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성령운동사의 큰 유산들에 대한 분석

An Analysis

of the Major Heritages

in the History of Protestant Spiritual Movement



배 본철




21세기의 목전에 와 있는 현대교회는 전통적인 교파들의 교세가 줄어드는 가운데,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이른바 완전주의(perfectionism)와 오순절주의(pentecostalism) 이 두 가지 운동의 현저한 부흥을 경험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지나간 몇십년간 많은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켜 왔다. 그 중에서도 금세기 동안의 기독교회사에서 가장 큰 관심거리 중의 하나는 전통적인 교파들 속에서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의 급속한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로만 캐톨릭을 포함하여 실제적으로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에서 오순절적 성령운동의 유산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순절적 성령운동의 교회사적 위치는 어디이며 또 그 역사적 가치는 어떤 점에 있는가? 20세기 오순절운동이 19세기 성결운동에 직결된 운동이라면 과연 그 연장선상의 모티브들은 어떤 것들인가? 본 논문은 이같은 점에 대한 답변을 위해 개신교 전체 성령운동사에 대한 분석적, 평가적인 시도를 하고자 한다.

현대 성령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9세기 미국의 근대 복음주의 성결론이 끼친 영향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1)

그런데 이 근대 복음주의 성결론의 출발을 18세기 웨슬리의 성결론에서부터만 찾으려고 하는 일반적인 시각은 통시적인 성령운동사의 만족스런 이해를 위해서 현저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

빈슨 사이난(Vinson Synan)은 웨슬리의 교리가 대륙의 개혁주의적 신학의 전통보다는 오히려 영국-캐톨릭적(Anglo-Catholic) 전통을 더 많이 받았다고 보았다. 그는  Methodists의 교리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혼의 종교적 경험에 강조점을 두었는데, 이같은 구원의 경험적 확신에 강조점을 두는 입장은 웨슬리와 그의 후계자들을 통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것이었으며, 그리고 이같은 경험적 확신의 교리는 무엇보다도 Wesley자신의 경험에게서 연유된다고 보았다.2)


그러나 이같은 그의 시각은 너무 오순절운동을 웨슬리적인 유산에서만 성령운동을 보려고 하는 편견이 아닌지, 바꾸어 말하면 웨슬리의 성령론이 과연 칼빈적 그리고 청교도적 유산을 풍족히 나눔이 없이도 성립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인지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싶다.

개신교 성령운동사에는 현대교회가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는 풍요로운 역사적 유산들이 있다. 그러나 성령론이 일어난 각 시대의 상황과 신학적 동기 등을 간과한 채 그들의 사상을 다루다 보면, 자칫하면 너무  평면적이고도 대조적인 평가에 그치게 된다. 그러나 이 논문은 성령운동의 웨슬리적 강조와 칼빈적 강조를 대립 구도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 속에는 핵심적인 여러 모티브들이 전달되어가는 연장선상의 유산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1. 칼빈적 유산(Calvinistic Heritage)



성령의 내적 증거(Inner Witness of Holy Spirit)

칼빈은 성령의 역사를 매우 강하게 주장하였다. 성령은 마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에 있어서 필수적인 중보자 역할을 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을 위한 필요 수단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은 칭의와 중생을 통하여 그러한 구속을 얻기 위한 필요수단이 된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향하도록 하고 그분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며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다.

칼빈은 성령의 내적 증거에 대하여 논하는데, 여기서 ‘내적’(內的)이란 기록된 말씀과 이 기록된 말씀에 기초한 설교 말씀을 외적인 것으로 볼 때 이와는 상대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칼빈이 “하나님이 친히 이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신다”(I 7:4)고 할 때, 성령의 사역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말씀이 전혀 이해될 수 없다고 한다.



        성령의 증거는 모든 이성보다 탁월하다. 하나님만이 그의 말씀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적     합한 증거자이신 한, 이 말씀은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서 각인 되지 않고는 인간의 마음        속에 수용될 수 없다.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던 동일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      까지 뚫고 들어와 이 예언자들이 과연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명하신 바를 충실하게 선포하셨  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신시킨다(I 7:4).



이처럼 칼빈에게 있어서 성령의 내적 증거는 로만 캐톨릭의 교황무오설이나 교황권에 의한 교리 전승 및 그 어떤 교회의 규범이나 권위보다도 힘이 있으며 이성의 증거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I 7:4).

