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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149 / Weiss. Ernest W. / Weiss. Hilda
 작성자 : 최성휘  2019-12-11 17:26:49   조회: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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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Weiss, Ernest W. / 웨이스 또는 와이스 / 한국명: 위은남
2. 생몰연도: 1908.10.25. - 1984
3. 출신 및 소속: 미국, 미국연합감리회
4. 한국선교기간: 1954년 4월 – 1975년 8월
5. 연표
1908.10.25. 미국 오하이오주 텍사스 프리츠 와이스와 일리스 와이스 부부의 일곱 자녀 중 막내로 출생
1937. 오하이오 주에 있는 볼드윈 왈리스 대학과 신시내티 의과대학 졸업 후 의사가 됨
1937-1938. 인디애나폴리스 감리교 병원에서 인턴, 신시내티 베데스다 병원에서 외과 레지던트로 일함
1938. 미국의료감정위원회 전문의
1938. 힐다 세이터 와이스와 결혼
1938. 중국에 감리교 파견 의료 선교사로 파견
1939-1943. 1차 중국 선교
1943-1946. 신시내티 종합병원 및 디트로이트 헨리포드 병원에서 외과 레지던트로 일함
1946. 미국외과학회 정회원
1946-1951. 2차 중국 선교로 중국의 난창 종합병원 외과 과장 및 국립중정대학 외과 교수로 일함
1951-1954 신시내티 의과대학 외과 연구원
1954.04. 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로 부임
1955. 세브란스병원 건축위원장
1962.06.05. 병원 준공식
1975. 뇌출혈로 쓰러져 텍사스 샌안토니오로 돌아감
1975.11.04.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음
1984. 향년 76세로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사망

6. 가족사항
부인: Weiss, Hilda(1915-2013)
자녀: 베티, 베아트리체 앤


Ⅱ. 선교사 소개: 와이스
1. 한국에 온 의료 선교사
1904년부터 1957년까지 세브란스병원은 많은 사람들의 기부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이다. 세브란스는 미국의 선교단체에서 파송 된 선교사들, 미군 등 주로 미국의 지원으로 이루어 졌다. 이처럼 이 시기에 많은 선교사들이 세브란스에 머물며 헌신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와이스 선교사이다.
그는 1908년 10월 25일 텍사스의 가난한 농가에서 일곱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감리교 목사였으며, 친척들도 목사가 많았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농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다가 의료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고등학교에 복학했다. 이후 신시네티 의대를 졸업하고 1937년에 의사가 되었다.
인디애나폴리스감리교 병원에서 인턴을 하고, 신시네티 베데스타 병원에서 외과 수련을 받았다. 이후 1939년에서 1943년까지 중국에서 선교사로 일했다. 그 후 다시 귀국하여 1946년까 지 외과 수련을 더 받고 1946년부터 1951년까지 중국의 난창 종합병원에서 일했다. 중국의 공산화로 임지를 한국으로 옮긴 와이스 박사는 1954년에서 1975년까지 세브란스 병원의 외과교수로 봉직하며 병원의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와이스 박사의 공헌은 건축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신촌에 병원과 대학을 건축한 일이다.
1954년에 세브란스에 외과교수로 부임한 와이스 교수는 재한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치료를 담당하면서 건축위원장의 중책을 맡았다. 당시는 세브란스와 연희의 합동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합동을 조건으로 미8군에서 신촌 캠퍼스에 흉곽병원을 지어줄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합동 이후 서울역 앞의 캠퍼스를 신촌으로 이전하기 위해 신촌에 의과대학과 병원을 세우는 대대적인 건축 사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렇지만 자체적인 자금이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모든 건축 사업은 외부의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2. 당시의 한국 상황과 와이스 박사와 미국의 도움
재미 의사로서 세브란스 의대 출신인 허정은 “미8군, 해외 종교 단체 지원, 국내외 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 관심 있는 동창들과 이름 없는 개개인 미국 기독교인들의 기독 박애 정신의 산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 건립되었다.”고 말한다. 또 와이스 선교사는 병원 건립 헌금을 얻기 위해 미국에만 1,500통 가량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소식지는 선교 사역을 지원하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발송되었다. 모든 작업은 직접 손으로 이루어졌고 등사기를 이용하여 소식지를 복사했다. 미국인의 약 삼분의 일이 3~4년마다 이사를 하기에 그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1959년 2월 15일 와이스가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은 편지의 일부내용이다.
“미 제8군이 능력껏 도울 만큼 돕고 있습니다. 참모장 테일러 장군이 최근 우리를 방문하여 이 사업을 위하여 무엇을 더 해주어야 할지 알고 싶어 하고 지속적이 관심을 표해주었습니다. 현지 세브란스 한국인 직원, 동창과 후원인들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꼭 필요한 외래 시설을 위하여 20만 달러를 모으려고 애타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전역을 둘러볼 때 수천 명의 전쟁고아를 보게 되고, 여러분들이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고 병을 치료하게 하는 데 도움을 베풀어주신 것을 알고 있으며, 이런 일은 쉽지 않은일인 것과 그들이 항상 미국인 여러분들을 친구로 여길 것을 알려드립니다.”
이런 호소에 미국의 많은 교인과 교회들이 적극 참여하여, 550만 달러의 경비가 들어가는 건 축 기금에 큰 보탬을 주었고, 전쟁고아들을 위해 구호물자도 보내주었다.
또 세브란스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선교 헌금이 미국에서 펼쳐졌는데 텍사스주 갤버스턴에 소재한 제일장로교회의 벽면에도 세브란스병원 건축에 참여하였다는 명패가 2004년 태풍으로 교회가 피해를 입기 전까지 붙어 있었다.

