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02월 16일/물산장려운동


 1923년 2월 16일에 계획된 조선물산장려대회는 비록 일본 경찰의 무력 저지로 실패했지만, 한국 기독교인의 애국심을 또 한 번 과시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물산장려운동이 시작된 것은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 평양에서였다. 범민족적 3.1운동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조만식, 김동원, 김성업 등 50여 명은 1920년 7월 30일 평양예수교서회에서 조선물산장려회 발기대회를 열고 그 취지문을 발표하였다.

이 운동은 곧 서울로 번져 1922년 1월 20일 유성준, 김윤수, 백관수 등이 "조선물산장려회 창립총회"를 개최하면서 범국민기독교 운동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전국에서 지회가 결성되었고, 이듬해 1월 25일에는 전국에서 모인 지방대표 150여 명이 유성준을 이사장으로 선출한 뒤 전국적인 조직망을 결성했다. 서울의 YMCA을 비롯한 청년회와 부인회가 이 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1923년 1월에는 함흥 YMCA 회원 1,000여 명이 무명 두루마기를 입고 가두행진까지 벌였다.

비록 물산장려운동은 순수한 사회운동이었지만 창시자 조만식, 초대 이사장 유성준을 비롯 지도자들이 장로였다는 점에서 이 운동은 일종의 범기독교 사회개혁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1.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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