이와 같이 칼빈이 성령의 내적 증거를 참 신앙의 기반과 보증으로서 크게 강조한 일은 이후 청교도, 웨슬리를 포함한 전체 개신교 성령운동사에 크게 각인되는 ‘성령의 내적 증거’의 모티브를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영적인 생활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 조건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생명과 성령에의 참여자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연합 자체는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이 이 연합을 위하여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말과도 같다.



        주 예수께서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사를 전하여 주심으로써  우리가 그분, 즉 그     분의 몸과 영혼과 하나가 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몸에 참여하는 것이 실제로 필요한 것      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의 띠는 성령이시다. 성령이 우리를 함께 결속시켜 주면, 마        치 도관과도 같이 모든 그리스도의 실재 및 그리스도가 지닌 것들을 우리에게 전하여 준     다.3)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일으키는 움직임이 시작될 수 있는 곳은 인간으로부터가 아니며, 그러한 시작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로부터이다. 그리스도와 성만찬에 참여하는 자들 간의 연합은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으로써만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은 칼빈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는 곧바로 청교도들에게 직결되었다. 청교도사상에 있어서의 성령론은 전적으로 칼빈주의적 기반을 지니고 있다. 즉 성화는 신자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주어지는데, 성령께서는 신자들로 하여금 성화의 길을 추구해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청교도 신학의 정수는 바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교리로서 구약과 신약이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되었다.4)

성경은 청교도의 안내서였고 그리스도는 이 안내서의 핵심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의지가 성도의 생존과 애정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격려되었다. Wakefield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의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다”5)

라고 했둣이, 청교도들은 그들의 성례전이나 예배, 또는 설교 등 모든 교회 기능에 있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교리를 중시하였다. John Owen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적용함이 어떻게 신자의 성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참된 사랑의 결과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랑의 결과들의 첫째 결과는 집착             (adherence)이고 둘째는 동화(assimilation)이다. 성경의 사랑은 종종 이 집착이라는 결과      로 표현된다. 즉 한 사람의 영혼이 다른 사람의 영혼에 밀착되고 굳게 결합하는 것이다. 십      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 굳게 집착할 때 영혼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항상 함께 있는 느  낌 가운데 있게 된다. 여기에서 둘째로 동화 또는 일치가 뒤이어 일어나게 된다. 사랑은 사     랑하는 마음과 사랑 받는 대상을 닮게 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충      만된 마음은 죄를 효과적으로 억제함으로 그리스도의 형상과 닮게 변할 것이다.6)




1875년에 케직(Keswick)에서 시작된 성결운동도 역시 개혁주의 전통의 빛 안에서 신자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하였다. 승리와 거룩한 삶의 비결은 내주(內住)하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교제와 복종에 있다. 성화의 과정은 하나의 진보적 경험이라고 이해함으로서, ‘더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강조하는 제 2차적 은총을 개혁주의적인 성화론과 조화시키려 하였다. 이같은 케직의 성결론은 피어슨(A. T. Pierson),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마이어(F. B. Meyer) 같은 유명한 사역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전 세계로 번져갔다.

C. & MA의 창설자인 심프슨(A. B. Simpson)도 역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구원자, 성결케 하는 자, 치료자, 다시 오실 왕으로 보는 사중복음(Four-Fold Gospel)을 발전시켰다. 그는 순간적 헌신 또는 철저한 복종을 통해 예수의 인격적 내주(來住)를 가져옴을 시사하는 용어들을 많이 사용하였다.

칼빈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는 모든 복음적인 성령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어온 내용이다. 이는 우리 신앙의 근본이 그리스도에게서 말미암으며 또한 우리 신앙의 목표가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일에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성화시키는 능력(Sanctifying Power)

믿음에 의해 우리가 그리스도와 만나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받게 되는 순간부터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또 우리는 그분의 성령에 의해 살게 된다. 이같은 중생(regeneration)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데, 그것은 옛 사람에 대한 억제와 새로운 삶에의 참예이다.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부터 직접 비롯되어 중생의 최후 목적인 본래의 모습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소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과거에 죄인 되었던 상태에서 이제는 실제로 거룩한 자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점차 성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다. 그러므로 성화는 우리가 아직 실제적인 의와는 사실상 상당히 먼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데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중생을 통하여 죄의 굴레로부터 해방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완전한      자유를 지녔기 때문에 육신과 투쟁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사실이 그들을 계속적으     로 시험받게 하는 영원한 전쟁터에 남아있게 하여 그들을 단련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      여금 그들의 나약함을 깨닫게 하여 줄 수 있다.7)




