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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02월 16일 / 물산장려운동
2008년 01월 28일 (월) 15:57:52 평양대부흥

 

 1923년 02월 16일/물산장려운동


 1923년 2월 16일에 계획된 조선물산장려대회는 비록 일본 경찰의 무력 저지로 실패했지만, 한국 기독교인의 애국심을 또 한 번 과시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물산장려운동이 시작된 것은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 평양에서였다. 범민족적 3.1운동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조만식, 김동원, 김성업 등 50여 명은 1920년 7월 30일 평양예수교서회에서 조선물산장려회 발기대회를 열고 그 취지문을 발표하였다.

이 운동은 곧 서울로 번져 1922년 1월 20일 유성준, 김윤수, 백관수 등이 "조선물산장려회 창립총회"를 개최하면서 범국민기독교 운동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후 전국에서 지회가 결성되었고, 이듬해 1월 25일에는 전국에서 모인 지방대표 150여 명이 유성준을 이사장으로 선출한 뒤 전국적인 조직망을 결성했다. 서울의 YMCA을 비롯한 청년회와 부인회가 이 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1923년 1월에는 함흥 YMCA 회원 1,000여 명이 무명 두루마기를 입고 가두행진까지 벌였다.

비록 물산장려운동은 순수한 사회운동이었지만 창시자 조만식, 초대 이사장 유성준을 비롯 지도자들이 장로였다는 점에서 이 운동은 일종의 범기독교 사회개혁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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