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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10 / Armstrong, A. Lenora(CP)

닉네임
이승훈
등록일
2020-07-06 19:23:48
조회수
604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1_10_이승훈.hwp (2831872 Byte)
1.기본사항

Ann L. Armstrong 선교사는 1884년 5월 14일 캐나나 온타리오 주 킨토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캐나다 장로교 여성해외선교위원회의 파송을 받아 1924년부터 1941년까지(18년간) 만주 용정 제창병원(St. Andrew Hospital)에서 수간호사로 사역한 여성 선교사 이다. 그 이후 그녀는 자신이 테어난 킨토레에서 1983년 12월 15일에 소천했다.


2.선교사 소개

캐나다 출신인 그녀는 캐나다 장로교 소속 선교사인데, 보다 엄밀히 말하면 캐나다연합교회(The United Church of Canada) 소속이다. 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캐나다 선교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한국을 향한 캐나다 선교역사는 크게 4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유영식 박사는 캐나다 선교역사를 다음과 설명한다.

1단계 : 독립 선교기간 (1888-1893)
2단계 : 준독립 선교기간 (1893-1895)
3단계 : 캐나다 장로교회 주도 (1898-1925)
4단계 : 캐나다 연합교회 주도 (1925-1927)
일본에 있는 캐나다 장로교회 주도 (1927이후)

이 중 4단계에서 캐나다 내에서 연합교회가 세워졌는데, Armstrong는 이 시기에 파송된 선교사이다. 연합교회의 성격은 영국과 미국의 영향에 균형을 이루어 캐나다 주의를 추구했다. 이런 방향에 민감하게 반응한 장로교, 감리교, 회중교회가 연합하여 연합 교회가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된 역사는 캐나다 연합교회 공식 홈페이지(https://www.united-church.ca) 에서도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1925 On June 10, in the Mutual St. Arena in Toronto, The United Church of Canada is formed by a union of Presbyterian, Methodist, Congregational, and the General Council of the Local Union Churches.”

이 연합교회의 신학 색체는 자유주의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변화는 캐나다 선교사역의 방향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연합으로 말미암아 전통적인 신학 사상에서 자유로워진 캐나다 연합교회 선교회는 한국에서의 선교 활동에도 복음 전파에 주력했던 이전의 정책에서 사회 활동으로 전환하는 변화를 꾀하였다.

첫 째는 캐나다 선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시작한 농업선교 이며, 두 번째는 새로운 학교를 세우는 일과 이미 세워진 학교의 시설을 개선시키는 일이었다. 세 번째는 의료 선교사의 수를 대폭 증가 시킨 것이다. 바로 이러한 배경 속 에서 1925년 암스트롱 간호사는 의료 선교사의 한 사람으로 파송 받게 되었다. 이러한 캐나다 연합교회의 의료선교의 활동을 통해 많은 의사들과 선교사들의 파송되었고, 의료 선교의 새로운 바람과 의료 봉사의 질 높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캐나다 연합선교회는 한국 신학생들에게 자유주의 신학사조를 가르치는 일까지 하게 되는데, 이 과정 속에서 보수 신학에 서 있던 한국에 자유주의 신학을 유입되었다. 안타깝게도 먼 훗날 이는 한국교회의 분열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이처럼 그녀는 캐나다 장로교 소속의 선교사라고 하기 보다는 캐나다 연합교회 파송 선교사라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속한 기관이 자유주의 신학을 가졌다고 해서 그녀의 사역이 결코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의료선교는 특성상 신학적인 내용을 담기 보다는 선교대상국의 어려운 현실을 도와주는 사역이기에 그녀의 헌신은 다른 많은 의료선교사들과 같이 생명을 살리는 귀한 섬김이었다. 그녀를 통해 고통 받는 환자들을 위로를 얻었고, 그들의 영혼이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특히 캐나다 선교사들은 다른 선교부 선교사들과는 달리 침략 세력인 일제에 대해 비판적이고 한국인에 대해서 대단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병원장이었던 마틴은 3.1 운동을 전후 하여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보호해주고 치료해주었으며, 1920년 10월 일본군의 간도 침공 때는 일제의 학살 만행을 조사하여 폭로하고 항의하는 대담성도 보였다.

그런데 일제의 압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1930년 이후 캐나다 장로교 선교의료는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일제의 간섭과 견제에 따른 선교부 내부의 갈등이 더욱 심해지고 선교 환경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1915년 간도 용정에 설립된 캐나다 장로회 소속의 기독교 병원 제창병원은 1940년 병원장 마틴의사가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면서 해체되었다.

이렇게 그녀가 수간호사로 근무한 제창병원이 해체되면서 그녀의 사역은 마무리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녀의 사역기간을 1941년까지로 기록하는 것을 볼 때, 그녀는 제창병원이 해체되고 본국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조금 더 오늘날 만주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녀는 큰 고민과 갈등 속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병원은 사라졌고, 선교기구는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밖으로는 일제의 압력이 있었기에 계속 선교 사역을 이어가야하는 일에 있어 끝없는 고민을 하다 본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녀는 40살에 선교사역을 시작하여 57살에 사역을 마무리 했기에 남은 삶의 여정에 있어서도 긴 고민을 하다 본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렇게 그녀는 어느 소속에 속하여 사역을 진행했는지, 어떠한 환경 속에서 사역을 마무리하게 되었는지 추적할 수 있었다. 선교지에 오기 전,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간 뒤의 생애에 대해 확인 할 수 있는 자료를 찾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단행본, 논문, 해외자료들 가운데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 아쉬운 점은 그녀가 속해있던 “캐나다 연합교회의 기록 보관소 폐쇄”였다.

*캐나다 연합교회 기록 보관소 : https://www.unitedchurcharchives.ca

아래와 같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접근을 막아놓아 자료를 찾아보지 못하게 해놓았다.

“보관소 폐쇄 업데이트:UCC문서 보관소와 캐나다 연합 교회는 방문객과 직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COVID-19의 급변하는 상황으로 인해, 우리는 추후 통보가 있을 때까지 3월 16일부터 기록 보관소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카이브 담당자는 이메일(archives/@united-church.ca)이나 전화(416-231-7680 x1101)의 요청에 따라 원격으로 대중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아카이브 담당자는 물리적 레코드에 액세스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불확실한 시기에 귀하의 인내심과 이해에 감사드립니다.COVID-19에 대한 캐나다 연합 교회의 성명서를 여기에서 보십시오:
https://www.united-church.ca/news/covid-19-united-church-statement“

해당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지나 자료실이 재 오픈 된다면 자료를 검색해볼 충분한 필요성을 보인다.
작성일:2020-07-06 19:23:48 221.139.9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