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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42/Sharrocks, Ella J

닉네임
수연
등록일
2020-07-02 12:18:32
조회수
679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학년3반_42_김수연.pdf (122537 Byte)
◆ 내 한 선 교 사 기 초 자 료 조 사 ◆

Ⅰ. 기본사항

Sharrocks, Ella J. (샤록스 / 미국 / NP)

o 한국명 : 사 은 라

o 출신 및 소속 : 미 국 / 북장로회 의료 선교사

o 한국 선교기간 : 내 한 - 1926년 이 한 - 1952년

o 생몰연도 :

o 가족사항 : Sharrocks, Alfred M (부)
Sharrocks, Mory Ames (모)
Avison, G. (남편)

o 학 력 :

o 선교 활동지역 : 안동 , 서울 , 대구 『내한 선교사 총람』 김승태.박혜진 엮음,(서울, 한국 기독교역사연구소) 75


o 선교 활동영역 : 의료 / 교육 『미국장로교 내한 선교사 총람』 미국장로교 한국선교회 편, 85


o 선교 활동내용 : 세브란스의전 부설 간호학과 교수, 간호과정 『미국장로교 내한 선교사 총람』 미국장로교 한국선교회 편, 85


o 연 표

- 1919년 Sharrocks, Alfred M (부) 별세
- 1926년 북장로교 의료 선교사로 내한
- 1926년 제2세대 선교사로 최초의 외국인 간호사로서 안동에 부임후 전도사역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 해리로즈 최재건 옮김 ,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344

- 1926 - 1930년 1,200명의 입원환자와 1만2천명 이상의 투약환자들을 보살핌.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 해리로즈 최재건 옮김 ,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349

- 1926 – 1930년 소아과 진료담당.
- 1947년 현 교육부 의학교육과 간호교육 담당관으로 김온순, 장복순과 함께 활동. 간호대백과사전

- 1950년 Sharrocks, Mory Ames (모) 별세
- 1952년 안동. 대구. 서울 등지에서 의료선교사 활동
-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 부설 간호학교 교수, 병원 간호과장 역임.
- 선교사 2세인 에비슨 (G. Avison) 과 결혼.

Ⅱ. 선교사 소개

o 한국인 여성을 위한 사역
1898년에 베어드 부인과 베스트 양은 이 도시 안에서 한국인 여성을 위한 주일 학교를 개설하였다. 1896년에 평양으로 온 리 부인은 도시 밖에서 주일학교를 운영하였다. 베어드 부인과 리 부인도 그 두 곳에서 매주일 여성기도모임을 이끌었다. 리 부인은 이 도시의 한 여학교에서 가르쳤고, 도시 밖을 담당하게 되면서 웰스 부인에게 그 일을 넘겼다. 의사 엘리스 피쉬양과 헌트 부인은 1898년에 이 기지로 왔음, 스왈른 부인은 1899년에 왔다. 4년후에는 일곱 명의 여 선교사들과 웹(Webb)여사가 이 기지에 있었고, 베어드 부인과 스왈른 부인은 1891년과 1892년부터 그 현장에 있었다.

선교기지의 여성사역에서 ‘샤록스(Sharrocks)’는 1년간 이 선교기지의 일원으로 있었는데 여학교와 여성모임에서 어학수업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노래반의 운영도 도왔다. 선교사들은 날마다 그들의 집에서 한국인 방문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서서 기다렸으며, 한국인 무리들을 초대해 모임을 갖고 다과를 제공하였다.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 해리로즈 최재건 옮김 ,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57-158


미 국무성에서 민간인 간호고문으로 파견되어 1947년부터 현 교육부 의학교육과 간호교육담당관으로 김온순, 장복순과 함께 활동하였다. 한국간호학교의 정상적인 발전은 문교행정 테두리에 들어가야 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간호교육향상 및 발전에 많은 이바지를 하였다. 쇄락스 [E. Sharrocks] (간호학대사전, 1996. 3. 1., 한국사전연구사)


‘평화로운 동쪽’ 이라는 안동읍,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중심지로 서울에서 남서쪽으로 160마일 떨어진 지점에 있고, 대구에서 동북쪽으로 70마일 떨어진 지점에 있다. 전에는 대구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조랑말이나 가마로 3일이 걸렸다. 이러한 지역적 특징으로 주민들의 성격이 고립적이되고 보수적으로 되었다. 웰번 복사의 말을 인용하면 “1910년에 선교기지가 개설될 때까지 주민 때다수는 바깥세상에서 , 심지어 자기 나라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 변화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1932년에 안동읍의 인구는 1만 5,160명이었고, 이 지방의 선교기지와 교회는 2,500평방 마일 지경안에 있는 70만명 이상의 주민들을 복음화 시킬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sharrocks는 이곳에서도 활동을 하였다.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 해리로즈 최재건 옮김 ,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336-337


