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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24/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 (1803~1851)

닉네임
김형률
등록일
2020-06-30 15:17:23
조회수
606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학년2반_24_김형률.pdf (436501 Byte)
생 애

그는 퓌릿츠(현재의 폴란드 서포모제주 피지체)의 재봉사(裁縫)가정에서 태어났다. 네살 때 어머니를 여읜 그는 슈테틴에서 안장(鞍裝) 견습생이 되었으나, 곧 할레에 있는 패다고기움 입학 허가를 받았다. 15세 때(1818년), 아랍어와 터키어를 배웠다. 18세(1821년)에 베를린선교학교에 들어갔고, 20세(1820년)에 로테르담에 가서 네덜란드 선교회에 가서 훈련을 받았다. 1826년 7월에 안수를 받았다.

1826년 네덜란드 선교회는 그를 자바 섬으로 파송했다. 그곳에서 그는 중국어를 배웠다. 1828년 그는 이 선교회를 떠나, 싱가포르에 처음 방문하고 이어서 런던선전교회의 제이콥 톰린과 함께 방콕으로 갔다. 그곳에서 성경을 태국어로 번역하였다. 태국에서 선교한 뒤, 중국 대륙에서 선교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조선, 타이완, 일본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1832년 2월 26일, 동인도 회사는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통상지를 얻기 위해 로드 애머스트호(Lord Amherst)를 용선하여, 휴 해밀튼 린지를 항해 총책임자로 세우고 탐사를 하도록 했다. 그는 광동 이북에서의 무역 확장을 타진하기 위해서라는 구실로, 남오(南澳), 하문(廈門), 복주(福州), 영파(寧波), 상해(上海), 위해(威海) 등 항구를 돌아다니며 지형을 측량 및 제도하고, 정치·경제·군사 정보를 수집하여 영국의 외무대신 헨리 존 템플에게 건네주었다. 이 탐사 과정에서 귀츨라프는 통역을 담당함과 동시에 선의로서 린제이를 동행하였다.

7월 22일(음력 6월 25일)에 이 배는 공충도 홍주의 고대도(古代島)[5] 뒷바다에 나타났다. 귀츨라프는 홍주 목사(洪州牧使) 이민회(李敏會)와 수군 우후(水軍虞候) 김형수(金瑩綬)와 한문으로 대화를 했다. 그는 주민들에게 한문성경과 전도문서와 서적 및 약품을 나눠주었고, 감자와 포도주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여 가르쳐 주고, 한글 자모를 받아 적은 다음 이를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8월에는 류큐국의 나하에 기항하였다. 이들 일행은 린카이지(臨海寺)의 가까이에서 상륙하였다. 그 때 모여든 민중과 일꾼들에게 한문으로 번역된 성서를 배포하였다. 류큐국 국왕 상씨(尚氏)에게도 한역 성서 세권을 증정하였다. 그해부터 이듬해(1833년)까지 쇄국 중이던 일본에도 입국을 시도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작성일:2020-06-30 15:17:23 211.62.2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