그러나 중생한 자의 삶이 반드시 금욕이라는 회개의 소극적 측면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신자가 이 땅에서 계속 죄인으로 머물러 있고 저 세상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성화를 완성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때 우리는 결국 승리의 확신을 갖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선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을 소생시키시고 의롭게 여기신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선택의 은사는 불가항력(irresistible)인 것이며, 이 은사는 또한 그들로 하여금 죄와 효과적으로 싸우고 거룩한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견인(堅忍)의 은사를 수반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을 단련하시고 설득하시고 온건하게 하시며 자신의     기업으로 주관하신다. 또한 에스겔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쫓아 행      하도록 자신의 선택에 새로운 심령을 부여하시기로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그    가르침 안에서 행하도록 약속하신다.8)




이처럼 칼빈의 ‘성화시키는 능력’ 모티브는 청교도들의 성령론에서 구체화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지는 웨슬리 성령론의 기본 골격을 이루게 된다. 다만 죄와 성화의 교리에 있어서 칼빈이 통시적으로 표현한 데 반해, 웨슬리는 각각 이분법을 적용하였다는 점이 둘 사이의 차이점의 근본이다.9)




2. 청교도적 유산(Puritan Heritage)



양심과 성령의 증거(Witness of Conscience and of Holy Spirit)

성령의 역할은 중생하지 않은 자들을 은혜의 상태로 이끌어 내는데 있어 동반자의 기능을 지닌다. 그리고 그 과정에 있어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 역사되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다.10)

  은혜의 첫 번째 사역은 인간의 양심을 일깨워 그에게 강제로 하나님의 명령들을 직면하게 하여 그의 범죄, 무력, 패역, 부정, 소외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깨닫게 한다.

칭의(稱義) 교리는 인간 양심에 대한 실제적 지시이다. 신앙을 저버린 상태에 마땅히 내려질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양심을 하나님께 적용시키고 그 영향력으로 복음에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 칭의의 목적이다.11)


양심은 하나님 자신의 영(靈)과 함께 연합하여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길로 우리를 지도한다. 그러므로 성령과 양심은 함께 반항을 받거나 순종을 받거나 하며 함께 탄식하거나 즐거워한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이 성구는 우리의 하나님 자녀됨을 두 증거자가 함께 증거한다고 말한다.

성령께서 증거하신다는 것은 단지 인간 자신의 영의 증거 또는 간증을 확증하고 강화하고 분발시키고 풍성하게 하시는 것만이 아니라,12)

또한 성령께서도 증거하시는 것인데, 더 이상 간접적으로 하시지 않고 즉각적이고도 직관적으로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과 하나님의 자녀됨에 대해서 증거하신다는 것이다.



죄와의 싸움(Struggle with sin)

청교도 설교자들이 가장 자주 사용한 설교 주제는 죄에 대한 책망이었다.13)

청교도들의 영성(靈性)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개인적인 죄와 결함에 대한 강한 의식과 영적 자기 반성의 실천이었다. 그러므로 종종 겸손과 자기 비하(卑下)는 참된 영성의 표시로 인정되었으며, 설교자들은 성도들에게 실제로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증오하라’고 외쳤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내적으로 자신을 더욱 싫어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4)

특히 영혼의 강팍함(deadness of heart)은 청교도인들에게 지독한 죄로 간주되었다. 어떤 죄보다도 영혼의 강팍함과 냉냉함과 공허함은 더 애통할 만한 것이라고 간주되었다.

