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운동과 전도운동은 나란히 병행

이와 같이 그들은 개교회의 사경회 인도로 복음의 결실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인도하는 부흥 집회를 통해 복음에 대한 열정과 확신을 배가하게 되었다. 태신자를 낳아 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복음의 능력과 구원의 감격을 훨씬 더 강하게 느끼는 법이듯이 실제로 집회 인도를 통해 성령의 강한 역사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이들은 더욱더 주의 사역에 감격하고 전도자로서의 소명과 책임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전에는 결코 그 같은 일을 시도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이들 집회 인도자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삶에서 축복을 받았다. 우리의 오후 모임에서 어떤 사람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다”고 말한 것처럼, 자신이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때까지는 그가 실제로 복음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배우면서 그의 신앙이 더욱 견고해진다.

따라서 개교회의 사경회와 부흥회 인도는 외형적인 전도의 결실은 물론 직접 집회 인도를 경험함으로써 구원의 확신은 물론 복음 전도자로서의 소명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개교회에서 열리는 부흥회와 사경회에서도 이와 같은 이중적인 결실이 언제나 뒤따랐다. 부흥회와 사경회는 참석한 기성 신자들에게는 영적 재충전의 기회였고, 주변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자신들이 전도한 이들이 복음을 접하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하면서 개교회의 기성 신자들은 구원의 확신을 더욱 견고하게 다지게 되었고 구령의 열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따라서 “부흥운동과 복음 전도는 항상 나란히 병행되었다.” 각 교회에서 열리는 부흥회 마지막 날에 참석자들은 주변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시간을 드리겠다는 전도 서약, 날연보를 작정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를 직접적이고 긴급하게 확장하는 일에 있어서 이들 사경회와 부흥회의 가장 큰 결과는 한국인들이 날연보라 부르는 것에서 발견될 수 있다. 집회 마지막 날 대예배 때 각 남녀는 나뉘어진 종이에 헌금을 내는 대신에 자신의 마음에 축호 전도나 마을 전도에 아주 많은 날을 드리기로 서약한다. ······자기 집이 길가에 위치한 한 사람은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전도하였으며, 그들 대부분이 말씀을 즐겁게 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은 3주 동안 가가호호를 돌면서 200명에게 전도했으며 그들 중 50명이 믿었다. 이 전도의 결과로 한 교회에서는 50명의 여인들이 모여들었다.

은혜를 받자 전혀 사례를 받지 않고 자비를 들여가면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당시에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대부흥운동의 역사를 피부로 접하면서 복음 전파의 긴박성을 더욱 절감하고 그 일에 자신들의 시간을 드리기를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일부 선교부에서 시행되던 날연보는 부흥운동을 거치면서 점점 더 보편화되기 시작해 1908년부터는 부흥회나 사경회마다 날연보를 작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것은 백만인 구령운동에서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자리 잡을 만큼 선교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 중에서 -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1.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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