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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41/Scott, Stella May

닉네임
박원국
등록일
2020-07-02 10:16:05
조회수
671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학년3반_41_박원국.hwp (638976 Byte)
제출자: 박원국
학년/반: 3학년 3반
학번: 2018210156
연락처: 010236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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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Stella May


I. 기본사항
1. 이름 : Scott, Stella May / 스코트 / 한국명 : 서오성(徐正星)
2. 생몰연도 : ?-1961
3. 출신 및 소속 : 영국, 호주장로회
4. 한국선교기간 : 1916.3 – 1939, 마산 1916-19, 거창 1920-41
5. 연표
1916.3 호주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경남 거창선교부 부임
23년 동안 선교사업에 헌신, 순회전도, 교육사업에 참여
거창선교부 사업전반에 걸친 책임자로 중요한 위치 차지
1925–1926 초등학교 유치원 담당; 수업; 성서 담당; 서적판매 담당; P.W.M.U.회계담당.
1926–1927 초등학교 유치원 담당, 어린이 교육 담당, 성서 담당, and Bible Society Colportage, 수업, 부서 재무담당.
1931–1932 초등학교 유치원 담당, 수업, 성서 담당, 성서 연구소 작업과 부서 재무담당
1934 휴직
1935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
1937 여학교와 유치원 교장; P.W.M.U.회계담당 ; 수업 ; 성서 연구원 일
1939 일제에 의해 강제 송환
1961 호주 멜버른에서 사망
6. 가족사항 : 기록 없음.

II. 선교사 소개 : 스코트(Scott, Stella May, ?-1961) 출처 인터넷 :http://www.chedulife.com.au/%ec%a0%95%eb%b3%91%ec%a4%80-%ea%b5%90%
ec%88%98%ec%9d%98-%ed%98%b8%ec%a3%bc%ec%84%a0%ea%b5%90%ec%82%ac-%ec%97%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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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한 11명의 아이를 낳은 대가족의 첫째로 태어난 스텔라 스코트(Stella May Scott)는 그녀의 삶의 특징이 된 책임감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일찍부터 발전시켰다. 그녀는 음악교사였고 주일학교 선생이었다. 스텔라 스코트는 1916년 3월 초에 한국에 도착해서 전도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녀는 처음에 마산에 배속되었고 1920년 거창으로 이전할 때까지 주로 마산에 거주했다. 거창에서는 21년을 머물렀다.
스코트는 복음전도자였다. 불신자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주일학교에 찾아온 어린이든지, 아니면 여자 성도들의 가정을 방문할 때, 외국인을 보기 위해 찾아온 여성이든지, 그녀는 늘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또한 선생이었다. 그녀는 20년 동안 거창에서 학교 운영의 책임을 맡았고, 많은 시간을 유치원을 위해 할애했다. 매년, 그녀는 5년 과정의 여자성경학원에 참여할 여성 집단을 준비시켰다. 그녀는 어린이들 위한 성경학급도 운영했다. 한때 그녀는 수 년 동안 농촌지역을 광범위하게 순회하면서 지역사경회를 열고 가르쳤는데, 인근 마을 교회들로부터 여성들을 중심지로 불러 모아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가르쳤다. 그녀는 전도부인들과 성경을 파는 권서인들을 훈련시키고 감독했다.
스코트는 매우 적응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흉내를 잘 내었고 선교사역의 여러 가지 측면에 도움을 주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지침이 없이 일했다.
스코트는 1940년 휴가를 마친 이후, 전쟁으로 인해 한국으로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빅토리아의 이스트 브룬스윅(East Brunswick)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노우드(Norwood) 지역의 교회들에서 디커니스로 섬겼다. 그녀는 은퇴 직전에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했고, PWMU 문서보관소의 사서로 일했다. 스텔라 스코트는 1961년 7월 말에 사망했다.

신사참배에 대한 스코트의 입장 본 글은 필자(고신대 역사 신학교수, 이상규)가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상규,“[이상규의 새롭게 읽는 한국교회사] (54) 기독교 학교에 대한 신사참배 강요”


호주 선교부의 맹호은(J F L Macrae), 대마가례(M Davies), 서오성(S M Scott) 등은 신사참배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으로 신사참배를 수용하더라도 학교 교육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Ⅲ. 사진 및 기타자료

▲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멜번신학대학원 졸업)가 공개한 스코트 사진 출처 인터넷 :http://www.chedulife.com.au/%ec%a0%95%eb%b3%91%ec%a4%80-%ea%b5%90%
ec%88%98%ec%9d%98-%ed%98%b8%ec%a3%bc%ec%84%a0%ea%b5%90%ec%82%ac-%ec%97%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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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4%ed%8a%b8/


Ⅳ. 참고문헌
1. 기독교대백과사전, 기독교문사, 1980
2. APMK
3. The Korea Missions Year Book, C.L.S.K., 1928 <한국선교연감>
4. 조선재류구미인조사록, 1907-1942, 한국학연구소, 1981.
5. 항도부산 제2호, 1963.
6. 내한 선교사 총람: 1884-1984,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4: 438
7. Annual Report(호주 장로회), 한국교회사문헌연구원, 1991
8. 출처 인터넷 사이트: “정병준 교수의 호주선교사 열전(47) 스텔라 매이 스코트”
http://www.chedulife.com.au/%ec%a0%95%eb%b3%91%ec%a4%80-%ea%b5%90%ec%88%98%ec%9d%98-%ed%98%b8%ec%a3%bc%ec%84%a0%ea%b5%90%ec%82%ac-%ec%97%b4%ec%a0%8447-%ec%8a%a4%ed%85%94%eb%9d%bc-%eb%a7%a4%ec%9d%b4-%ec%8a%a4%ec%bd%94%ed%8a%b8/
9. 출처 인터넷 사이트 : “[이상규의 새롭게 읽는 한국교회사] (54) 기독교 학교에 대한 신사참배 강요”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5926155

Ⅴ. 수정 및 보완
1) 수정
3번째 문단 마지막 줄의 “그녀는 전도부인들과 성경을 파는 권서들을 훈련시키고 감독했다.”의 ‘권서들을’을 ‘권서인들을’로 수정했습니다.