청교도의 성결론은 후기 완전주의(later perfectionism)와는 매우 다른 성격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로마서 7장의 경험을 로마서 8장의 신실한 신자들의 상태와 전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즉 신자는 은혜를 통해 로마서 8장의 구원의 확신을 지니면서 또한 동시에 자신의 죄성과의 지속되는 싸움의 과정을 지나게 된다는 것이다.15)


성서에 나오는 σαρχ는 단순한 몸(body)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죄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성화의 과정은 의식의 변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죄에 대한 지속적인 억제(mortification)를 통해서 될 수 있다고 보았다.16)

그런데 이 억제는 죄의 충동에 대한 단순한 억압이나 저지 이상으로서, 죄의 충동을 완전히 죽이는 것처럼 점차적으로 박멸해 가는 것이다.17)


“신자 속에 있는 성화의 은총은 하나님의 명령을 완수하려고 하는 열심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낸다.”18)

신자가 믿음과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께 의뢰함으로 죄는 약화되고 위축된다. 그러므로 청교도사상에 있어서의 성화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성화의 적극적인 면은 활기를 주는 것 즉 새사람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것이며, 소극적인 면은 억제하는 것 즉 옛사람을 약화시키고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는 점차적으로 우리의 평생에 걸쳐 완성을 향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Assurance of Salvation)

믿음은 영적 조명(illumination)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이다. 성령의 조명은 마음을 밝혀 신령한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하시는 그 일들의 객관적 진실에 대해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신다. 이렇게 영적 실재들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감각에 의해 획득하는 물질들에 대한 지식처럼 나름대로의 직접적인 방식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이 지식은 감각 인식이 주는 바와 유사한 직접적인 확신이라는 특성을 함께 가져온다.19)


Goodwin은 말하기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성령께서는 두 가지 일을 행하신다. 첫째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지각(요일 5:20) 즉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주신다는 것이다. 둘째는 성령 자신께서 이 새로운 지각 위에 빛으로 오심으로 영적인 시야를 부여하신다는 것이다”20)

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이 영적 지식은 사실상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다. 복음의 객관적 진리에 대한 성령의 이 증거는 개인의 믿음에 있어 기본적 요소이며, 성령께서 주시는 복음의 이 원만한 이해의 확신은 구원에 대한 개인적 확신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 영적 지식이 유혹들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는 수도 있으나, 그러나 진정한 영적 지식은 변함없는 구원의 확신과 함께 궁극적으로 타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생한 자에게서 나타나는 행위와 거듭나지 않은 자에게서 나타나는 행위 사이에는 엄격한 구별이 나타난다. 참으로 중생한 자들에게는 어떤 믿음의 열매 또는 증거가 나타나는데, 이는 중생한 자들의 영혼 속에 지속되는 참된 회개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그리고 온전한 사랑 가운데 나아가기를 열망하는 마음 등이다.21)


Goodwin은 구원에 대한 이중의 확신이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방법은 대화식이다. 사람은 연기가 있기 때문에 불이 있다고 추단하는 것처럼, 중생의 표적들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한다고 추단한다. 다른 한 가지 방식은 직관식이다. 이것은 우리가 전체가 부분보다 더 크다고 아는 것과 같은 지식이다. 사람의 영혼에 임하여 그 영혼을 압도하고  그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하나님이시고 그가 하나남의 소유이며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그를 사랑하셨다고 확신을 주는 빛이 있다.”22)


이 초자연적 확신이 나타날 때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변화된다. 이런 의미에서의 이 확신은 새로운 회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확신은 사람을 과거의 그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그 과정은 회심에 의해 그가 회심하기 전의 사람과 달라진 것과 거의 똑같이 인간의 모든 장점들이 새롭게 수정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웨슬리의 올더스게이트 체험(Aldersgate Experience)에 대한 심리적 이해의 배경은 직접적으로 청교도들의 충만한 확신의 교리로부터 이어진 것임을 확증할 수 있다. 웨슬리는 시종일관 성령의 증거라는 것은 신자의 영혼 위에 나타나는 하나의 내적 인상으로, 이로써 하나님의 영은 신자들의 영혼에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직접적으로 증거하신다고 가르쳤다. 다음은 웨슬리의 올더스게이트 체험의 일기 중 한 대목이다;



        9시 15분 전 어떤 이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역사하시는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 나의 가슴이 이상스럽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리     스도 한 분만을 나의 구원을 위해 믿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들, 심지어는 나 자신까지도 가져가지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내       게 주어졌다.23)




웨슬리의 이 체험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통하여 주어졌고, “이보다 3일 전에 그의 동생 Charles Wesley가 회심하게 될 때에는 역시 루터가 쓴 갈라디아서 주석을 통하여 되어졌는데, 이 갈라디아서 주석이 John Bunyan의 회심의 도구이기도 했다”24)

는 점도 역시 구원의 확신의 교리에 입각한 이 체험의 연관성을 보여준다.25)


청교도의 ‘구원의 확신’ 모티브는 매우 광범위하고 지속력있는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서 쉽스(Richard Sibbes), 오웬(John Owen), 굳윈(Thomas Goodwin), 백스터(Richard Baxter) 같은 청교도 신학자들의 ‘구원의 확신’ 교리는 후에 오순절파의 ‘성령의 인침’ 교리로까지 발전해 나갔다.



