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01월 15일/병인대박해 

 

1866년 1월 15일, 대원군은 지금까지 관대하게 묵인하던 천주교도들에 대한 태도를 갑자기 바꾸고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이 박해는 무려 1872년까지 6년이나 계속 되었다. 박해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프랑스인 신부 12명 가운데 리델, 칼레, 페론 등 3명을 제외한 9명이 체포되어 사형당했다. 박해 기간 동안 무려 8천 명의 천주교 신자가 순교했다. 당시 국내 천주교 신자가 2만 5천 명 내외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 순교자 수는 전 신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이다. 

대원군이 갑자기 천주교에 대한 태도를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대원군 집권 이전부터 미만했던 위기의식이 당시 조선을 위협했던 러시아 남하로 자극되어 더욱 고조되자, 대원군은 천주교의 도움을 받아 대처하려고 했다. 그는 조선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신부의 힘을 빌어 프랑스 세력을 끌어들여 남하 중인 러시아 세력에 맞서자는 천주교 신자 남종삼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계흭은 차질이 생겨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이 차질은 프랑스 신부들과 천주교도들에 대한 대원군의 반감을 상당히 자극시켰다. 때마침 청에서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개시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대원군은 갑자기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령을 발표한 것이다.

결국 이 박해는 민중에 대한 공포정치, 만연된 위기의식 해소, 봉건왕조의 재확립, 그리고 그의 경직된 쇄국정책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1.08 07:57
  • 댓글 0
저작권자 © 평양대부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