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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_3_Hurston, John Wesley (1922-2007)

닉네임
양시온
등록일
2020-07-06 19:37:31
조회수
746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학년3반_66_양시온.hwp (3268096 Byte)
존 웨슬리 허스튼 교사 / Hurston, John Wesley (1922-2007)

I. 기본사항

Hurston, John Wesley (허스튼 / 허요한 / 미국 AG-Assemblies of God_하나님의 성회)

1. 이름: Hurston, John Wesley / 허스튼 / 한국명: 허요한
2. 생몰연도: 1922년 07월 29일 ~ 2007년 07월 25일
3. 출신 및 소속: 미국, 하나님의 성회(AG-Assemblies of God) 소속
4. 한국선교기간: 1958년~1969년, 1976~1981년.
5. 연표1922.07.29. 미국 조지아 주에서 출생함1939 콜롬버스의 요르단 직업 고등학교 졸업1943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 중앙성서대학(Central Bible College)을 졸업함 맥신 포스튼(Maxine Poston)을 만남1946.10.24. 펜사콜라의 (신의회)첫번째 총회에서 맥신 포스튼과 결혼함.1994 미국 하나님의 성회에서 목사안수 후 목회 사역함1948 서 아프리카의 리베리아 선교사로 임명되어, 리베리아에서 10년간 사역함1956 William V.S. Tubman 대통령에게서 리베리아의 전국적인 부흥운동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수여받음1958 2년간 부흥사로 세계를 여행하며 집회를 인도함1958 한국선교사로 임명되어 내한(한국에 들어옴), 조용기 목사와 협력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개척 함.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목회, 목회하며 전국에서 전도 집회 사역함1961년 04월 13일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The Assemblies of God of Korea) 8대 총회 장 봉직1969 베트남선교사로 베트남 사이공에서 5년 동안 사역함.1976 사우스 이스턴 대학 Assemblies of God(하나님의 성회) 교단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 위를 수여받음1977 한국선교사로 재 내한, 순복음중앙교회 내의 국제교회 성장연구원 부원장으로 봉직1979~1981 순복음 신학교 교장으로 봉직1981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명예목사로 임명됨. 미국으로 귀국1981 켈리포니아 주립대학 신학대학원에서 ‘Dr. Doctor of Letters’학위를 받음2007년 07월 25일, 미국 베이 뷰 기념공원에 안치
6. 가족사항아내: Wanna Maxine Hurston.큰딸: Karen Hurston.작은 딸 : Ann Hurston Collins.형제: Daniel Hurston.자매: Leta Hurston Chitwood; Aimee Hurston Loats.
조카: Daniel Collins; Billy Loats
조카의 딸: Carolyn Collins Grice; Becky Loats Meadows; Rachel Chitwood Tyree.


II. 선교사 소개: Hurston, John Wesley (1922-2007) http://www.authorstream.com/Presentation/karenhurston-449926-john-hurston-s-life/ 시기와 날짜등의 기준은 허스튼 선교사의 큰딸, 카렌 허스튼이 정리한 자신의 아버지를 추모하는 행사에 사용된 ppt자료를 기초로 하였다.


1. 허스튼 선교사가 한국으로 오기까지.
허스튼선교사는 조용기목사와 함께 사역함으로 6.25전쟁 이후, 한국교회가운데 매우 큰 부흥을 견인한 선교사입니다. 처음부터 한국 선교사로서 파송받아 온 것은 아닙니다. 첫 선교는 아프리카의 정글, 정글의 ‘라이베리아(Liberia)'였습니다. 1948년부터 1951년까지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3년동안 여행하였고,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아프리카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였습니다. 1953년 첫째 장녀 카렌이 태어났고, 카렌이 태어난 6개월 후 그리고 화물선을 타고 선교지 라이베리아로 다시 향했습니다.
1954년부터 1958년까지 라이베리아의 몬로비아에 있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사역을 했습니다. 동시에 1956년 라이베리아의 부흥을 선포하고 3개월동안 라이베리아에서 부흥회를 했습니다. 당시, 아픈 사람들이 많아서 아픈 병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었고, 특히나 청각장애인이 있었는데, 그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기도를 해주었을 때, 치유가 되는 역사가 있어났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라이베리아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 이후에도 아픈자들을 위해서 큰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또한 라이베리아 6개의 도시에서 부흥회를 하며 사역하였고, 라이베리아의 부흥의 공로를 인정받아, 라이베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받았습니다.
1957년 후속 사역회의와 부흥회를 개최했으며, 그 후에도 라이베리아에 지속적으로 복음을 나누며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며 라이베리아의 교회를 성장시켜 나갔습니다.

