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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_3-1_51_Mary Clare

닉네임
주를 사랑하는 요한이
등록일
2020-07-06 14:54:52
조회수
654
첨부파일
 (제출) 내한선교사_3-1_51_이요한.hwp (1605632 Byte)
Sr. Mary Clare Whity (1883-1950)
Ⅰ. 기본사항
1. 이름: Mary Clare Whity
2. 생물연도: 1883(아일랜드) ~ 1950.11.6.(중강진)
3. 학력: 영국 버밍엄 대학교 심리학&미술 전공
4. 출신 및 소속: 영국 성공회 성베드로수녀회 수녀
5. 한국선교기간: 1923 ~ 1940, 1947.1.20. ~ 1950.11.6
6. 경력: 1913년 성 베드로 수녀회 입회 입회 전까지 조마가 신부가 관할하는 교회에서 봉사/ 이후엔 런던 킬번의 성 어거스틴 교회에서 봉사

1915년 수녀서약
1923년 한국 입국 및 선교사역 시작 입국하여 한국어를 공부한 후 기도서 번역, 수도회 성무일과와 수도회 규칙 및 행사 책자를 만듬

1925.9.14. 성가수도회 설립 및 초대신모로 취임
1929년 “한국 중부 길가의 들꽃” 발표 마리아클라라수녀의 한국 중부 길가의 들꽃, 한수당연구원


1940년 강제출국
1947.1.20. 재입국 하여 성가수도회 지도수녀로 헌신
1950년 1950년 6.25전쟁당시 북한군에 의하여 납치되어, 1950년 11월 6일 북한 중강진 '죽음의 행진'의 눈 속에서 순교하였다.
북한군에 피납 후 순교
7. 가족사항: 결혼을 하지 않음.

Ⅱ. 선교사 소개
마리아클라라 (Sr. Mary Clare Whity) 수녀
성가수도회 초대신모 마리아클라라수녀는 1883년 아일랜드에서 출생, 1923년 한국에 선교사로 입국하였고, 1950년 6.25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게 납치되어 1950년 11월 6일 중강진 '죽음의 행진'의 눈속에서 순교하였다.  마리아클라라 수녀는 전문교육을 받은 여성으로 특별히 어학과 미술에 재주가 뛰어났으며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불타는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1913년에 성 베드로 수녀회에 입회하고, 1915년에 정기서약을 하였다. 수녀회 입회 전에는 조마가 신부가 관할하는 교회 일을 도왔고, 후에 런던 성어거스틴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마리아클라라 수녀는 조마가 주교가 시무하고 있는 대한성공회에 1923년 입국하여, 한국어 공부를 한 후 기도서 번역하는 일을 하였으며 수도회 성무일과와 회헌과 규칙, 전례 예식서를 만들었다. 또한 교리 공부를 도와줄 한국인 전도부인을 데리고 지방을 순회하며 전도에 힘을 쏟았다.  마리아클라라 수녀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25년 9월 14일 성가영광 축일에 성가수도회 설립을 하는데 대들보 역할을 하고 성가수도회 초대신모로 취임한 것이다. 이 때 첫 번째 한국인 수도자 지원자는 이비비였으며, 조마가 주교는 작은 집 하나를 수도원으로 정하고 축성하였다. 마리아클라라 수녀는 1940년에 대동아 전쟁 중 외국인, 선교사라는 이유로 영국으로 강제 출국을 당했다. 그 후 1947년 1월 20일에 재입국하여 6.25 전쟁 때까지 성가수도회 지도수녀로 헌신였다. 1950년 6.25전쟁당시 북한군에 의하여 납치되어, 1950년 11월 6일 북한 중강진 '죽음의 행진'의 눈 속에서 순교하였다. 
별세 후 함께 포로생활을 하던 천주교 프랑스 가르멜수녀회 수도자들이 마리아클라라수녀의 십자가와 종신서약 반지를 성베드로수녀회에 전달했다. 1969년 영국 성베드로수녀회의 베릴수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마리아클라라 수녀의 십자가를 성가수도회에 기증했다. 
작성일:2020-07-06 14:54:52 49.167.6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