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페테레아 제이콥슨(Anna Peterea Jacobson, 1866-1897)

 

 

Ⅰ. 기본사항

    이름: Jacobson, Anna Peterea 

 

  1. 생몰연도: 1866. 4. 18 – 1897. 1. 20
  2. 출신 및 소속: 노르웨이, 미국 / 미국 북장로회
  3. 한국선교기간: 1895. 4. 6  – 1897. 1. 20 

4. 연표

   1866. 4. 18 노르웨이 노테로섬에서 루터교도 가정 출생

               생후 1달 후 루터교회에서 유아세례

   1878. 회심 경험, 이후 장로교회로 교적 옮김, 해외선교사로 헌신 작정

   1881. 부모님이 정해준 약혼자와의 약혼 파기로 집에서 쫓겨남, 수년간 가사도우미로 생계 유지

   1889. 간호선교사의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가 메인 주 포틀랜드에 정착, 3년간 가사도우미로 생활

   1892. 9. 메인종합병원 간호사 양성학교에 입학하여 2년 과정의 간호 교육 과정

   1894. 5. 9 북장로회 해외선교부에 선교지원서 제출, 한국선교사로 임지 결정

   1895. 4. 6 여의사 조지아나 휘팅과 함께 한국선교사로 내한, 이후 제중원에서 올리버 R. 에비슨을 도와 간호사역과 교수사역,
                     전도사역 감당

   1896. 8. 사역 중 이질에 감염, 1달 후 병원 사역 재개        
             10. 말라리아와 간 종양으로 갑작스레 건강 악화, 수개월 간 투병

   1897. 1. 20 소천        
              1. 22 언더우드 선교사 사택에서 장례예배 거행, 양화진 안장  

   

                

Ⅱ. 선교사 소개

 

  1. 어려서부터 신앙 때문에 받은 고난

  제이콥슨은 1866년 4월 18일 노르웨이의 노테로섬에서 루터교도 가정에서 출생한다. 많은 수의 직원을 둔 제빵업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그녀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루터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제이콥슨은 12세가 되기 전까지 루터교회의 영향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나 부모님의 뜻에 의한 타의적 신앙생활은 어린 그녀를 괴롭게 했다. 

  그러던 중 12세가 되던 해 회심을 경험한 제이콥슨은 해외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작정하면서 어려서부터 몸담은 루터교회를 떠나 장로교회로 교적을 옮긴다. 이는 가족들과의 갈등과 불화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녀는 집안 어른들이 정해 준 불신자였던 정혼자와의 약혼을 파기하게 되는데, 이 사건을 통해 더욱 눈밖에 나게 된 제이콥슨은 15세의 나이로 집에서 쫓겨나는 어려움을 겪는다. 이후 그녀는 약 8년간 가사도우미로 생활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갔다. 

 

  2. 간호선교사의 꿈을 품고 미국으로

  계속되는 고된 생활과 가난도 제이콥슨의 해외선교사의 꿈을 꺾을 수 없었다. 그녀가 23세가 되던 1889년, 간호선교사의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간 제이콥슨은 메인 주 포틀랜드에 정착하여 3년간 가사도우미로 생활한다. 

  1892년 9월 메인종합병원 간호사 양성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2년 동안 간호 교육을 받는다.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감당한 제이콥슨은 자신이 출석하던 포틀랜드제일장로교회의 담임목회자의 추천을 받아 1894년 5월 9일에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부에 선교지원서를 제출했다.  

 

  3. 북장로회 첫 한국 간호선교사로 내한하다

  처음에는 중국 선교사로 파송 받길 원했으나 선교부로부터 한국선교사로 임명받은 그녀는 이듬해 4월 6일 여의사 조지아나 휘팅과 함께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한다. 제이콥슨은 북장로회 해외선교부에서 한국으로 파송된 첫 간호선교사였다. 그녀는 내한 후 제중원에서 원장인 올리버 R. 에비슨을 도와 간호사역을 감당하면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도사역에도 열심을 낸다. 

 

  4. 2년도 채 되지 않은 한국선교를 마치고
  내한 이듬해인 1896년 8월 이질에 감염된 제이콥슨은 한 달 만에 병원 사역으로 복귀했으나 10월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다. 말라리아와 간 종양으로 투병하던 그녀는 이듬해 1월 20일 31세로 서울에서 소천하였다.  

  제이콥슨 선교사의 장례식은 1월 22일 호레이스 G. 언더우드 선교사의 사택에서 거행되었는데, 이때 언더우드가 한국어로, 헨리 G. 아펜젤러가 영어로 그녀의 추도사를 낭독한다. 내한 1년 9개월여 만에 한국 땅에 잠든 그녀는 양화진 묘지에 안장되었다. 선교사들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제이콥슨의 소천을 애도했는데, 특히 1897년 1월 21일자 <독립신문>은 간호선교의 개척자인 그녀의 죽음을 가리켜 “조선인민에게는 크게 손해”라고 표현하였다. 

