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1년 11월 05일/워필드 출생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와 더불어 근대 3대 칼빈주의 신학자로 잘 알려진 비.비. 워필드가 1851년 11월 5일에 출생했다. 아마도 그처럼 학문성과 경건과 인격을 겸비한 신학자는 드문 것 같다. 워필드는 약관 20대였던 1881년에 그의 스승 에이 에이 하지와 더불어 "영감"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전통적인 칼빈주의 영감론을 재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전통적인 칼빈주의 신학을 침식시키는 오벌린 신학교의 완전주의의 오류를 공격하고, 30세에 [근본진리들: 진리에 대한 증언]에 수많은 논문을 발표해 현대주의에 대항하여 전통적인 진리들을 사수하고 변호하는 일에 헌신했다.

워필드는 성경과 어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보수주의가 학문성이 없다는 비판을 일소하는 일에도 적지 않게 공헌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학문적인 업적보다도 우리를 더욱 감동시키는 것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의 훌륭한 인격이다. 독일에서 신혼 여행 중 벼락을 맞아 불구가 된 아내를 일생동안 헌신적으로 보살폈던 워필드의 일화는 그의 신학을 더욱 위대하게 만든다.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신학은 마치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아무 의미가 없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하듯이, 참다운 신학은 인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격이 없는 신학은 탄환이 없는 총과 마찬가지다. 탄환이 없는 총은 순간적으로 공포감을 조성할지 모르지만, 이미 무기로서의 생명을 상실한 것이다. 이 시대의 워필드,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기도 제목이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10.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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