2. 한국으로 온 허스튼 선교사, 조용기와 동역하며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되기까지 협력.
허스튼선교사에게는 랄프 버드(Ralph Byrd)라고 하는 멘토가 있었습니다. 1958년 멘토였던 랄프버드와 그의 아내, 그리고 허스튼 선교사 부부는 전쟁이 일어난 한국을 방문하고, 페허가 되어, 판자집과 같은 곳에서 가난하고 빈곤한 삶을 사는 한국인들을 보았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한국의 6개의 주요 도시에서 텐트를 치고, 한국인들을 위하여 이들의 치유와 구원을 기도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치유되었고,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때부터 젊었던 당시의 성경학교 학생이였던 ‘조용기(현 목사)’와 동역하게 됩니다.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천막교회에서 함께 조용기와 봉사하였는데, 매우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 더 이상 천막으로는 늘어난 규모를 감당 할 수 없었기에 교회건축을 결정하였고, 1961년 10월 15일 봉헌식을 올리고, 조용기와 동역합니다. 동역하던 기간중에 1962년 4월에 조용기는 ‘West Gate Sodaemoon Full Gospel Church(서대문 서문순복음교회)’의 목사가 됩니다. 그 후, 허스튼선교사는 고문으로서 젊은 조용기목사와 동역하며 지원을 합니다. 조용기목사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라디오프로그램을 하기도 하고, 부흥회를 계속 열었으며 교회 개척을 도우며 동역했습니다. 교회가 계속 성장하여 지금 있는 서대문 서문순복음교회에도 인원을 다 수용 할 수 없었습니다. 1969년 서울의 여의도섬에 교회를 건축하기로 하고 착공을 함께 합니다. 한국에서는 1969년까지 조용기목사와 함께 동역하다가 1969년 베트남으로 선교를 위해 한국을 떠납니다.

3. 베트남으로 향한 선교사. 허스튼
한국을 떠나고 휴가 중인 1970년 인도네시아에서 부흥회를 하며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역한 후, 전쟁으로 황폐해진 베트남으로 향하였습니다. 베트남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베트남에서는 마약중독자 문제가 심각하였는데, 베트남 정부와 관계가 열렸고, 베트남 대통령의 부인이 서명을 함으로서, 베트남 사이공에 마약재활센터를 설립합니다. 마약재활센터를 통해 마약중독자들과 접촉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약중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회복시키기 위한 사역을 하며, 1975년 전쟁으로 인해 떠나기 전까지, 성서학교를 세워 제자들을 훈련시키며, 교회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75년 전쟁으로 인하여 베트남을 떠납니다.

4. 다시 한국으로, 교회성장교육 사역
조용기목사는 CGI(Church Growth International) 설립을 도와달라고 허스튼선교사를 초청하였고, 그 초청에 응하여 한국으로 내한합니다. 그리고 조용기 목사와 함께 1976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으로 돌아와 CGI(Church Growth International, 교회성장교육) 사역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1976년 Southeastern College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들을 위한 교회성장교육 세미나(CGI)사역을 태국, 유럽, 미국의 시카고에서 하고, 프랑스와 중국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1980년 08월 11~23일)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뿐만 아니라 아시아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을 위한 세미나(1981년 4월 21일 ~ 5월 1일)도 열며, 총 100회가 넘는 CGI사역을 통해, 교회성장원리를 가르칩니다.
또한 조용기목사와 함께 선교대회 사역도 하였습니다.

5.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명예목사, 러시아 신학대학원장 허스튼
1981년, 허스튼 선교사의 생일파티에서, 조용기목사로부터 평생 명예목사직을 받습니다. 1982년 폴크라우치(Paul Crouch, 1982)에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신학 대학원장을 역임합니다. 추후, 1998년 여의도순복음교회 40주년을 맞이하여 요의도순복음교회에 초청을 받았고, 조용기목사와 다시 함께 설교한 이후, 교회성장 공로패를 수여 받습니다.
작성일:2020-07-06 19:37:31 121.143.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