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10월 24일/사무엘 마펫 소천


로버트 맥코휘(Roebrt Culver McCaughey)가  [여러가지 면에서 신학교 사역을 통해 한국에 공헌한 가장 뛰어나고 찬란한 선교사였다]고 평했던 마포삼열 선교사가 1939년 10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실제로 한국 개신교 선교, 특별히 장로교 선교에 언더우드와 더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1889년 한국에 입국한 후 평양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만들어 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평양소학교교장, 1907년에는 최초의 노회장이 되었고, 1911년 105인 사건 때는 주동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1909년 한국 개신교 선교 25주년을 맞는 그해 마포삼열 선교사는 언더우드와 쌍벽을 이루는 선교사로, 1934년 개신교 선교가 희년을 맞던 해에는 한국의 윌리암 케리라는 예찬을 받았던 인물이다. 언더우드가 선교의 확장과 연합이라는 측면에서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면 마포삼열은 신학적인 면에서 큰 공헌을 했던 인물이었다. 사실 그는 평양신학교의 초대교장으로 있으면서 한국교회의 신학적 토대를 놓았다.

1934년 감리교의 [아빙돈 단권주석]에 반대하여 장로교 총회에서 출간한 [표준성경주석] 서문에서 마포삼열 선교사는 [성경 전체는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법칙]이라고 자신의 성경관을 분명히 밝혔다. 선교 50주년 기념식에서 마펫이 지적한 것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의 검]이었고, 한국 [선교사역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해 왔다. 그는 신정통주의 성경관을 반대하면서 이렇게 선언한다.  [저들은 성경의 어떤 부분을 다른 부분보다 더 가치있다고 믿으나 우리는 원저자들이 쓴 대로의 모든 부분이 다 참되며, 모든 부분이 다 신께서 자기 인간에게 주시고자 하신 바라고 믿는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10.0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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