 

III. 사진 및 기타자료

안나 P. 제이콥슨 선교사(1890년대 중반)

* 출 처: 옥성득, 『한국근대간호역사화보집 1885-1945』 (서울: 대한간호협회, 2012) ; “Anna Jacobsen: The Norwegian nurse buried in Korea,” The Korea Times (Jan.30, 2021)에서 재인용. 

https://www.koreatimes.co.kr/www/opinion/2021/12/721_303271.html

 

제이콥슨 선교사가 재학할 당시의 메인주 포틀랜드의 간호사 양성학교(1892년경)
* 출 처- https://www.mainememory.net/artifact/105220

 

제이콥슨 선교사 사후 여선교사 숙소로 건립된 기념사택 모습(1897년경)

* 출 처: 미국연합장로교회 역사관(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

 

제이콥슨 선교사 사후 여선교사 숙소로 건립된 기념사택 모습(1900년경)

* 출 처-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도서관 “Moffett Korea Collection”

 

안나 P. 제이콥슨 선교사의 소천을 알리는 독립신문(영문) 기사
“EDITORIAL NOTES,” The Independent (Jan. 21. 1897): 2.

 

안나 P. 제이콥슨 선교사의 소천을 알리는 독립신문 기사
“미국 쟝노교회 병원에 병인 간검하던 부인.” <독립신문> 1897년 1월 21일자, 3-4면.

 

안나 P. 제이콥슨 선교사의 소천 소식을 알리는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부 총무인 엘린우드에게 보내는 에비슨 선교사의 편지(1897년 1월 25일). 

* 출 처-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도서관 “Moffett Korea Collection”

 

안나 P. 제이콥슨 선교사의 생애를 요약한 독립신문(영문) 기사
“Short Sketch of the Life of Miss Anna.” The Independent (Jan. 28. 1897): 2.

 

헨리 G. 아펜젤러 선교사의 안나 P. 제이콥슨 선교사의 소천을 알리는 The Korean Repository 기사
 "Editorial Departmant - Miss Anna P. Jacobson," The Korean Repository (Jan. 1897): 32-34.

 

헨리 G. 아펜젤러 선교사의 안나 P. 제이콥슨 선교사의 추모사
“Funeral Address.” The Korean Repository (Jan. 1897): 35-37.

 

제이콥슨 선교사에 이어 북장로회 간호선교사로 내한한 에스더 L. 쉴즈 선교사가 The American Journal of Nursing에 기고한 한국의 간호선교
보고 중 제이콥슨 선교사에 관한 부분

Shields, Esther L. “Nursing in Mission Stations – Work on Korea.” The American Journal of Nursing Vol. 8 No. 5 (Feb. 1908): 368.

 

1909년 북장로회 한국선교 25주년 대회 당시 제임스 E. 아담스 선교사가 보고한 순직 선교사들의 보고서에 기록된 안나 P. 제이콥슨 선교사 부분

Adams, James E. “The Roll of the Dead.” Quarto Centennial Papers read before the Korea Mission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1909): 112-113.

 

안나 P. 제이콥슨 선교사의 양화진 묘비
(나이가 31세인데, 29세로 기록되어 있음)

 

Ⅳ. 참고문헌

 

[안나 P. 제이콥슨 관련 글]

Adams, James E. “The Roll of the Dead.” Quarto Centennial Papers read before the Korea Mission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1909): 112-113.

Shields, Esther L. “Nursing in Mission Stations – Work on Korea.” The American Journal of Nursing Vol. 8 No. 5 (Feb. 1908): 368.

“EDITORIAL NOTES.” The Independent (Jan. 21. 1897): 2.

“Editorial Departmant - Miss Anna P. Jacobson.” The Korean Repository (Jan. 1897): 32-34.

From O. R. Avison To. F. F. Eliinwood in Seoul. Korea (January 25, 1897).

“Short Sketch of the Life of Miss Anna.” The Independent (Jan. 28. 1897): 2.

“미국 쟝노교회 병원에 병인 간검하던 부인.” <독립신문> 1897년 1월 21일자, 3-4면.

 

[단행본]

김승태․박혜진 편. 『내한 선교사 총람 1884~1984』 .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4: 321.

양화진문화원 편.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서울: 홍성사, 2015: 166-169.

이만열. 『한국기독교의료사』 . 서울: 아카넷, 2003: 80, 187.

이정숙. “안나 P. 제이콥슨.” 『내게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1권: 양화진 선교사들의 삶과 선교』 한국교회사학회.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2014: 218-221.

 

[논 문]

한미영, 손수경. “한말·일제강점기 내한 간호선교사의 사역 연구.” 「신앙과 학문」 제19권 3호 (2014년 9월) : 217-218.

 

[기타 자료]

“Anna Jacobsen: The Norwegian nurse buried in Korea.” The Korea Times (Jan.30, 2021). 

https://www.koreatimes.co.kr/www/opinion/2021/12/721_303271.html

 

** 한국기독교사연구소 오헌 실장 정리 **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23.04.07 15:08
  • 수정 2023.04.1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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