o 안동 여성을 위한 사역
웰번 부인은 이 선교기지로 부임하기 전에 한국에서 11년간 있으면서 수많은 사경회들을 인도하였다. 안동에 도착했을 때 격리되어 살아온 한국여성 20명이 큰 호기심을 가지고 그녀와 그녀의 네 아이들을 보러왔다. 웰번 부인은 공부반을 조직해 일주일에 두 번씩 가르쳤는데 하나는 나이든 여성을 , 다른 하나는 젊은 여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 공부반을 통해서 많은 새 신자들이 교회로 왔다.
1918년 이후부터는 기혼 여성들이 크로더스 부인을 제외하고는 이 선교기지에 오래 거주하지 못했다. 앤더스 부인은 1917-1922년까지, 베자민 아담스의 부인은 1923-1928년까지 있었다. 간호사인 샤록스( Sharrocks) 부인도 안동에 부임한 1926년부터 전도사역을 도왔다.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 해리로즈 최재건 옮김 ,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344


버코비츠 박사와 간호사인 그의 부인이 1924년 가을 선교지에 도착하여 안동으로 배정되었으나, 어학공부와 정부의 진료 허가 시험 때문에 안동의 의료사업은 1년 후에야 재개되었다. 1926년 제2세대 선교사인 간호사 엘라 샤록스 (Ella J. Sharrocks)양이 최초의 외국인 간호사로서 안동에 배정되었다. 샤록스 선교사는 벌코비치(Z. Bercovitz) 선교사님이 안동성소병원의 3대 원장으로 재임할 때 간호부장이었다. http://adpc.or.kr/adboard/index.php?doc=program/board.php&bo_table=faith_column&wr_id=215

그녀는 1926 – 1930년의 5년동안 약 1,200명의 입원환자들과 1만2천명 이상의 투약환자들을 보살폈다. 그동안 버코비츠 박사 부부가 안식년을 가졌으며, 한국인 의사 한명과 직원이 샤록스 양과 선교회 읠부의 감독 아래 그 일을 맡았으며, 대구의 플레처 박사의 도움을 받았다.

샤록스 양은 다른 의료사역과 교육사업에도 종사하였으며, 그밖에 소아과 진료도 담당했다. 불행하게도 그 기간의 병원 경영에 큰 결손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마침내 해결되었는데, 쇼플러 부인이 계속 그 사역에 관심을 보엿고, 그녀의 자매인 존 케네디의 부인이 또한 참여하였다. 그들은 현장에서 일하는 샤록스를 몇 년 동안 후원했으며, 재정적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일들도 도왔다.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 해리로즈 최재건 옮김 ,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349

당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와 병원에 규모를 알수 있는 것은 병원수간호사인 샤록스 부인에 1929년도 보고서에서 하루에 550인분의 식사가 제공되고 세탁실에서는 한 주일에 2천 장이 처리되고 있다고 하였다.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 해리로즈 최재건 옮김 ,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418


또한 안동의 교회음악에도 공헌을 하였다. 선교목적으로 병원직원들을 찬양대로 조직하였다. 이 찬양대는 짬짬이 시간을 내어 연습한 찬송을 환자들 앞에서 연주함으로써 환자들을 위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병원에서 발표했던 곡들을 안동교회 주일예배 시 특별찬양을 가짐으로써 1928년 1월부터 시작한 안동교회 찬양대의 효시(嚆矢)가 되었다. 샤록스 선교사님이 안동에서 사역하는 동안 안동성소병원 찬양대와 안동교회 찬양대가 조직됨으로써 예배가 더욱 풍성해졌을 뿐 아니라 안동지역 교회음악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http://adpc.or.kr/adboard/index.php?doc=program/board.php&bo_table=faith_column&wr_id=215


샤록스 선교사님은 1919년 미국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에서 별세하였지만 그의 부인인 모리스 선교사님은 1938년까지 한국 땅에서 선교에 헌신하였습니다. 그 후 샤록스 선교사의 딸인 사은라 선교사님도 간호선교사로 부친의 뒤를 이어 1926년 의료선교사로 내한(來韓)했다. 1930~1931년 졸업생들은 간호사 국가자격시험에 전원이 합격했다. 당시 병원은 5명의 간호사와 14명의 학생 간호사로 운영되었다. 1936년에는 헤드버그 소장이 이임함으로써 일시 중단되었던 간호교육은 1940년 4월 샤락스(Ella J. Sharrocks) 선교사에 의해 모자보건소 건물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Ⅲ. 참고문헌

- 기독교 대백과사전

- 내한 선교사 총람

-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 미국장로교 내한선교사 총람

- http://adpc.or.kr/adboard/index.php?doc=program/board.php&bo_table=faith_column&wr_id=215

Ⅳ. 수정 및 보완부분

미국장로교 내한선교사 총람 자료를 통해 샤록스 선교사님이 내한하여 어떤 선교 활동을 펼쳤는지, 그 영역과 내용에 대해 추가를 하였다. 또 샤록스 선교사님이 안동에서 간호부장으로 일을 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그리고 안동 지역의 교회 음악 발전에 기여한 부분에 대해서 웹사이트의 글을 통해 내용을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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