3. 웨슬리적 유산(Wesleyan Heritage)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

1739년에서부터26)

1777년까지 Wesley는 「존 웨슬리 목사에 의해 믿어지고 가르쳐진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평이한 설명」(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 as Believed and Taught by the Reverand Mr. John Wesley)이라는 저술을 계속적으로 발행하여 제자들에게 읽혔다. 이 책의 내용은 이후 두 세기간에 걸쳐 Methodists로부터 분파되어져 나간 많은 성결 그룹들의 진정한 선언문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Wesley는 ‘죄 없는 완전’(sinless perfection)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가 가르친 완전의 교리는 차라리 동기와 욕망에 있어서의 완전이라 할 수 있다. 죄없는 완전은 오직 죽음 이후에만 찾아올 수 있다. 성화된 영혼은 끊임없는 자기성찰, 경건훈련 그리고 세속적 욕망의 기피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죄로부터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Methodists가 미국 땅에 이주하게 될 때 온전한 성결의 교리도 따라서 미국 교계에 전파되었다. 제일 먼저 사역한 Methodists 사역자는 Thomas Webb이었는데, 그는 1766년의 설교에서 신자들에게 그들이 성령을 아직 못 받았으니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27)

성결 체험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1784년에 Francis Asbury와 Richard Wright가 Wesley에 의해 파송을 받아 미국 땅에 미국 감리교회(American Methodist Church)를 조직하게 되었다. 파송 전에 Wesley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Methodists가 미국 땅에 늘어나게 되는 것은 필경 미대륙을 성결의 능력으로 개혁하기 위한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완전한 사랑」(Perfect Love)의 저자인 J. A. Wood는 1866년에 성결의 운동이 캠프 모임 등을 통해 열려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성결운동가인 Inskip과 Osborn 등은 성결 집회를 위한 캠프 모임을 1867년 6월 필라델피아에서 열었다. 많은 교회에서는 이 집회가 특별히 온전한 성결의 역사를 증진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같은 해 7월에는 뉴저지 바인랜드(Vineland)에서도 캠프 모임이 열렸는데,28)

이 집회는 ‘크리스천 성결증진을 위한 전국캠프모임연합회’(The National Camp Meeting Association  for the Promotion of Christian Holiness)라고 불려졌다. 한 감리교 목사는 이 집회가 오순절적 성령의 세례에 의해 모든 교파를 하나로 묶는 참된 연합의 부흥회라고 역설하였다.

1887년에 전국 성결연합회는 206명의 성결파 부흥사가 활동하고 있다고 보고했으며, 이 숫자는 1891년에 304명으로 늘어났다.29)

Inskip, Wood 그리고 William McDonald와 같은 이가 세계적인 순회 사역을 통해 영국과 인도에 성결의 교리를 외쳤으며, 특히 인도에서의 성결운동은 20세기 오순절운동의 좋은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남겨주었다. 영국에서의 사역은 구세군의 창설자 William Booth와 같은 이가 함께 참여하였다.



제 이차적 은총(the Second Blessing)

신자가 경험하는 구원의 과정은 두 단계이다; 첫째는 회심 또는 중생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인의 완전 또는 성결이다. 첫째 체험에서 신자는 그의 자범죄를 사함 받는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유전된 죄성은 남아있는데, 이는 제 이차적 은총인 성결의 은혜에 의해 제거 받는다는 것이다.

