입되었다. 입원 병상은 1904년에 40병상으로 출발하였으나 1917년 전문학교로 승격되면서 90개로 늘었으며, 1919년에는 200개 병상의 병원계획을 수립하여 아들 세브란스가 32,550달러를 기부하였다. 1921년에 120개까지의 병상을 확장하였다.
세브란스 병원의 목적은 첫째, 전문화된 의료서비스의 제공, 둘째, 이를 위한 전문적인 의학 연구, 셋째, 의사와 간호사 등 한국인 의료진 양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세브란스는 제 3기의 병원체제를 유지하면서 이 시기에 병상을 증대하고 각과를 개설하였다.

❐ 내용

남감리교 의료 선교사로 미국에서 출생하였고, 본국에서 내과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17년 부인과 함께 한국의 선교사로 들어왔다. 세브란스 병원 및 세브란스 의과대학 내과 교수로 취임하였다. 1917년 이 때는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나타난 국적별 사립 병원 및 의사 수에서 외국인 사들이 가장 많았던 시기이기도하다.
1910년대 초 각 선교회의 의료선교사 비중은 점차 줄어들었다. 예컨대 15~20명의 선교사가 있는 비교적 큰 선교지부의 경우도 목사, 여자 복음 전도자, 그리고 교육선교사 등은 각각 수명씩이나 되었지만 의사는 단 1명밖에 없었다. 따라서 기독교 병원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의료진 부족의 문제였다. 의료 선교사의 부족과 잦은 건강상의 휴가로 인해 병원의 문이 닫히는 경우가 종종 나타났다. 특별히 세브란스 의학교에는 4년 과정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3명밖에 없었다.
1920년 3월 당시 돈 600원으로 세브란스 병원 내에 결핵 병사를 신축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결핵 예방 시설을 갖추었다. 1923년 안식년을 맞아 귀국한 그는 부인이 건강을 해쳐 이듬해 돌아오지 못했으며 1925년 3월 부인이 복막염이 재발하여 사망하고 난 이후 귀환하기 못하였다.

❐ 참고문헌

김흥수, 자료총서 제18집 내한 선교사 총람(수정 증보판),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7
이만열, 한국기독교의료사, 아카넷, 2003
작성일:2019-12-13 17:52:32 39.7.46.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