2) 일화 소개
① 오수교회 이윤의 장로의 부인 주경선 권사와의 일화
김수진 목사의 기록에 의하면(김수진, 『호남기독교 100년사』, 349쪽), 이윤의 장로의 부인 주경선 권사는 주경선은 1903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하였습니다. 4세 때에 거창에서 스코트(Scott Stella May 한국명 서오성 호주 선교사로 1916년부터 1939년까지 주로 마산 거창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선교사가 “나는 지금 50세가 되었지만 섬김을 받으려고 오지 않고 남을 섬기기 위해서 왔습니다.”는 말씀을 듣고 남을 위해 사는 길이 어떤 길인가를 생각하다가 혼자 몸으로 동대문 부인과병원 부속 간호양성소에 입학하게 됩니다. 교회와목회(2015년 10월호), 초기 내한선교사들의 남도행전(19), 전병호목사(연세대학교 신학과와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NCCK 회장, 군산기독교연합회 회장, 군산 나운복음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다. 현재 ‘전북교회역사문화연구원’을 개원하여 호남지역의 교회사와 종교문화사를 연구하고 있다.) http://www.clsk.org/bbs/board.php?bo_table=gisang_theologry&wr_id=910


② 아이다 맥피(McPhee) 호주 여성교육 선교사의 삶에 대한 Scott의 기고문
1916년 맥피 선교사(아이다 맥피(McPhee) 호주 여성교육 선교사)는 부친의 건강이 악화되어 호주에 일시 귀국하여 1919년까지 머물다가, 다시 마산으로 돌아와 의신여학교 교장으로 봉직하고 진주와 부산을 드나들며 바쁜 일정 속에서 교육선교 사업에 열중하였다. 그의 삶에 대하여 스코트(Scott, Stella May) 선교사는 우리의 따뜻한 친구(Our Big Hearted Friend) 라는 제목으로 “그는 학생들을 자식처럼 사랑했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그를 따르는 학생들은 어머니라고 부르며 감사했다. 항상 인정을 베풀며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려고 힘쓴 <나눔(Sharing>의 삶에 힘썼다.” 고 1937년 6월 코리아 미션 필드(The Korea Mission Field)에 발표했다. 신앙세계(2009년 10월호), 한국 땅에 묻힌 호주 선교사와 그 가족들(2), 신호철 장로(양화진선교회 회장)http://yanghwajin.co.kr/zboard/view.php?id=forum&page=1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it&desc=asc&no=279


3) 보완

한국 선교 기간: 마산 1916-19, 거창 1920-41
4) 추가, 관련 사진 인용싸이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bjoon63&logNo=30102101709



Scott Stella May


거창 여자선교사들의 숙소, 1925


거창유치원 1924
 
경남여자성서학교 1928년

거창교회 성경공부후 여성들의 놀이 

선교사들을 기다리는 거창지역의 아이들, 1933

경남노회 여선교연합회, 1934

5) 영문 소개 글

Deaconess Stella May Scott. (d. July 1961). Masan 1916-1919; Kuchang 1920-1941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 멜번신학대학원 졸업),
http://chedulife.com.au/%ec%a0%95%eb%b3%91%ec%a4%80-%ea%b5%90%ec%88%98%ec%9d%98-%ed%98%b8%ec%a3%bc%ec%84%a0%ea%b5%90%ec%82%ac-%ec%97%b4%ec%a0%8447-%ec%8a%a4%ed%85%94%eb%9d%bc-%eb%a7%a4%ec%9d%b4-%ec%8a%a4%ec%bd%94%ed%8a%b8/

 
The eldest in a large family of whom eleven survived to adulthood, Stella Scott early developed that sense of responsibility and care for others which characterised her life. She was a trained music teacher and Sunday School teacher. Stella Scott arrived in Korea in early March 1916, appointed as an evangelistic missionary. She went initially to Masan, and basically remained there until she was transferred to Kuchang in 1920, where she spent the next 21 years.
 
Miss Scott was an evangelist. Whether it was children in Sunday Schools for children from families of unbelievers, or women who came to look at the foreigner when she was visiting the homes of Christian women, she sought always to win them as followers of Jesus.
 
She was also a teacher, and for twenty years had charge of the school in Kuchang. For much of the time she was in charge also of the kindergarten. Each year she prepared a group of women to participate in the five-year Women’s Bible Institute. She conducted Bible Classes for children. Some years she itinerated widely in the rural areas, and taught in the district classes where women from surrounding village churches were brought to a central location for study of the Bible and Christian belief. She trained and supervised Bible women in their work, and the colporteurs who sold copies of the Scriptures.
 
Miss Scott was a very adaptable person, used to coping, and able to turn her hand to many aspects of mission work. She worked tirelessly.
 
The war prevented her from returning to Korea after her furlough in 1940. So she served as a deaconess in the East Brunswick, Victoria, and the Norwood, South Australia, churches. In retirement, she undertook religious education in schools, and served as librarian for the PWMU. Stella Scott died at the end of July,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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