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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B046 / Ingerson, Vera F.

닉네임
이정환
등록일
2020-07-02 12:16:26
조회수
591
첨부파일
 내한 선교사_3-2_B046_이정환.pdf (363952 Byte)
Ⅰ. 기본사항

1. 본 명 : Ingerson, Vera F. (잉거슨 / 미국 / NP)
조선 이름 : 인거선(印居善)

2. 생몰연도 : 1890~1971

3. 출신 및 소속 : 1916. 9. 1. 미국 북장로교 의료선교사

4. 한국선교기간 : 1916-1942, -1955

5. 연혁

1) 1916. 9. 1.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내한
2) 선천 선교부 미동병원의 간호원으로 진료와 전도사업
3) 1929 선천보성여학교의 교사로 교육 사업에 헌신
4) 1942. 10 일제에 의해 귀국, 4년간 미국 콜롬비아에 거주, 해방 후 재내한하여 봉사
5) 1955 정년 퇴임 후 귀국, 캘리포니아주 듀아트에서 거주

6. 가족사항 : 미혼


Ⅱ. 선교사 소개

1. 출생 및 성장

미국의 콜로라도 주 덴버(Denver)에서 태어났으며 미시간 주에서 미션 스쿨인 ‘칼빈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였다. 그곳에서 의료선교사로서의 자질을 성실하게 임했다.

2. 내한 및 한국에서의 선교사

인거선은 조신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어 함께 생활했다. 결코 ‘동양’의 문화를 사랑하는 이국적인 정서가 아니었고 여행객의 시선인 연민과 동정이 아니었다. 동아일보에 실린 1926년 1월26일 자에는 그녀가 선천 미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할 때, 조선인 식모를 두었다고 한다. 그 식모의 남편이 만주, 시베리아, 남방국들의 유랑 끝에 병을 얻어 그녀가 일하는 병원의 부속 집에 묵게 하였다.
인거선은 1920년 북장료교회의 선교부 간호사로 14명 중에 한 사람이었다. 선천의 미동병원에는 6명의 의사와 6명의 간호사가 근무했으며, 1928년 『조선선교연감 The Korea Missions Year Book』에서 발행된 선천 편에서 인거선은 1916년에 부임했음을 기록했다. 당시 선천 지역에 조선인 병원과 일본인 병원 모두 합하여 40개의 병원이 있었다고 인거선의 보고했다. 선천의 미동병원에는 의료원 양성소가 있었고 북장로교회가 세운 두 개의 학교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인거선이 재직한 보성여성학교이다.

미국 출신으로 간호원인 잉거슨은 미북장로회 한국여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녀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1901년 미북장로회 선교부에서 평북 선천에 설립한 미동병원의 간호사로 들어왔다. 선교 사업에 뜻을 둔 그녀는 1916년 9월 1일 한국의료선교사로 임명받게 된다. 내한하원으로 부임하여 진료와 전도 사업에 열심을 다한다. 설립자이며 초대 병원장인 샤룩스 박사와 함께 1900년 선천에 방문하고 이듬해 휘트모어와 함께 선천에 이주한다. 선천 선교부를 개설하고 그해 1,100명, 이듬해 3,500명 이상 치료의 성과를 보았다. 그렇게 새로운 병원 건축을 1905년에 하면서 지역사회에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던 중 1916년에 잉거슨 양이 파송되어 오면서 간호원 양성소를 설치하고 한국인 간호원 양성에 주력하였다. 1919년 3월 1일 3.1운동의 물결 속에 신성중학교 교직원과 학생 전원과 보성여학교 학생 60여 명이 만세를 외치며 동참했다.

간호사의 역할과 양성소에서의 사역을 뒤로하고 1929년 선천보성여학교의 교사로 가게 된다. 1907년 9월 25일 선천에 여성교육기관을 설립할 것을 계획하고 모임을 가졌고, 그렇게 1907년 선천군 선천읍에 설립된 보성여성학교는 장로교계 여성 교육기관이었다. 현재는 서울 용산구 용산동 2가 1의 1123에 소재하고 있다. 10월 10일 교명을 보성여학교라 칭했고, 선천 미동병원 부속건물인 안 제미신(Ann Jamision) 기념관을 임시로 개교하였다. 초대교장으로는 연선교사인 체이스가 취임했다. 초창기의 교육과정으로 선교부의 방침에 따라서 산술, 성경, 한문, 작문, 역사, 지리, 과학, 심리학, 동식물학, 윤리, 성서지리 등으로 교수했고, 초기 학생은 30명 안팎이었다. 1910년에 8명의 1회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제 2회도 8명을 졸업시켰다. 입학자격으로는 초등과정을 이수한 자로 하였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 2년 과정의 예비반을 수료해야 입학기 허가되었다. 잉거슨은 이 학교가 성장 시기에 있을 1921-1936년에 교사로 있었다. 1930년대에 졸업생들의 활동은 더 활발해지면서 여자 기독 청년회를 중심이 되었다. 이들을 통해 유치원을 경영되었고, 야학을 열어 농촌계몽에도 큰 힘이 되었다. 또한 평북노회의 부인전도연합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전도활동이 전개되면서 획기적인 일을 계획하게 되었다. 이것은 1935년 5월 5일 여자운동회를 열어 여성들을 대거 참가시키므로 실질적인 여성운동의 진보를 보여주었다.
작성일:2020-07-02 12:16:26 183.108.19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