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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_3-1반_14_강기현

닉네임
강기현
등록일
2020-07-06 00:36:01
조회수
631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1반_14_강기현.hwp (311296 Byte)
Ⅰ. 기본사항

"이름: Baird, William Martyne, Jr. (한국이름: 裵偉林)"

1. 생몰연도: 1987. 2. 7 – 1980 (90세)
2. 출생지: 서울
3. 출신 및 소속: 미 북장로회 선교사
4. 한국 선교기간: 1923. 9. 4 – 1940. 11월
5. 연표
1897. 2. 7 윌리엄 M. 베어드와 첫 부인 아담스의 아들로 서울에서 출생
1923. 9. 4 미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裵偉林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황해도 재령에서 선교 활동하였다.
1929. 라이스트(Reist Anna L.)와 결혼
1939. 건강문제로 평양에 이주
1940. 11월 기국
1987. 8. 5 별세하여 양화진 라-4자리에 안장
6. 가족사항
부: Baird, William Martyne
모: Baird, Annie Laurie Adams
제: Baird, Richard Hamilton
부인: Reist, Anna L.


"이름: Reist, Anna L."

1926. 9. 3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평양선교회 소속, 기독병원에서 병원사업으로 복음전도
1929 베어드 2세와 결혼, 베어드와 재령에서 선교
1939 베어드 2세의 건강문제로 평양으로 이주
1940 베어드 2세와 귀국


Ⅱ. 선교사 소개(베어드 2세와 라이스트)

1. 출생

베어드 2세 선교사는 윌리엄 M. 베어드와 ‘그의 첫째 아내 아담스의 첫째 아들로, 1897년 2월 7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윌리엄 M. 베어드는 대구 지역 최초의 선교사이자 숭실대학 설립자이다. 이토록 그의 아버지는 잘 알려져있는데, 다른 아들인 리차드 베어드가 ‘아버지의 선교 일대기’를 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에 비하여 베어드 2세에 대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2. 베어드 2세의 내한 전까지

베어드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에 대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가 한국으로 다시 내한했다는 점을 보아, 학창시절이나 장성하여서 고국에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베어드 2세 선교사는 아버지와 동일한 미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하게 되었다. 이는 그가 고국에서 아버지와 동일한 출신의 선교사로 파송받기 위한 과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그는 1923년 9월 4일 아버지와 동일한 미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裵偉林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황해도 재령에서 선교 활동하였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하면, 그의 아버지는 1885년 하노버 대학을 졸업하고,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1888)했으며, 하노버대학에서 철학박사(1903)와 신학박사(1913)학위를 받았다는 점에서, 훌륭한 영향력을 받을 수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는 아버지와 같은 출신으로 파송을 받았기 때문이다.)

3. 결혼

베어드 2세 선교사는 1929년 라이스트(Reist Anna L.)와 결혼하였다. 그의 아내 라이스트 선교사는 19226년 9월 3일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평양선교회에 소속되어 기독병원에서 병원사업을 통한 복음선교를 하였다. 남편의 건강문제를 이유로 1939년 평양으로 이주하였다. 1940년 11월 남편과 함께 고국인 미국에 귀국하였다. 베어드 2세 선교사의 아내에 대한 정보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같은 미국 북장로교로 내한했다는 점에서, 같은 출신이라는 특징이 있다.
4. 평양에 이주, 귀국
베어드 2세 선교사는 1939년에 건강문제로 평양에 이주였다. 이 이주에는 그의 아내도 동행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40년 11월에는 아내와 함께 고국인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5. 마지막 인생

베어드 2세 선교사는 1940년 11월에는 귀국하고 1946년에는 선교사직을 사임하였다. 또한, 그는 1987년 8월 5일날 90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그의 마지막 인생 약 40년 동안은 고국에서 지냈을 것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기록은 없다. 또한 90세의 나이로 별세하기 전까지 건강 문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9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것과, 지금의 양화진 제2묘역에 안장되었다는 사실이다.
양화진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라 기록되어 있다.

(이 글에는 각주가 제거되었습니다. 첨부파일에는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성일:2020-07-06 00:36:01 125.142.18.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