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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_11_Fowler Charles Henry

닉네임
김덕
등록일
2020-07-06 15:19:52
조회수
624
첨부파일
 Fowler Charles Henry_3학년2반_11_김덕.hwp (671232 Byte)
Ⅰ. 기본사항

1. 이름: Fowler, Charles Henry (파울러 / 캐난다 / M)
2. 출생 및 사망연도: 1837.8,14-1908.3.20.
3. 출생지: 캐나다 온타리오주 버퍼드
4. 출신 및 소속: 미국 감리회

5. 연표 “Fowler, Charles Henry.” 김승태, 박혜진 엮음, 『내한 선교사 총람: 1884-1984』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4): 223p.

1837.8.14. 캐나다 온타리오주 버퍼드에서 출생
1841 미국 일리노이주 이주
1859 뉴욕주 리마 소재 웨슬리안대학 졸업
1861 개렛 성서학교 졸업. 신학박사학위 취득. 미감리회 로크리버연회에 가입, 시카고에서 목회활동 시작(11년 시카고에서 목회)
1872 노드웨스턴대학 학장에 취임, 4년간 재임
1876-80 의 편집을 맡음
1880-84 미감리회 선교회 협동총무로 봉직
1884 감독으로 선출되어 미국 각지의 연회 관장 ( 1884-1892년 샌프란시스코연회, 1892-189년 미네아폴리스연회, 1896-1904년 버팔로연회, 1904-1908년 뉴욕연회)
1884.6.24. 내한하여 고종으로부터 교육과 의료사업의 윤허를 얻어냄
1885 아펜젤러에게 목사안수, 일본에서 한국선교회 조직, 감리교회의 한국선교 기초를 다짐
1888. 9. 24 내한하여 한국의 선교상황 시찰
1908. 3. 20 뉴욕에서 사망

6. 가족사항 https://www.beichengjiu.com/biologys/200322.html

아내: Myra Amanda Hitchcock(1842-1918)
직업: 교육가
졸업학교: Genesee Wesleyan Seminary

7. 논저
Fallacies of Colenso Reviewed 1861.
Wines of the Bible, 1978.
Mission and World Movements, 1903.
Missionary addresses on Notable Occasions. 1908.
Patriotic Oratidns, 1910.


Ⅱ. 선교사소개 : 파울러(Fowler, Charles Henry)

파울러(Fowler, Charles Henry)선교사는 일본을 거점으로 한국 선교회를 조직하여 일본에서 한국 선교의 거점을 만든 사람이다.

1. 출생과 학력

파울러는 8월 14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버퍼드에서 출생하였고 1841년 미국 일리노이주로 이주하였다. 1859년 뉴욕주 리마 소재 웨슬리안대학을 졸업한 후 계속하여 1861년 개렛성서학교를 졸업하고 동 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861년 로크리버연회에 입회한 후 11년간 시카고에서 목회하며 교회 및 학교 설립을 위한 모금운동에 \"파울러 선풍\"을 일으켜 4만 달러를 모금하였다. 1872년 노스웨스턴대학 학장에 취임하여 동 대학을 굴지의 대학으로 발전시켜 놓기도 했다. https://kmc.or.kr/dic-search/dictionary?uid=43912&mod=document


2. 활동과 주요사역

1884년 감독으로 선택되어 1884-1892년 샌프란시스코연회, 1892-189년 미네아폴리스연회, 1896-1904년 버팔로연회, 1904-1908년 뉴욕연회 등을 관리하였다. 행정력과 지도력이 남달랐던 파울러 감독은 특히 해외선교를 위해 20세기 약진운동(The Twentieth Century Forward Movement)을 벌여 2천만 달러를 모금한 후 중국에 북경(The pecking University) 및 남경대학(The Nanking University)을 설립하였고 동년 중국의 러시아 레닌그라드에 첫 감리교회로 세인트 페데르스부르그교회를 설립했다. 그 후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 매클레이신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네브래스카 웨슬리안대학 설립도 크게 도왔다. 그는 한국 선교의 문을 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1883년 9월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가는 차안에서 한국 보빙사절단 민영익 일행을 만난 가우처 목사가 같은 해 11월 6일자로 미국 감리교회의 선교본부 파울러 감독에게 2천 달러를 보내면서 한국 선교를 제의하자, 파울러 감독은 즉시 해외선교위원회를 소집하고 한국 선교를 결의한 후 도쿄 매클레이 박사에게 한국 선교답사를 명령하였고, 일본 감리교 선교관리자로 있던 매클레이 박사는 1884년 6월 24일 한국을 방문한 후 고종으로부터 교육과 의료사업의 윤허를 얻어냈던 것이다.
그에 따라 파울러 감독은 1885년 한국의 첫 선교사로 떠나는 아펜젤러와 스크랜턴 박사에게 목사 안수를 주어 한국으로 출발시켰고, 아펜제러 일행이 도쿄에 도착하자 파울러 감독은 그 해 5월 31일자로 한국선교 관리자 매클레이 박사, 부관리자 아펜젤러 목사, 회계 스크랜턴 박사를 임명하여 한국선교회를 조직해 주었다. 그 후 파울러 감독은 1888년 9월 20일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자신이 시작하게 한 한국의 선교상황을 시찰하고 돌아갔다. 감리교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 선교의 문을 여는데 주역으로 활동한 파울러 감독의 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는 1908년 3월 20일 뉴욕에서 별세하여 우드로운 묘지에 안장 되었다.
작성일:2020-07-06 15:19:52 106.243.21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