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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34 / Emily Irene Haynes(1877-1960)

닉네임
송주영
등록일
2020-06-29 22:38:47
조회수
562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학년2반_34_송주영.pdf (88928 Byte)
여성 선교에 모든 것을 바친 외국인 선교사
혜인수

1. 기본사항,
Haynes, Emily Irene (헤인수 / 惠仁秀 / 미국 / M)
1) 생몰연도 : 1877-1960
2) 출생 : 1877.12.5. Nunda, Livingston County, New York, USA
3) 학력 :
4) 한국선교기간 : 1906 - 1940 34년간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5) 연표

1877.12.5. Nunda, Livingston County, New York, USA 출생
1906. 한국에 도착
1909-19 숭실학교 교사로 봉직 -
주로 주일학교, 주간(週間)학교 중심으로 교육에 종사
평양, 진남포, 사리원, 강서 등지에서 복음전도사업
1924- 평양여자성경학원 교사로 봉직
1926. 미국으로 안식년을 얻어서 1년 동안 미국에 귀국했다.
1927.2.XX (?) 안식년을 가지고 한국에 귀환한 것으로 보인다.
1931.6.14 기독교조선감리회 제1회 연합연회에서 최초 여자목사로 안수받음
여자사경회 인도
1937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 교장에 취임, 여자교역자 양성
1940 일제에 의해 강제 출국
1960 Herkimer, Herkimer County, New York, USA Oak Hill Cemetery 매장


6) 가족사항:

부 : James W. Haynes(1841-1926)
모 : Lucinda Preston Haynes(1851-1902)
자매 : Cordelia Haynes (1873-1962)
Leona Haynes (1879-1900)



2. 선교사 소개

1) 아버지를 따라서 온 한국
1906년 아버지 James. W. Haynes와 언니 Cordelia Haynes와 함께 가족은 학국 땅을 밟는다. 선교활동으로서 평양에 도착하게 되었다.
1) Arrived in Pyongyang, Korea in 1906 with her father James W. Haynes and her older sister Cordelia Haynes.

2) 한국에서 최초로 여자목사로 안수받은 14명의 선교사 중 한명
혜인수 선교사는 숭실학교에서 교사로 사역을 하며, 3.1운동에 참여한 학교의 교사로서 복음전도자로 있었고 평양여자성경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해 학교의 교사로 취임,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2) One of the first females to receive their ordination in Korea. Evangelist, Soongsil School teacher, involved with 3.1 Movement

3) 평양여자성경학교/평양여자신학교에 교장으로 취임
평양 여자성경학교는 1923년 3월 28일 평양 경창리에 설립된 장로교 신학 교육기관. 여교역자 양성을 위해 1922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 허가를 얻어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란 교명으로 개교했다. 베스트(M. Best, 裵貴禮)가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였으며, 버츠(Butts), 사무엘(Samuel), 베어드(Baird) 부인, 마펫(Moffett) 부인, 윈(Winn) 부인 등 주로 평양 주재 북장로회 여선교사들이 교사로 가르쳤다. 초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11명이 처음으로 입학하여 교회사, 설교학, 윤리, 심리학, 영어, 음악 등을 공부했으며, 1년에 3학기 3년 과정의 학제를 이수했다. 1926년 2월에 제1회 졸업생 4명이 배출되었고, 1928년에는 재학생이 60명으로 증가하였다.
3) Pyongyang Woman’s Biblical Seminary Principal.

4) 일제에게 선교사가 학교의 교장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강체 출국
1930년대에 들어와 만주사변(1931)과 중일사변(1937)을 도발한 일제 전시체제의 형성에 따라 한국 주재 선교사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도 가중되었다. 또한 신사참배에 대해서 반대했던 배후로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지목되었고, 이에 대한 일제의 많은 회유와 탄압에도 그들이 굴하지 않자 일제는 더 강한 탄압과 압력을 실시하였다. 결국 미국은 1940년 5월 국무성을 통해서 전쟁에 대한 경고를 지역의 미국인들에게 하였고, 11월에는 선교사와 그 가족 189명을 비롯한 219명의 미국인들이 마리포사호(The Mariposa)로 귀국하였다.
4) Deport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for being a foreign missionary

5) 언니와 귀국 후 1960년 사망
혜인수 선교사는 일제의 강제 출국 당시 언니와 함께 출국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녀들은 미국에 돌아와서 무엇인가 사역을 담당했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혜인수 선교사의 논문은 이후 다른 논문에서 사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Union Academy School and Evangelistic Work on Pyeng Yang District," Annual Report of the Korea Women's Conference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1910), 55-60
5) Returned to US with her sister and passed away in 1960

6) Emily Irene Haynes는 James W Haynes의 딸인, 그녀는 선교사로 주로 평양?(Pyeong) 한국에서 머물렀다. 그녀는 Herkimer에서 노인을 위한 the Folts Home에서 죽었다.
6) Emily Irene Haynes was the daughter of James W Haynes, she was a missionary, who traveled mostly to Pyeng Korea.
She died at the Folts Home for the aged in Herk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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