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04월 18일/한국 최초의 신학박사 탄생


1929년 4월 18일 남궁혁 목사가 이눌서를 배출한 남장로교의 버지니아 리치몬드의 유니온신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D.D.)를 받음으로써 한국 최초의 신학박사가 탄생하였다. 이것은 한국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지 45년, 평양신학교가 설립된지 29년만에 맞는 한국개신교 발전을 위한 작은 도약이었다. 비록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 중에 선교 업적을 인정 받아 모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는 일이 가끔 있었지만, 순수 한국인이 외국에서 학문적인 노력에 의해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궁혁 박사는 귀국 후 평양신학교에서 최초의 한국인 교수가 되었고, 최초의 한국인 <신학지남> 편집인이 되어 한국인에 의한 신학교육의 장을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30년대 장로교 안에 있었던 신학논쟁의 주인공 김재준, 채필근, 송창근 등을 특별기고자로 초빙해 결국 신학논쟁의 불씨를 제공했다는 면에서 그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이 때문에 <신학지남>의 신학적 색깔을 놓고 한때 박형룡 박사와 갈등도 깊었다. 그러나 1950년 납북될 때까지 남궁혁은 1930년대 한국 장로교의 최고의 지성인 백낙준 박형룡과 더불어 전환기의 지도력의 공백을 충실히 메꾸어 주었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4.2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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