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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43/ Smith, Robert Lee (1925 -, SP)

닉네임
이주호
등록일
2020-07-06 20:44:13
조회수
590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학년3반_43_이주호.hwp (391680 Byte)
I. 기본사항
1) 이름 : Smith, Robert Lee (한국명 : 심득인)
2) 출신 및 소속 : 미국 아칸소주 포디스 출생 / 미국 남장로교 기독교대백과사전 9권에서는 심득인(Smith, Robert Lee)의 소속을 북장로교 선교사로 소개하지만 PCUS 교단 소속인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신학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보아 남장로교 소속으로 봐야한다.

3) 생몰연도 : 1925 - ?
4) 한국 선교기간 : 1954 –1960/ 1961-1971 구글 검색창에서 검색중 http://koreanchristianity.cdh.ucla.edu/biographies/missionaries/에서
“Smith, Robert Lee (1925-): SP/Chunju/1954-60”라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근거로 1954-60은 전주에서 1961-1971은 목포에서 교육선교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

5) 한국 활동지역 : 전주/ 목포
6) 학력 :
- 아칸소대학교에서 수학
- 일리노이주 휘튼대학에서 학사학위
- 콜럼비아신학교에서 신학사 학위(1952)
7) 경력 :
- 1954.11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전주 신흥학교에서 영어 및 영어성경 강의

II. 선교사 소개
1) 선교사로 방한 전까지
Smith, Robert Lee(심득인)는 고향(아칸소주 포디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칸소대학교에서 수학하다가 미 공군으로 입대, 3년 동안 복무하였으며 이후 일리노이주 휘튼시에 소재한 휘튼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고, 1952년 콜럼비아 신학교에서 신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장로교 산하 테네시주 차타노가 교회 등지에서 2년 동안 봉직하였다.
Smith, Robert Lee(심득인)는 군인의 신분으로 2차 세계대전을 겪어가며 선교에 대한 마음이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들을 보냈다.

2) 내한과 전주 신흥학교 재직
그는 1954년 11월 한국선교사로 내한한다. 그리고 전주 신흥학교에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영어 및 영어성경을 가르쳤다. 이 신흥학교는 1937년 일제 신사 참배를 거부하며 스스로 문을 닫았다가 광복이후 1946년 복교하였다. 전주 신흥학교는 전주 지역의 복음화의 전초기지였다. 전주 서문교회와 전주 예수병원 등과 인접해 있으면서 인재를 양성하는 최적화 장소였다. 신흥학교는 한국 전쟁 중에서도 졸업생을 배출하며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신흥 복교 제 6주년 학보』
심득인은 한국 전쟁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 땅에 들어와 교사의 일을 감당하며 많은 기독교 인재를 양성하는 일을 하며, 전주에서 대략 5년의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3) 목포에서의 교육 선교
목포에서의 Smith, Robert Lee(심득인) 선교사의 행적은 어떠한 자료에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어떠한 이유로 전주에서 목포로 이동했는지 중간에 잠깐 미국을 다녀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목포에서의 약 10여년의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Smith, Robert Lee(심득인) 선교사에 대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지만, 그가 속한 남장로교 선교부에 대한 기록들을 통해 대략적인 추측을 해 볼 수 있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전주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펴기 시작하였으며 목포, 광주, 군산, 순천으로 확대하여 맨 처음 교회를 세웠고, 다음은 병원을 세웠으며, 그리고 학교를 설립함으로 선교활동을 진행해 갔다. 강경구, 「종합일간 KOREA TODAY NEWS 칼럼」-미국 남장로교 ‘교회, 학교, 병원 설립’ 선교 3대 원칙 적용(2017.11.23.), http://www.todaynews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9094
한반도 전역에 기독교학교가 세워지는데 그중 남장로교 선교부가 일한 호남 지방의 경우 전주에는 신흥학교(1900) 기전여학교(1902)가, 광주에는 숭일학교(1907), 수피아여학교(1908)가, 목포에서는 정명여학교(1902) 영흥학교(1903)가, 순천에는 매산학교(1913)가 각각 설립됐다. 이상규(고신대 역사신학교수), 국민일보 미션라이프(이상규의 새롭게 읽는 한국교회사(18), 2011.06.30.),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5112162&code=23111612&sid1=mis
전주 신흥학교에서 영어와 영어성경을 가르치던 Smith, Robert Lee(심득인)는 남장로교 선교부의 요청에 따라 목포에 있는 정명여학교나 영흥학교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Smith, Robert Lee(심득인)와 같이 평교사로 역할을 담당한 선교사들이 더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들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교장을 역임한 선교사들의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다. Smith, Robert Lee(심득인)은 목포로 와서 1912년 미국 남장로교의 선교사 사택으로 건립된 현(現) 목포 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국가등록문화재 제 62호)에서 생활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심득인은 목포에서 약 10여년의 시간동안 계속해서 영어와 영어성경을 가르쳤는데 이후에 미국으로 귀국했는지 아니면 한국에서 순교했는지 이에 대한 기록도 찾을 수 없었다. 또한 결혼 유무조차도 찾을 길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http://www.100thcouncil.com/html/sub2_3.html 이 사이트에서 양화진에 안장된 외국인선교사 명단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고, 전주나 목포지역에서도 그의 묘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미국으로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서의 많은 믿음의 선배들처럼 그도 빛도 없이 이름 없이 그렇게 내한하여 15년가량을 대한민국에서 주님이 맡기신 교육선교를 충성되게 감당하였다.
작성일:2020-07-06 20:44:13 182.226.143.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