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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Kostrup, Bertha Alfrida 선교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닉네임
한국기독교사연구소
등록일
2020-01-07 14:14:41
조회수
1201
첨부파일
 Kostrup Bertha Alfrida(완료).hwp (421888 Byte)
Ⅰ. 기본사항
이름: Kostrup, Bertha Alfrida / 코스트럽 / 한국명: 고수도(高壽道)

1. 생몰연도: 1889. 11. 18. - ?
2. 출신 및 소속: 미국, 북감리교
3. 한국선교기간: 1922-1940
4. 연표
1889. 11. 18.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출생.
1916. 미감리회 소속 필리핀 선교사로 파송.
1922. 한국선교사로 내한.
지방순회하며 아동진료, 공중위생계몽과 복음전도에 매진.
1923. 인천부인병원(제물포 부인진료소) 책임자로 근무.
1924. 아동보건소 개설.
1931. 인천부인병원 신축(현 인천기독병원).
1940. 일제의 의해 강제송환
귀국 후 캘리포니아 거주.

5. 가족사항: 없음.


II. 선교사 소개

1. 필리핀으로부터 한국에 온 덴마크 간호 선교사

Kostrup은 1889년 11월 18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이후 간호사가 된 그녀는 의료선교사로 자원하여 1916년 미 감리회 해외여선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필리핀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러던 중 1922년 한국으로 파송받는다. 내한 후 한국에서 의료사역을 감당하던 Rosetta Hall을 도와 제물포에 정착하여 선교사역을 감당한다. 당시 제물포에는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여선교사 합숙소가 있었기 때문에 Kostrup 또한 합숙소에서 지낼 수 있었다.

2. 제물포 의료사역의 주역이 된 선교사

1923년 Kostrup은 인천부인병원(제물포 부인진료소)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녀는 시내 중심가에 마련된 부인병원을 중심으로 의료활동을 전개하면서 지방을 순회하며 아동진료, 공중위생계몽과 함께 복음 전도에 매진하였다. 1924년 6월에는 아동보건소를 개설하여 아동 및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보건사업을 전개한다.

3. 인천에서 현대식 병원을 시작하다

제물포 부인진료소를 찾는 환자가 한 해에 5,000여 명에 달하면서 병원신축의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이에 미국 의료사업회의 도움으로 1931년 입원실을 갖춘 현대식 병원 건물을 마련하였다. 의사 간호사 각 한 명이었던 병원 직원도 1938년에는 코스트럽 외 여의사 2명 간호사 2명 전도부인 1명, 잡부 1명으로 늘었다. 이 해에만 유아진료소에 등록된 어린이가 300명이었으며, 진료환자는 12,000여 명에 달했다. 감리교 여성사 기록에 의하면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릴 때 전도부인은 이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했으며, 환자들이 요청할 경우에는 가정을 심방하여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4. 일제에 의해 더 이상 한국을 섬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중 2차 대전의 발발로 일제의 기독교 탄압이 강해지면서 1940년 Kostrup은 강제송환되어 미국으로 귀환한다. 그녀는 이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캘리포니아에 거주하였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 정부는 미국 선교회 소유인 인천부인병원 건물을 적산으로 몰수하여 접대부 검문소로 사용했다. 이후 1952년 5월 26일 인천기독병원으로 재개원한다.
작성일:2020-01-07 14:14:41 49.175.45.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