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의 시릴

 

431년 06월 22일/에베소회의개최

과연 마리아를 데오토코스라고 부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이를 찬성하는 시릴과 반대하는 네스토리우스가 한창 논쟁을 벌이자, 이 문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431년 6월 22일 에베소회의가 개최되었다.

시릴은 많은 수행원과 뇌물을 대동하고 알렉산드리아 해로를 통해 네스토리우스보다 먼저 회의장, 에베소에 도착하였다. 시릴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미 와 있던 68명의 감독들의 항의와, 회의 개최일보다 15일 가량 늦게 도착할 예정이니 기다려 달라는 안디옥 감독의 전갈도 무시하고, 네스토리우스 일행이 도착하기 4일 전인 6월 22일 단독으로 에베소회의를 개최해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고 파문시켰다.

나중에 도착한 네스토리우스 일행도 시릴을 정죄하고 지위를 박탈하였으나 로마의 사절단이 시릴과 합류해 그의 결정을 승인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하던 황제 데오도시우스 2세도 결국 시릴이 주도한 에베소 회의 결정을 정통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시릴과 그 일행의 야심적이고 이기적인 방법에 의한 결정이 에베소 정통신앙으로 정착된 셈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오류 많은 인간의 이기적인 야심을 자신의 거룩한 목적으로 선용하신 것이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6.20 16:19
  • 수정 2020.12.1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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