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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Crane, Paul Shields(1919-2005, SP) / Crane, Sophie E. Montgomery

닉네임
남세웅
등록일
2017-06-30 11:19:29
조회수
2396
첨부파일
 기말보고서_M0206_2017222067_남세웅.hwp (1651712 Byte)
I. 기본사항

1. 이름 : Crane, Paul Shields / 크레인 / 한글: 구바울
2. 생몰연도 : 1919 ~ 2005.6.13
3. 출신 및 소속 : 미국, 미남장로회
4. 한국선교기간 : 1948 - 1970
5. 연표
1919 미국 미시시피주에서 출생
1935 애쉬랜드고등학교 졸업
1937 데비슨대학 화학 학사학위
1941 존홉킨스 의과대학 의학 박사학위
1942 Sophie Earle Montgomery 와 결혼
1947 남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내한
1948 어학, 의료사역 내과의사 전주예수병원 원장
1949 선교사 건강관리
1948 – 1968 전주예수병원 의료센타장
1956 지역전도사역
1959 국민훈장수여함
1969 – 1970 순천 애양원병원장
1970,7 선교사 은퇴
2005.6.13. 향년 86세로 미국 노스캐롤나이나주 자택에서 지병으로 사망

6. 가족사항
Crane, John Curtis(부)
Crane, Florence(모)
Crane, Sophie E.(부인)


II. 선교사 소개

한사람의 헌신으로 얼마나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는지를 세삼 깨닫게 된다. 특히 헌신된 가문을 통해서 이 땅에 심겨진 복음이 엄청난 결실을 맺고 있다는 것 또한 생각하게 되었다.
2대를 이은 9인 선교사 가문 크레인 가문에서 태어난 폴 쉴즈 크레인은 그 가문의 믿음의 유산을 잘 물려 받았다. 아마도 남장로교 한국선교회의 복음전도와 교회 설립, 의료와 교육, 출판, 연구 분야에서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긴 가문으로 크레인 가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인 존 C. 크레인 목사는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신학자로서 1913년 한국 선교사로 임명, 파송되었고 곧 순천선교부에 주재하며 1956년까지 활동을 하였다. 존의 부인 플로렌스(Florence Hedleston Crene)는 미술 예능 교사로 “한국의 꽃과 민간전승” 이란 책을 저술하여 한국학 연구에 도움을 주었다. 존의 누님 자네트(Janet Crane) 선교사는 전주기전학교 음악교사로 20년간 봉직했다. 존의 남동생 폴(Paul Sackett Crane)목사는 1916년 내한하여 목포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1919년 교통사고로 순직하였다.
존 C, (Elizabeth Letitia)과 아들(John Curtis Crane Jr)은 순천에서 출생하여 두 살과 한 살의 어린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들의 묘는 순천에서 1979년 4월 광주(호남)선교사 묘지로 이장되었다. http://yanghwajin.co.kr 한국 최초 수련의 제도 도입한 크레인 가문 (신호철 장로-양화진선교회장)


순천매산학교의 설립 책임을 맡아 곧 개교하였으나 일제측의 성경과목 교수금지 조항 때문에 다시 학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일제측에 선교의 목적과 교육방침 등을 피력, 총독부에 건의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그러나 크레인 선교사는 우선 방치된 젊은이들의 교육에 중요성을 두고 다시 학교인가를 받아 재개교하였다.

1937년 평양 장로회 신학교 조직 신학교수로 청빙되어 학생들을 지도하는 한편, 성서공회의 성서번역위원으로도 활약하였다. 1938년 본국으로 돌아가 미시시피주에 있는 파스카골라 장로교회에서 목회하였다. 해방 후인 1946년 제1진으로 내한, 순천에 주재하면서 문서활동을 중심으로 선교사업을 재개하였다. 신학교 교재인 《조직신학》3권을 썼고 서울에 설립된 총회신학교 교수로 강의하였다. 1956년 모든 선교사직에서 은퇴하고 귀국, 신학저작집필로 여생을 보냈다.

존 크레인은 한국에서 57년 간 사역한 크레인 선교사 가문의 시조일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전도자·교육자·신학자로서 선교 유산을 우리에게 남겼다. 무엇보다도 전도자로서, 크레인은 1913년에 순천에 배치된 이후, 주로 순천의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 개척 및 순회 선교활동에 매진했다.

크레인의 유산은 한 사람의 역할로 제한되지 않는다. 교육자, 화가, 식물학자로서의 유산을 남긴 아내, 전도자로 짧지만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긴 남동생 부부, 평생 여성 교육에 헌신한 누나, 전도자로 순천에서 오래 활약한 막내딸과 사위, 의사와 간호사, 저술가로 두드러진 업적을 남긴 아들 내외 폴 크레인까지, 이들은 모두 두 세대 57년에 걸친 사역을 통해 크레인 가문의 유산을 한국, 특히 호남 지역에 눈에 띄게 남겼다.

