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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M0104 / Ross, A. Russell(1876-1964, 캐나다 CP) / Davis, Grace(미국NP-CP)

닉네임
김동경
등록일
2020-07-02 16:47:11
조회수
681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학년3반_M0104_김동경.hwp (4848640 Byte)
Ⅰ. 기본 사항

1. 이름: 로스 Ross, A. Russell (노아력) 캐나다/ CP
2. 생몰연도:1876년8월8일-1964년10월18일
3. 출생: 1876년 8월 8일 캐나다에서 출생
4. 출신 및 소속: 캐나다장로교
5. 경력;1907.8 캐나다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함북 성진을 담당하던 그리어슨 목사와 합류
*성진교회를 3명의 선교사들(Robert G. Grierson-구례선, Alec F. Robb-업아력,
Russell A. Ross-노아력)이 목회하였다.
1905년 (조선예수교 장로교사기) (전라선교 25년 기념사 10쪽)에 의하면 노아력 선교사가
최홍서 조사( 현 지경교회 장로이었음)를 보내어 큰 교회가 되었다고 한다
1908년 9월 독노회에 구례선, 노아력 목사가 성진지역을 대표로 참석함
1912년 캐나다선교부가 간도 용정에 설치되자 간도로 이주
용정을 중심한 간도, 회령지방 순회목사로 활약
1912년 당시 총독부에서 조사한 조선 기독교 부속 학교 명부에 실린 자료에 의하면 로스
선교사는 영명학교(전북 임피군 서사면 구암리)와 도남학교(전북 익산군 남이면 남
참리)의 교장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소개된다. 교장을 선교사 부위렴(W.F. Bull)
혹은 노아력(A.R. Ross) 등으로 등재한 것은 일본 관청의 간섭과 통제를 피하고자 함이었고 실제 운영과 관리는 지역교회 지도자들이 담당하였다.
1941 일재 말기 선교사 철수 때는 간도에 거주
1964. 10.18 캐나다에서 소천

6. 가족사항:Grace L. Davis(부인)
1) 이름 : Davis, Grace L.(노은혜) 미국 / NP - CP
2) 생몰연도:1888년2월2일-미상
3) 출생: 1888년 2월 2일 미국에서 출생
4) 출신 및 소속: 미국북장로교 - 캐나다장로교(결혼과 동시에)
5) 경력 - 1909년 8월 28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청주에서 활동
- 조선인 가옥호별 전도
- 1916년 함북과 만주 지방에서 선교하던 캐나다장로교 소속 로스(A. R. Ross)
선교사와 결혼하면서 캐나다장로교로 옮겼다.
- 캐나다 장로교 선교회의 로스(A. R. Ross)목사와 결혼하기 전까지 한국 여자들
사이에서 매우 잘 조직된 사역을 전개했다. 한 해에는 그는 직접 작성한
12과정의 성경공부 용지를 2만 장이나 등사하였다.


Ⅱ. 선교사 소개

로스 Ross, A. Russell / 노아력(한국명)/ 鲁亚力/ 캐나다/ CP

1. 내한 선교활동 당시 배경
1876년 8월 8일 캐나다에서 태어난 로스(A. R. Ross, 노아력) 선교사는 1907년 8월 내한하였다. 1898년 한국 선교를 시작한 캐나다장로교 선교사들은 주로 함경도에서 활동하였는데, 로스 선교사 입국 당시에는 푸트(W. R. Foote, 부두일)선교사가 원산스테이션(광석동교회, 보광학교)을, 그리어슨 선교사(R. Grierson, 구례선)는 성진스테이션(성진교회, 보신학교와 제동병원)을, 맥래 선교사(D. M. McRae, 마구례)가 함흥스테이션(함흥읍교회, 영생학교와 제혜병원)을 각각 맡아 관리하고 있었다.

2. 성진에서 북간도 용정으로 사역을 옮기다.
처음 로스 선교사는 1901년 개설된 성진스테이션에 배속되었다. 성진은 1899년 개항한 함경북도의 대표적인 항구로 원산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중요 지점이었다. 로스 선교사는 이곳에서 5년 간 활동하였다. 그런데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한국인들의 북간도 이주가 늘어나자 캐나다 선교부는 1912년 용정(龍井)에 스테이션을 설치하고, 로스를 파송하였다. 로스는 그 때부터 용정을 중심으로 북간도와 회령 지방을 순회하며 사역하였다. 한편 성진과 용정에서 실시되는 캐나다 선교부의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에 병행되는 복음선교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천성이 어질고 인자스러운 것이 그의 유일한 특성이여서 어떤 신고들은 그를 세례 요한의 동생 같다고 까지 평했다. 그의 한국말 실력은 그리어슨 목사 보다는 못하나 말투가 여성적이며 조심성 스러워서 누구나 그와 대화 할 때에는 자연히 호감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의 부인 로스 여사는 성격이 활발하고 마음이 인자하고 사람 대함이 자연스러워서 한국 교인 특히 부인층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3. 로스 선교사 부인 그레이스 데이비스(Grace Davis)의 청주 사역
로스 선교사의 부인 그레이스 데이비스 선교사는 로스선교사 만나기전 북장로교회 선교사로 파송 받아 내한 하였다. 그는 내한하여 청주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편지 보고서 자료의 글을 통해 데이비스는 사랑이 많은 사역자였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마음을 품고 책임감으로 애들을 가르치는 사역자였으며 무엇보다 애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들로 양육하기를 원했다. 모든 사역자가 다 그렇겠지만 그는 누구보다 자신을 희생함으로 애들의 본이 되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습으로 사역을 감당하기를 노력했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애들을 사랑 할 뿐만 아니라 노인도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교사였다. 그는 한 할머니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40km의 산길을 걸었다. 추운 한 겨울에 그는 그 지역에서 2주간의 성경공부도 하였다. 그 지역을 섬기러 갔지만 오히려 그 지역의 성도를 통해 더욱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했다고 표현하였다.

4. 문자로 만난 로스선교사와 그의 부인 그레이스 데이비스의 성품
로스 선교사는 천성이 부드럽고 인자하여 교인들에게 항상 세례 요한의 동생이란 별명을 들으면서 존경을 받았다. 데이비스선교사는 성격이 활발하고 인자한 분이셨다. 사교성이 좋아 친화력으로 주변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분이셨다. 1941년 일제의 압력으로 선교사들이 철수할 때에는 로스 선교사는 간도 용정에 있었다. 캐나다로 돌아가 여생을 지내다가 1964년 10월 18일 별세했다.
두 분의 관한 자료는 남긴 기록이 많지 않지만 두 분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업적뿐만 아닌 삶의 모습과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를 힘쓴 선교사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작성일:2020-07-02 16:47:11 112.219.68.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