1870년부터 1885년에 이르기까지 성결의 교리는 남부 감리교 내에 급속하게 확산되어갔다. 성결파 부흥사인 Inskip은 조지아 성결연합회(Georgia Holiness Association)를 만들었고, 그 지역의 많은 목회자들이 성결의 체험을 하나의 제 이차적 은총으로서 고백하였다.30)


1890년과 1900년초에 있어서 성결 그룹들은 그들의 근본적 교리 그대로 온전한 성결의 교리를 주장해 나갔다. 이 운동은 단지 Methodists 내에서나 또는 시골을 중심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도시를 포함하여 매우 보편적이었다. 적지 않은 장로교 목사들이 이 운동에 연관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N. J. Holmes와 같은 장로교 목사는 1899년에 다른 성결파 장로교인들과 함께 Brewerton 장로교회를 세웠는데, 이 그룹은 장로교 소요리문답과 대요리문답에 성결의 교리를 제 이차적 은총이라고 포함하였다.31)


오순절성결교회(Pentecostal Holiness Church)가 A. B. Crumpler에 의해 세워졌는데, 이 교파는 다른 성결 교파와 극히 유사해서 ‘온전한 성결을 명확한 제 2의 은총’으로 보았다. 또한 신유와 전천년설적 재림의 교리를 중히 여겼고, ‘세속적인 일’에 대한 배격이 엄격했다. 1901년에는 이 그룹이 ‘오순절’ 자를 빼고 단지 ‘성결교회’(The Holiness Church)라고 이름을 바꾸었다가 1908년에 원래대로 복원하였다.



순간적 성결(instantaneous sanctification )

웨슬리의 성결론에는 점진적인 면과 순간적인 면이 있는데, 그 강조점은 순간적인 면에 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견줄 만한 일로서, 은총에 의하여 순간적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순간적 성결 전후의 성장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인간의 자세와 태도, 즉 헌신, 복종, 선행, 은혜의 수단들을 활용하는 등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그런데 Phoebe Palmer 부인과 그의 남편 Walter Palmer 박사의 사역은 Methodists 사상에 있어서 새로운 강조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성결의 증진을 위한 화요 모임을 시작했는데, 그들의 모임은 급속히 부흥하여 수백 명의 일반 신도들이 초교파적으로 모여들었다.

Parmer 부인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체험하였던 황홀경과 완전의 경험을 단순히 ‘제단 위에 모든 것을’(all on the altar) 내려 놓음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하면서, 이것이 곧 순간적으로 성화되는 ‘더 쉬운 길’(the shorter way)이라고 했다. 이들의 가르침은 1839년에 Timothy Merritt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안내」(The Guide to Christian Perfection)라는 간행물로 소개되었고, 나중에 이 제목은 「성결에의 안내」(The Guide to Holiness)라고 바뀌었다. 



4. 오순절적 유산(Pentecostal Heritage)



불세례(Baptism of Fire) 

전국성결운동으로부터 나온 가장 극단적인 성결파로는 불세례성결교회인데, 이는 1895년에 Benjamin Hardin Irwin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는 성경과 함께 John Wesley의 가르침 그리고 특히 John Fletcher의 글을 탐독하였다. Fletcher의 표현 중에서 ‘불타는 사랑의 세례’, ‘성령과 불에 의한 세례’, ‘불세례’, ‘하늘로부터의 능력을 받음’과 같은 말을 그는 마음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일생에 걸쳐 여러 번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Fletcher가  한 말 등에 착안하였다. 그래서 Irwin은 ‘성령과 불에 의한 세례’ 또는 단순히 ‘불’이라고 일컫는 성결 체험 이후의 ‘제 3의 체험’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성결운동의 주류를 인도하고 있는 지도자들은 이들을 ‘제 3의 은총 이단’(the third blessing heresy)이라고 혹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세례를 강조하는 운동은 계속 성장해 나갔는데, 특히 중서부와 남부의 시골 지역의 성장도가 높았다.32)

Irwin은 1895년에 불세례성결연합회(Fire-Baptized Holiness Association)를 칸사스, 텍사스 그리고 오크라호마 주에 설립하였다.

1899년에 Irwin이 캐나다 사람 A. E. Robinson과 함께 발행한 「불붙는 석탄」(Live Coals of Fire)이 미국 전역에 배포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성령과 불에 의한 세례가 성결 체험 다음에 일어나는 체험이라는 것을 미국 전역에 소개한 것으로는 최초의 간행물이었다. 비록 방언이 성령세례 받은 최초의 증거라고 가르치지는 않았을지라도, 불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많은 이들에게서 방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일이었다.