폴 S. 크레인은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의료선교사로서 1970년에 은퇴할 때까지 아버지의 유산을 잘이었다.
폴 S. 크레인의 일생을 들여다보자면 부모님이 안식년 휴가로 미국에 머물 때 1919년 5월 2일 출생했다. 어린 시절을 순천과 평양에서 보내다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데이빗슨대학과 존스홉킨스대 의대를 졸업했다.애틀랜타에서 1942년 6월 2일 소피 몽고매리(Sophie Montgomery)와 결혼했다. 평양외국인학교 시절 동창이었던 중국 선교사의 딸이자 존스홉킨스 간호대 출신인 소피 몽고메리와 결혼한 후, 1947년 8월에 세계선교대회에서 정식으로 선교사 임명되어 한국에 왔다.

한국 출발에 앞서 세계선교부가 배정해준 미화 8천$로 미 육군 잉여자산(2차 세계대전 종료로 발생)을 불하 받은 30배 이상 25만$ 상당 규모의 의료장비와 소모물품을 구입하고 선적했다. 그리고 1947년 10월 30일 군용선 “메이요(Mayo)”편으로 내한했다.
이듬해 전쟁 중 폐쇄되었던 전주 예수병원을 1948년 4월 1일에 다시 열어 일본 의사들이 떠난 공백기에 환자를 돌보고, 이때 자신은 병원장으로 부인은 임상 검사실에서 일하였다. 이후 1950년에 간호학교를 세워 근대 간호교육 과정 운영하였다.

당시 상황을 크레인은 “전주에 있는 옛 병원 건물은 문도 창문도 없고 전기배관이나 수도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빈 병원 건물을 볏 집 보관 장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나는 이때 목수, 전기기술자, 배관공들을 직접 감독하여 시설들을 가동시켰다” 라고 기록하였다. 입원실은 1948년 5월 1일 45병상으로 시작하였는데 입원 환자는 평균 60명이 넘었다. 첫 11개월 동안 7천명의 새 환자를 진료하고, 338건의 대 수술을 했다. 병원은 6.25전쟁 때 또 다시 피해를 입었다. 그 이후 의료 사역은 큰 발전을 보였고 160병상으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암 환자를 위한 방사선 심부 치료기가 설치되고, 병실과 진찰실을 계속적으로 넓혀가는 일을 하였다.
그러던 중 6.25 한국전쟁기에는 야전병원에서 총상환자를 치료하고, 군의관을 지도했다. 1958년에 예수병원 밖에 버려진 7살 여자 아이의 배에서 회충 1천 마리가 나 온 사건을 여론화시키며 기생충 박멸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크레인은 한국어에 능숙하여 1961년 11월 박정희-케네디 회담 등 네 차례 한미 정상회담에 통역자로 활약했다. 이때 한국이 월남(베트남)에 1개 대대의 파병을 요청했고, 박대통령은 2개 사단 파병을 제안하여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65년 6주간 미국 남부 순회 40만$ 모아 예수병원 현대식으로 지었다.

아내 소피는 남장로교 한국 선교 자료를 정리해서 연구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준 공헌이 크다. 폴과 아내 소피는 버지니아 의과대학에서 단기 임상병리 과정(혈액학, 기생충학, 세균학)을 이수했고 한국 선교당시 의료 사역뿐만 아니라 저술 활동을 통해서도 유산을 남겼다. 남편 폴이 한국인의 문화와 관습, 생활태도를 온화한 시선으로 관찰하여 정리한 Korean Patterns (Seoul: Hollym Corporation, 1967)를 남겼을 때, 아내 소피는 미국 남장로교 해외 의료선교의 전체 역사를 서술한 496쪽 대작 A Legacy Remembered : A Century of Medical Missions (Franklin, TN: Providence House Publishers, 1998) 를 남겼다.
이 책은 본문 중 머리말과 제2부와 제3부의 한국 의료선교 관련 부분 만 발췌하여 정병준(역), 기억해야 할 유산: 미국 남장로회 한국 의료 선교 역사(CTS 기독교TV, 2011)로 번역 출간되기도 하였다.

우리의 선교는 기간을 잡고 단기로, 혹은 형편이 가능할 때 잠시 하는 모습인데 한 사람, 아니 한 가문의 모든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이토록 헌신하며 선교했다는 사실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 문화에 맞게 그 필요에 맞게 그들의 언어를 알아가며 평생을 선교한 폴 크레인과 아내 소피, 그리고 그 가족들.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또한 모든 걸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작성일:2017-06-30 11:19:29 49.175.45.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