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파 경건주의운동과 영적각성


대륙의 개혁파 경건주의 운동은 영국의 청교도운동의 산물이었다. 경건주의를 독일에 소개한 운테라이크(Untereyck)는 상당한 기간을 영국에서 보냈으며, 경건주의 라이츠(Reitz)의 <중생의 역사>는 도드, 휘터커(Whitaker), 백스터, 번연을 비롯한 수많은 청교도들의 생애가 소개되었다. 개혁파 경건주의 운동의 대변자는 윌리엄 테링크(William Teellinck, 1579-1629), 아메지우스였다. 20대 초반 영국에 있는 동안 영국의 청교도 도드(John Dod)와 힐더샘(Arthur Hildersam)과 접촉하면서 청교도 영성을 배우게 되었다.


테링크는 아주 힘 있는 설교가였다. 그의 설교는 대단히 진지했고 강한 영적 역동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람들의 심령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에르네스트 슈투플러가 언급한 것처럼“테링크는 아주 힘 있는 설교가였다. 그의 설교는 대단히 진지했고 강한 영적 역동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설교 앞에서 자아의 방어벽은 쉽게 무너졌고 구차한 변명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는 목사로서도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그는 당시 교회에 팽배한 일반적인 영적태만과 천박성으로 인하여‘그의 영혼의 아픔’과‘계속되는 그의 영혼이 고통’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영향을 줄 수 있는 한 진정한 개혁을 일으키는데 그의 막대한 에너지와 위대한 은사들을 집중하였다. ...그는 개혁교회의 신앙인들을 위하여 경건서적을 저술하는데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하였다.”


그는 경건훈련과 참된 정통주의 신앙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삶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달려갈 길을 온전히 달려갔다. 테링크는 자신의 저술을 통해 교회의 영적 죽음과 교회와 국가의 도덕적 삶의 결점들과 그리스도인 개개인들의 윤리적 무감각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본적 관심은 개개인들을 회개로 부르고 그들을 신앙 안에서 세워주며 단순한 교리와 정치형태상의 개혁보다는 삶의 개혁 쪽으로 교회를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에게 신앙이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의 공로에 대해 신뢰하는 것 이상을 의미했다. 신앙은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이었다. 신앙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며 신앙의 능동적인 표현은 사랑 안에서 표현된다고 보았다. 참된 경건은 불타는 사랑이 수반된다고 이해했다.


죄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에 대해서는 사는 신앙이야 말로 살아 있는 신앙이라고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강조했으며, 이 새로운 삶은 성령 안에서,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타락한 육체에 맞서는 것이다. <경건의 거울>에서 경건이란“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최고의 부르심”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사랑 속에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에 대한 관심과 강한 열망이야 말로 세상의 욕정과 욕망을 제거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테링크와 더불어 개혁파 경건주의 운동을 대변하는 윌리엄 아메지우스(William Amesius, 1576-1633)는 윌리엄 퍼킨스의 제자였다. 그는 홀란드로 망명한 후 프라네커 대학 교수가 되어 일생동안 퍼킨스 풍의 개혁파 경건주의 신학을 그곳에서 펼쳤다. 그의 사상은 <신학의 정수>(Medulla Sacrae Theologiae) 첫 문장,“신학은 살아 계신 하나님에 관한 가르침이다”(Theologia est doctrina Deo vivendi)에 그대로 녹아져 있다. 그에게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을 다루는 지식을 의미한다. 신학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계있는 것이며 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신학의 범위를 한정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나쁜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칼빈의 가르침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에게 신학은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교리이며, 신학은 하나님에 의해서 계시되고 설립된 것이기 때문에 최상의 가장 고상한 학문이고 그 안에 삶의 완전한 실행을 담고 있다. 신학은 믿음과 실천을 동시에 포괄한다는 것이다. 칼빈에게 믿음은 인격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선하신 행동을 신뢰하며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칼빈에게“믿음은 그리스도 안의 은혜로운 약속 위에 세워졌고 성령에 의해 우리의 의식에 계시되고 우리 마음에 인치어진 우리를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행동 그것에 대한 확고하고 확실한 지식”을 의미한다.


에임스는 중생(rebirth) 보다 회심(conversion)을 더 선호했으며, 그에게 회심은 겸손 믿음 회개 순종 네 가지 행위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퍼킨스가 가지고 있던 전형적인 청교도 신학이었다. 이들에게 신학은 단순한 개념이나 앎이 아니라 지식적인 차원을 포괄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삶 속에서 신앙의 구현을 말한다. 에임스는 회개를 강조하였는데, 그에게 회개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결과로 죄로부터 분명히 돌아서는 것이며 일생동안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구원의 은혜는 칭의, 양자됨, 성화 그리고 영화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었다.