Irwin은 제 3의 불세례 외에도 더 깊은 단계의 세례가 있다고 말하고, 이를 가리켜서 dynamite, lyddite, 또는 oxidite의 세례라고 일컬었다.33)

그러자 불세례 신봉자들은 제 3의 세례뿐만 아니라, 제 4, 제 5, 심지어는 제 6의 세례까지 말하게 되었다.34)

흑인 목회자인 W. E. Fullers는 「불붙는 석탄」 지에 기고하기를, ‘깨끗케 하는 보혈과 채우시는 성령과 태우시는 불과 날려버리시는 다이나마이트의 능력의 하나님을 찬양한다’35)

고 했다.

불세례성결교회는 현대 오순절운동의 시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다. 성령세례는 성결 체험의 후에 나타나는 다른 체험이라고 가르친 것은 나중에 Charles F. Parham이 칸사스의 토페카(Topeka)에서 1901년에 오순절운동을 시작하게 된 교리의 전제가 되었다. 사회적, 교리적, 그리고 지성적 의미에 있어서 볼 때, 불세례성결교회는 현대 오순절운동의 직접적인 선구자 역할을 해주었다.



방언(Glossolalia)

비록 1906년 이전에도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이 미국 내에 여럿 있었을지라도, Azuza 거리의 부흥은 일반적으로 현대 오순절운동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단 하나의 증거라고 최초로 강조하기 시작한 사람은 Charles Fox Parham 목사였다. 현대 오순절운동의  교리적이고도 경험적인 기초를 수립한 사람도 역시 그였다.36)

Parham은 원래 감리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제 2차적 은총으로서의 온전한 성결의 가르침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1890년대에 좀더 급진적인 성결운동의 요소들인 ‘대속사역의 일부분으로서의 신유’와 Irwin의 제 3의 은총으로서의 ‘성령과 불에 의한 세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현대의 오순절 그룹의 신학자들은 오순절운동에 대한 연구방법에 있어서 방언에 대한 문제로 인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제한성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방언이라는 문제를 가지고는 오순절운동을 다른 종교운동들로부터 충분히 구분할 만큼 오      순절운동을 적절히 정의 할 수 없다.

        ▶오순절운동을 해석하는 자들이 이처럼 방언에 대해 전념하는 것은 오순절운동에 대한 적        합한 이해를 저지한다.

        ▶방언의 실행에 주의를 집중한 결과 해석자들이 신학적 범주의 분석으로부터 관심을 돌려       사회학적, 심리학적 범주의 분석을 지향하게 되었다.



'늦은 비' 성령론('Latter Rain' Pneumatology )

19세기 말의 성령론은 대체로 임박한 종말론과의 연관이 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프레처의 종말론적 강조는 결정적으로 비웨슬리안적인 어조를 가미시켰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자신의 세대에 있지 않으면 그 다음 세대에는 있게 될 것이라고 고대하였다. 그의 글 중에서 보면 그는 1750년과 1770년 사이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37)


이때까지 웨슬리의 패턴은 감리교와 감리교의 영향하에 있는 성령운동들을 한 세기 동안 지배해왔다. 그러나 프레처의 오순절적 체계가 19세기말에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을 때 그의 세대론 또한 선두에 서게 되었다.

1914년에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를 구성하기 위하여 오순절파의 한 그룹이 모였을 때,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예언의 강조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앤더슨(Robert Mapes Anderson)과 파우펠(D. W. Faupel)과 같은 몇몇 사람들은 실로 이 테마가 사실상 오순절 메시지들을 결합시키는 핵심이라고  주장하였다.38)

확실히 오순절운동의 가장 초기 문헌 속에 스며들어 있었던 이러한 종말론적 동기는 1940년대의 ‘늦은 비 부흥운동’(the Latter Rain Revival) 같은 중요한 기간 동안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닫는 글

본 논문은 현재까지 성령운동의 모든 현장에서 경험되어지고 있는 여러 모티브들이 개신교 성령운동의 여러 유산들을 통해 전달되어 온  점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할 목적을 지니고 연구되었다. 이를 위해 오순절운동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개신교 성령운동사 속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성령운동의 핵심적 유산들을 네가지로 크게 분류할 수 있었다. 이 유산들은 저마다의 상황적 특성 속에서 자라났으나, 후대의 성령운동에 큰 틀을 제공해 주었다. 각 유산들은 또 두드러진 발전적 모티브들을 생산하였다. 이 모티브들은 생산된 이후 후대의 유산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어, 긍극적으로는 대립된 유산의 경험이 아닌, 종합적인 차원을 향하여 성숙되어간다.

