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선교100년은 한국선교100년  

 

제주선교는 한국교회가 처음부터 선교하는 교회로 출발했음을 의미한다. 1907년 9월 독노회가 조직되면서 독노회는 제주 선교사 파송이라는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한 것이다. 1884년 9월 20일 시작한 한국기독교가 불과 23년 만에 독노회를 조직하고, 첫 교회를 조직하는 역사적인 시간에 선교를 착수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런 면에서 특별한 교회였다. 짧은 시간에 그토록 놀라운 선교의 기적을 이루었는가 하면,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강력한 영적각성운동을 통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했고, 새로 조직되는 교회가 복음의 빚진 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선교를 결정한 것이다. 이것은 일방적인 강요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다.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이 하나 되어 어우러진 결정이었다. 그리고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 앞에 기도해 온 기도의 제목이었다. 이미 평양대부흥운동 기간에 한국에 와서 그 놀라운 부흥을 경험한 중국 조나단 고포스와 그 일행이 부흥을 목도하고 돌아가 보고할 때 가는 곳마다 놀라운 부흥이 임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평양대부흥운동을 통해 한국교회의 해외 선교는 이미 착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부흥을 주시고 이어 자연스럽게 선교를 진행하신 것이다. 1907년 이기풍의 제주도 파송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선교는 선교사들의 결정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결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선교는 1890년부터 채택한 네비우스 선교정책, 자립자치자전을 실천하는 한국교회 선교의 모델이었다. 한국인에 의한 한국선교를 강조해온 선교사들의 가르침이 한국교회 안에 구체적인 결실로 이어진 것이다.


 제주선교 100년은 곧 한국선교 100년을 의미한다. 제주선교는 해외선교의 시발로 오늘날의 한국선교의 기적의 씨앗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한 나라가 되었다. 전 세계에 한국의 선교사들이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1908년 이기풍을 제주도에 파송한데 이어 1908년 일본에 한석진을, 1909년에 최관흘을 해삼위에, 그리고 1913년에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을 만주에 파송했다. 그 저력은 일제 강점기에 활발하지 못하던 선교가 다시 해방과 더불어 특별히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과 더불어 수많은 선교사들을 해외에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해외에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나라가 되려면 그만큼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경제적인 축복을 주셨다. 그런 면에서 한국선교와 경제발전은 모종의 함수 관계를 갖고 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선교하는 교회와 민족을 축복해오셨다. 처음부터 선교하는 교회로 출발한 한국교회는 오늘날 선교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 박용규, 제주기독교회사 서론 중에서-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8.09.2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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