칭의는“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인간의 믿음을 보아서 믿는 자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하고 그에게 생명의 자격을 주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언”이며, 양자됨은 하나님 쪽에서의 주권적인 역사이며, 성화는 의지가 새로워졌기 때문에 항상 의와 거룩함의 진정을 보여야 할 구원받는 인간의 책임으로 소극적으로는 절제를 통하여 나타나고 적극적으로는 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영화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자각과 영생의 확신으로 분명해지며 죽음 이후에 완전히 성취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테링크와 에임스의 개혁파 경건주의 신앙을 그대로 계승한 사람은 야코부스 판 로덴스테인(Jacobus von Lodensteyn, 1629-1677)이었다. 홀란드의 델프트의 시장의 아들로 태어난 로덴스테인은 독신으로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목회에 혼신에 힘을 쏟았고, 틈틈이 시를 써서 개신교 찬송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곧 그 주변에는 스승 보에티우스, 보가르트(Justus von den Bogaart), 아세니우스(Andreas Essenius), 라바디(Jean de Labadie), 쉬르만(Anna Maria van Schürman)을 비롯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로덴스테인은 대중 안에 경건이 장려되어야 한다는 청교도들과 테링크의 정신을 공유했으며 경건서적들을 저술하여 소개하는 일을 열심히 감당했다. 그는 목회자와 선교사의 바른 훈련과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교회 개혁을 위해 신학훈련을 일반대학으로부터 분리시켜 신학교 안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개혁교회가 진정한 모델을 보이지 못하는 현실을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오늘날 개혁교회 안에서 우리는 참된 교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개혁교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부끄럽게도 미신적인 교황주의자들의 비난을 듣고 있다.”


자연적 상태의 인간과 은총의 상태의 인간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확신한 로덴스테인은 자연히 둘을 차이 나게 만드는 회심을 강조하였다. 그가 이해한 회심은 성령에 의한 지성의 조명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신앙인은 성경을 이해할 능력을 얻는다고 확신했다. 참된 신앙인은 자신의 무가치를 깨닫고 이 세상의 피조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설 필요성을 깊이 깨닫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삶의 목표는 경건의 실천이라고 이해하고 경건이 삶 속에서 습관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칼빈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고 이해한 그는“회심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오직 하나님이란 이유만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필요한 이 한 가지를 얻기 위하여 기꺼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적각성을 아무리 외친다 해도 만약 그가 자기 부정의 삶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죽은 자며 영이 죽은 자라고 말한다. 


그는 진정한 예배 개혁과 신앙개혁 없이는 참된 경건이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조를 감동 없이 기계적으로 암송하거나 부모가 신앙 없이 아이들에게 세례 주는 일, 삶의 열매 없이 성찬에 참여하는 일을 반대하였다. 신학교가 바른 신앙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분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 같은 개혁파 경건주의 지도자들의 가르침은 그의 제자들에게 계승되었다. 데오도르 브리켈(Theodore Gerali à Brake, 1608-1669)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외조모 밑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성경과 경건문학을 섭렵하며 모든 사회적 접촉을 피하며 기도와 명상에 전념하였다. 이와 같은 특별한 훈련 중에 그의 영혼이 이틀 혹은 삼일 동안 완전히 하늘에 머물러 있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개혁신앙의 신조를 넘어 종종 신비주의에 빠져들었다. 그에게 어떤 사람이 은총의 상태에 있다는 것은 그에게는 바로 영혼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 믿음과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신봉하는 것, 그의 임재를 느끼는 것, 날마다 그와 동행하는 데서 오는 만족을 누리는 것을 의미했다. 이 때문에 그는 경건의 본질을“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규정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는 외적으로는 말씀을 통해 내적으로는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 교제를 가능케 하는 것이 믿음이고, 이 교제의 열매가 거룩한 사랑과 순종이라고 말한다. 경건훈련에 있어서 참된 회개, 믿음과 기도를 통한 그리스도의 은혜의 수용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명상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가 말하는 경건은 신비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데오도르 브라켈의 아들, 윌리엄 브라켈(William à Brakel, 1635-1711)은 살아 있는 신앙과 죽은 신앙을 구분하고 살아 있는 신앙이란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다시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가능케 한다고 말한다. 브라켈은 개혁신앙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흥미로운 사실을 주장한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삶에서 단순히 한번 일어나는 행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신앙인은 주 예수를 영접할 때 전심으로 그리고 자주 영접한다. 이러한 영접은 신앙인의 매일의 양식이므로 신앙인은 거듭거듭 이것을 행한다.”


브라켈은 성화를 강조하는데 그에게 성화란 거룩한 목적을 위해 말씀을 사용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한다. 그것은 오직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나타난다. 성화의 수단은 죄를 미워하는 것, 매일 죄에서 벗어나는 것, 죄에 대항하는 것, 특별히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개혁파 경건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약간씩 상이하지만 그러나 공통적으로 이들이 외치는 참된 경건은“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참된 그리스도인”(True Inward and Outward Christian)으로 집약할 수 있다. 경건의 모양만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소유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7.2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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