본 논문에서는 사이난(Synan)이 강조했던 점, 즉 확신의 교리가 과연 웨슬리 자신에게서 연유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본문을 통해 명확히 제시했다. 즉 그것은 웨슬리 자신이 아니라 칼빈적 유산을 이어받은 청교도들의 ‘양심과 성령의 증거’와 ‘구원의 확신’ 모티브 바로 그것이었다.

그의 구원론은 칼빈주의 절대예정론으로부터 야기되는 근원적인 문제점, -즉 오직 선택된 자만이 구원받는다고 할 것 같으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자신의 구원을 확증해 낼 수 있단 말인가? - 이 점에 대해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감하였다. 그러나 한가지 점, 즉 철저한 알미니안주의(Radical Arminianism)에 나타난 ‘구원 문제에 대한 불안’을 치유하기 위해 그는 청교도들의 ‘구원의 확신’과 ‘양심과 성령의 증거’ 모티브를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성령론을 형성함에 있어서 큰 기반이 되었다.

그런데 왜 이같은 역사 해석에 있어서의 착오가 일어나는 것일까? 이같은 경향성은 신학자들이 주로 칼빈주의는 중생론 중심으로, 그리고 웨슬리신학은 성결론 중심으로 그 초점을 맞추어 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렇게 고착된 시각을 갖고 성령론의 역사를 다룰 때 칼빈주의 계통에서 다루었던 성령론의 핵심들은 필연적으로 간과되어질 수 있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이 성령운동 또는 성결운동의 역사적 모델을 제시할 때 20세기 초의 오순절운동, 19세기의 근대 복음주의 부흥운동, 18세기의 웨슬리 부흥운동, 그리고 17세기에는 청교도의 자리는 빠지고 다만 경건주의 운동, 그리고 중세의 경건운동 등의 순으로 짚어 올라가는 것을 본다. 일반적으로 볼 때 17세기 청교도들의 성결론이 지닌 중요성에 대해서는, 그들의 영향이 웨슬리에게 끼친 중요한 감화에도 불구하고, 성령론 또는 성결론의 전개에서 별로 부각되지 않고 있는 사실은 바람직하지 못하다.39)


청교도들의 성화 사상이 지닌 중요한 의미를 간과한 채 현재 한국교회의 성령론의 약점을 치유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를 정립하려 하는 것은 큰  무리가 있는 일이라고 본다. 성령 사역에 있어서 특별히 양심의 기능, 성령의 증거, 그리고 이중적 확신에 대한 교리 등은 교회의 신학적 유산에 가장 값비싼 기여를 이룬 청교도들의 업적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본 연구를 통해 현대 오순절운동은 19세기 성령운동의 직접적인 영향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적으로 모든 초기 오순절운동의 지도자들은 제 이차적 은총으로서의 성결의 확고한 옹호자들이었으며, 그들은 단지 이 위에다가 오순절적 세례로서의 제 3의 은총인 방언을 더한 것뿐이다. Parham이나 Seymour나 그들의 삶 전체를 통해서 전적으로 Wesleyan적인 성결을 주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감리교회가 분산되던 1894년부터 1906년에 이르는 기간까지 성결-오순절운동의 역사는 전 세계에 확산되어지게 된 것이다. 이같은 오순절운동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성결운동의 자녀라고 할 수 있으며, 다시 말하면 Methodists의 자녀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주목할 때, 현대의 오순절주의자들은 20세기의 초의 토페카(Topeka)와 아주사(Azusa)의 맥을 잇는 오직 방언주의에 그들의 기원을 둘 것이 아니라, 성결-오순절운동의 역사적 조류 속에서의 오순절운동의 위치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될 때 오순절운동은 그 확고한 역사적 정체성을 확인 받게 될 것이고, 그 무게의 중심은 방언이 아니라 웨슬리적 성결 체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각도에서 오순절 성령운동을 정리하게 될 때 그동안 개신교 신학의 주류에서 늘 외면을 당해왔던 오순절의 신앙은 전통적인 신학노선과 나란히 비중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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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7.3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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