이처럼 1950년부터 1953년까지는 6.25 전쟁으로 인해 연대 초부터 전쟁의 격랑과 시련을 겪게 되는 시기였고, 3년간의 기나긴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황폐화되었고 경제상황도 초토화된 상황이었다.
이런 형편에 있는 가운데 와이스 선교사가 입국하여 전쟁으로 인해 다친 자들을 치료해 주었고, 또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한국을 위해 후원 모금을 하면서 세브란스 병원의 건립에 많은 공헌을 했다.

3. 와이스 박사의 구체적인 활동들
와이스 박사는 학생들에게 외과를 가르치는 것과 동시에 외과의사로서 많은 수술을 했다. 그 가운데서도 언청이 수술을 많이 했다고 한다. 또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위한 수술들도 했다고 한다. 와이스 박사를 지원하는 친척과 친구 등 후원자들 약 1,500명에게 자신들의 활동 내용을 담은 소식지를 발송했고, 일 년에 네 번 소식지를 만들고 이를 1,500명이나 되는 후원자들에게 발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와 동시에 병원 건축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먼저는 환율의 문제였다. 건축공사가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지원되는 돈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동일한 돈을 받았다 하더라도 환율에 따라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이 달랐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국내는 정치와 경제적인 상황이 여러 가지로 불안정하였고, 또 정치적인 이유로 환율이 인위적으로 고정되기도 했다. 실제로 이러한 환율 정책에 따라 미국 돈 1달러가 이전보다 절반의 가치로 평가되는 일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세브란스 병원의 신축공사는 약3년 동안 거의 중단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62년 6월 5일 병원 준공식이 열렸고 와이스 박사는 7년에 걸친 건축경과를 보고했다.
와이스 부부는 연표에서도 살펴보았지만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는데, 중국이 공산화되어 중국을 떠난 후에도 중국인 교회에 나가기도 하였고, 한국에 있는 중국인 사회와도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또 중국인 교회를 도왔을 뿐 아니라, 중국인 교회에서 시무할 목사를 구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당시 한국의 중국인 교회는 한국 교회와 불편한 관계에 있어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 이유는 미국 전국교회협의회는 한국에 있는 중국인 교회가 다른 교회와 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중국인 교회가 미국 전국교회협의회에 가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는데 미국으로부터 지원받는 돈을 중국인 교회에 나누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감리교 선교회가 한국교회와 중국인 교회 사이에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Ⅰ. 기본사항
1. 이름: Weiss, Hilda / 힐다
2. 생몰연도: 1915.05.10. -
3. 출신 및 소속: 미국, 미국연합감리회
4. 한국선교기간: 1954년 4월 – 1975년 8월
5. 연표
1915.05.10 미국 오하이오주 텍사스에서 해리 세이터와 노마 세이터 부부의 딸로 출생
1933-1936 간호사 자격 취득,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베데스다병원 간호학교
1936-1939 베데스다병원 간호사
1938.05 와이스 박사와 결혼
1939 신시내티 대학 이학 학사
1939-1951 중국의 베이징, 난창, 상하이 등지에서 일함
1955-1975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임상병리실 및 연구실에서 일하며 학생들을 가르침
1930-1961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 버틀러대학 대학원 과정 수학
1961 임상병리사 자격증 취득(미국 임상병리사협회)
1975 텍사스로 돌아감
1975-1988 텍사스 주 산 안오토니오 모닝사이드 매너에서 간호 자원봉사]

6. 가족사항
남편: Weiss, Ernest(1908-1984)
자녀: 베티, 베아트리체 앤

Ⅱ. 선교사 소개: 힐다
힐다와 어니스트, 두 딸은 콜럼버스 기념일인 10월12일 인천항에 도착했다. 힐다의 주요 과제는 어학공부였다. 그는 1년 넘게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세브란스 병 원 임상병리실에서 일을 했으며 한국 간호사들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감리교 구호위원회에 참여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힐다는 의대생들에게 의학 영어를 가르쳤고 한국에 있는 미국인 환자를 위해 개인 간호를 하 기도 했다. 그리고 선교 중간에는 입양고아를 데리고 미국에 가 달라는 제의를 받고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1963년에는 서울외국인학교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1965년에는 세브란스병원 임상병리실에서는 매일 약700개의 다양한 검사를 했고 그 당시 힐다는 세균학 책임자였으며 강의도 하고 있었다. 또 서울의 빈민가에 잇는 천막 교회인 금독 교회에서도 일들을 도왔다. 1975년 8월6일에 그의 집에서 송별예배를 드리고 공항으로 나와서도 예배를 드렸다. 그 때 그의 남편 어니스트는 여객기용 들것에 누워있었으며 그렇게 그들의 한국 선교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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